그래 이 놈. 너만 봤니! (1)
임대한 아파트에서 시작된 교회는 얼마 되지 않아 더 이상 앉을 자리가 없을 만큼 자랐다. 공간도 좁지만 소음으로 이웃에게 어려움을 주고 있어서 시급히 예배장소를 물색해야 했다. 교회 개척지와 부지를 물색하기 위해 작정기도회를 하러 새벽기도를 다녔다. 수도 동쪽 외곽지역 아파트 밀집지역에 교회가 없어 그 곳에 교회를 개척할 마음으로 새벽기도 후 땅밟기 기도를 했다. 그 곳에는 교회부지로 구입할 만한 일반 주택이 거의 없었다. 주택지 가가호호를 탐문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한 집이 있다라는 주위 사람의 연락을 받았다. 땅도 넓고 집도 쓸만해서 마음에 들었다. 한 날 그 집과 동네에 땅 밟기 기도를 마치고 집 현관에 들어서는데 한 쪽 다리가 이상해서 봤더니 구두 축이 빠져 달아나고 없었다. 어렵게 발견한 집이라 온 통 정신이 그 집에 팔려 있었다.
한 날 연락을 하고 주인을 만났는데 우즈벡 중년 여인이었다. 집을 보려고 안으로 들어가자 집안 거실이 둘로 나뉘어 있었다. 이상해서 물었더니 남편이 불의의 사고로 죽으면서 자신과 전처의 아들에게 이 집이 상속되었는데 소유권이 자신과 그 아들에게 반 반씩 있다는 것이다. 자신은 팔길 원하지만 전 남편의 아들이 동의해야 하니 사고 싶으면 찾아서 의향을 물어보라는 것이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연락처와 주소를 받아 카작스탄 국경 마을로 갔다. 마침 집안에 결혼 잔치가 벌어져서 나와 아나똘리는 귀빈으로 대접을 받았다. 집안 분위기를 살펴 집 주인을 찾았다. 삼촌이라는 사람이 그 조카는 고향인 우즈베키스탄 남단 ‘수르한다리아’ 주, 아프가니스탄과 타직스탄 국경도시인 ‘데나우’에 살고 있다고 했다. 타슈켄트에서 멀고 먼 오지였다. 집을 사려고 하니 주소와 연락처를 달라고 했더니 데나우에 가면 자동차 정비소가 두 개 있는데 첫 번째 만나는 정비소에 가서 그 아버지의 이름을 대면 바로 알려 줄 것이라고 했다. 아나똘리는 주소와 전화번호도 없이 서울에 김서방 찾듯 가냐고 회의적이었지만 나는 절박했다. 그래서 아직 한 번도 우즈베키스탄의 남쪽 지역을 가 본적이 없으니 이 번 기회에 정탐 겸 세상구경을 하자며 아나똘리를 부추겨 동행을 했다.
길은 멀고도 험했다. 그 때엔 변변한 지도 한 장 구하기도 어려웠다. 묻고 또 물어 가야 했다. ‘조금 더 가다 좌회전 하시오.’ 조금 더 가는 것이 결국 90키로미터 였다. 이른 새벽 두 시에 출발한 우리는 거의 쉼 없이 달려 오후 4시 경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12월 초인데도 아직 감이 달려있고, 석류가 매달려있는 진풍경이었다. 인도양에서 부는 바람이 아프카니스탄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오면서 높새바람 현상으로 그 곳은 겨울인데도 온도는 가을 같았다.
첫 번 째 만나는 자동차 정비소에서 이름을 대고 물었다. “인구 3만인 ‘데나우’시에 자동차 정비가 한 두 개냐?”라는 것이다. 난감해져서 이곳 저곳 정비소를 헤매고 다녔다. 아나똘리는 뭔가 이상하고 속았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그러다 한 우즈벡인이 고려인이 하는 정비소가 있으니 그 곳에 가서 물어보라는 것이다. 아니, 이 국경도시에도 고려인이 산단 말인가? 찾아 갔더니 정말 번듯한 정비공장의 사장이 고려인이었다. 우리를 소개하고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이 사람은 나를 멋적은 표정으로 여러 번 살펴 보더니 안으로 들어가자 소리도 없이 밖에다 세워 놓고는 몇 마디 하더니 입을 다물었다. 우리는 서먹해서 공장마당을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날은 어두워지고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았다. 이 먼 길을 와서 그 냥 돌아가야 한단 말인가? 나는 허탈하기만 했다. 아나똘리는 빨리 포기하고 눈이 내리기 전 돌아가자는 것이다. 산 밑에는 비가 내리면 해발 2000미터가 넘는 고갯길은 눈 천지일 텐데 어떻게 가자는 것인지? 차를 몰고 올라선 고갯길은 고도가 높아지자 내리는 눈으로 몇 미터 앞도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헤드라이트 앞으로 달려드는 눈으로 피곤해서 계속 교대로 운전을 해야 했다. 민가가 나오자 나는 아나똘리에게 이 상태로는 위험해서 더 이상 못 가니 자고 날이 좋아지면 가자고 제안했다. 대답은 안된다는 것이다. “눈에 빠져 죽어도 이 구덩이에는 못 들어 간다는 것이다.” 무슨 소리냐고 했더니 “저기 들어가면 이가 옮아요. 집으로 가서 아내에 무슨 면박을 받으려고 저기서 자요!”라는 것이다.
산맥을 두 개나 넘는 눈길 운전은 거의 밤 스키를 타는 것 같았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오르막 내리막에 차가 미끄러질 때져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오며 ‘데나우’에서 만난 그 고려인이 괘씸했다. ‘그 멀리서 동족을 만났으면 재워라도 주어야지! 뻔히 눈 오는 그 험한 길을 그냥 돌려 보내는 인사가 어디 있나? 몰인정한 사람 같으니라고!’ 몇 마디 하자 아나똘리는 같은 고려인이라고 “사람마다 다르지요!” 라고 한다.
폭설로 가게 문이 닫혀 있어 가져간 빵과 물, 운전할 때 피곤하면 먹으라고 아나똘이의 아내 나타샤가 준비해 준 당근으로 버티며 집에 돌아왔다.
다음 날 열을 받은 나와 아나똘리는 바로 카작스탄 국경으로 다시 달려 갔다. 그 집사람들은 우리를 다시 만나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집주인이 어디 있다고 엉뚱한 소리를 해서 그 먼 길을 헤매게 하며 고생하게 하냐?”며 아나똘리가 흥분을 해서 소리를 높였다. 마침 외출에서 돌아오던 그 집 할머니가 우리를 불러 자초지정을 설명했다. 그 집의 한 쪽 주인인 자신의 손자는 마약 중독자로 금치산자가 되어 있어 재산권 행사를 할 수 없는데 친적들이 부끄러워 사실대로 말을 못하고 손님들에 큰 실례를 했으니 용서하라는 것이다. 그 먼 길을 다녀오느라고 애를 쓰게 했으니 죄송하다면 차를 부어 주며 우즈벡 전통을 따라 축복기도를 해 주었다. 몇 일이 지나서 전화가 왔다. ‘데나우’에서 잠시 만났던 사람인데 자신을 기억하겠냐는 것이다. 기억을 하고말고요! 타슈켄트에 와서 호텔에 있는데 속히 나를 만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SEED Canada 대표 / 778-316-3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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