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5일 토요일

정성헌 선교사 선교칼럼 (32)



 

32. 우리는 한국인 할례센터로 가요!?



요르단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우즈베키스탄으로 유학을 온 무하마드, 파키스탄에서 망고 장사를 위해 러시아말을 배우러 온 아지즈, 한국에서 발레 이론을 배우기 위해 온 은정이. 이런 20살 젊은 학생 사이에 끼여 나의 러시아어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선생님은 우즈벡인. 힘든 것은 알파벳이 라틴어와 상이하여 헛갈리기도 했지만 발음이 심각한 문제였다.

두음법칙에 익숙한 내가 러시아의 R발음, 그것도 강음 R을 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신경을 써서 발음하지 않으면 ‘로씨아’가 아니라 ‘노시아’가 나온다. 그럴 때면 선생님은 그런 이름을 가진 나라가 어디에 있느냐라고 내게 물었다. 자기는 웃자고 한 이야기지만 경상도 사람으로 ‘어’와 ‘으’도 구별하여 발음하기 어려운 장애 아니 장애를 겪었던 나로선 또 다른 상처가 되었다. ‘즈드라쓰부이찌에’(안녕하세요)가 제대로 되지 않아 인사 때 마다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자음이 연거푸 나온 뒤에 그 공포의 R 발음이 또 나온다. 나는 집에 돌아와 병아리가 물을 마시고 하늘을 쳐다보듯, 입에다 물을 넣고 목을 뒤로 졎혀 후음 연습을 하고, 폐에서 바람을 조절해 가며 혀 끝을 굴리는 연습을 했다. 결국 구개와 혀 사이에서 혀 끝이 자유로이 놀면서 ‘R’ 발음을 완성했을 때 천하를 얻은 기쁨이었다.

중급 러시아어가 시작될 때 아내도 아이들을 맡기고 초급러시아를 듣기 시작했다. 내가 전적으로 러시아에 집중하자 러시아 말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외워야 할 단어의 격변화, 문장, 외워둔 문장들을 머리에 가득 채운 채 아내와 함께 언어학교에 가려고 계단을 내려와서는 차의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출발 몇 분이 지나서야 아내가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다시 돌아갔다. 기가 막힌 아내는 다시 집으로 들어갈 참이었다. 아내는 처음에는 웃고 넘겼지만 이런 일이 다음 이틀 동안 계속되자 “아내는 당신을 믿고 어떻게 살겠냐?”라며 한 숨을 쉬었다.

선교현장에서는 언어문제로 야기되는 웃지 못할 사건들이 많이 있었다. 선배 선교사가 러시아어로 원고를 준비하여 성경공부를 가르치고 있었다. 한 강의를 준비하려면 너무도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도 나름대로 철저히 준비한 선교사는 강의 내용 중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성도들에게 받아 적으라고 했다. 쓰는 것은 고사하고 키득거리는 성도들을 보자 의아해 하면서도 너무도 확신에 차서 계속 “쓰세요”라고 했단다. 앉아 있던 성도들의 얼굴은 더욱 난감한 빛을 띠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썰렁해지자 참다 못한 한 남자 성도가 “목사님, 삐쉬찌에가 아니라 삐시찌에 입니다.” 무슨 차이가 있나요? “삐쉬찌에는 공책에다 오줌을 누란 말이고, 삐시찌에가 받아 적으라는 말입니다.”
이런 일을 당하면 선교사들에겐 거의 트라우마가 생기게 된다.

신학교 동기목사 한 가정이 92년 구쏘련이 열리자마자 언어 연수도 제대로 할 기회도 없이 지방 거점도시로 들어가 교회개척사역을 시작했다. 사모님은 아이 키우랴 개척하랴 러시아말을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다. 그 교회에서는 잃어버린 자기 말을 찾고자 하는 고려인들을 위해 한글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다. 마침 새로운 교재가 나와 한국교육원에서 책을 수령하러 수도 타슈켄트로 가게 되었다. 목사님이 수도에 볼 일이 있어 나간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교회 여성도들에게 퍼졌고, 서울 구경 겸 장보러 가려는 성도들이 예배당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시기만 해도 차도 귀하고 수도로 가려면 차비 또한 만만찮았다. 내친 김에 동기목사는 교회의 승합차에 성도들은 가득 태워 타슈켄트 구경도 하고 서울 남대문 시장 같은 ‘이빠드롬’이라는 큰 재래식 시장도 들러 쇼핑도 하기로 한 것이다.

출발한 승합차에서 함께 찬송도 하고 돌아가며 한 가지씩 은혜 받은 간증을 하며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잠시 휴게소에 들러 볼 일을 보고 다시 분위기를 잡으려 하는데 한 성도가 “사모님, 타슈켄트 도착하면 먼저 어디로 가나요?” 사모는 확신에 차서 “카레이스끼 아브라제니에 쩬뜨르로 먼저 가서 볼 일을 보고, 그 다음에 시장에 갈 거예요!” “아니, 사모님 어디를 간다고요?” “카레이스끼 아브라제니에 쩬뜨르요!” 순간 뒷자리에 앉아 있던 열 명의 여자성도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우리는 그런 곳이 있다는 말도 아직 못 들어 봤는데! 그리고 우리는 그럴 필요도 없는데!” 라는 것이다. 성도들은 다시 목사에게 물었다. “목사님 우리가 먼저 어디를 간다고요?”

동기 목사는 모른 척 능청을 떨며 “까레이스끼 아브라제니에 쩬뜨르!” 동기목사는 이 일이 어떻게 되나 거울로 뒤를 힐긋 힐긋 지켜 보고 있었다. 뒷자리에 타고 있던 할머니와 연세 지긋한 부인들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참다 못한 목사는 사모에게 “여보,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지?”라고 물었다. “까레이스끼 아브라제니에 쩬트르!” “음, 거긴 나도 갈 필요 없어. 여자들은 더 더욱 그렇고!” “먼저 거기로 간다고 했잖아요!”. 까레이스끼 아브라제니 쩬트르는 한국인 할례센터라는 뜻이야! 우리가 왜 그런 데를 가? 교육원은 아브라즈바니에 쩬트르지!
바로 뒤 앉아서 한국말을 좀 알아듣는 부인이 선교사부부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다른 9명에게 “아브라제니에(할례) 센터가 아니라 아브라조바니예(교육)!”라고 하자 차 안의 모든 사람들이 한 바탕 요절복통을 했다.

그러던 이 가정도 우즈베키스탄에서 추방을 받아 다시 아제르바이잔으로 사역지를 옮겼다. 거기서는 다시 아제리어를 배우면서 무슨 에피소드를 만들고 있는 걸까?

[SEED Canada 대표 / 778-316-3579]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