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0일 목요일

필객의 붓




내가 네게 장가들어



몇 일 동안 쌓인 우편함 정리를 하는 동안 목덜미에 닿는 햇살이 뜨겁습니다. 눈을 들어 눈이 부시도록 푸른 하늘을 보니 생각에 취해 탁하던 정신이 맑게 깨어납니다. 티브이도 안보고 매일의 일기를 적으며 살아도 어느덧 의식의 뜰을 범람하는 생각들 속에서 환영처럼 휘적휘적 살고 있곤 합니다.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다고 한 모세의 고백처럼, 지금까지의 나의 인생이 너무도 짧은 순간에 어린 시절에서 청년, 중년으로 바뀐 것만 같습니다. 아직도 기억 속에는 젊을 때의 감상들과 영상들이 어떤 것들은 냄새까지도 생생한데, 나의 겉모습은 세월을 따라 순식간에 여기에 이른 듯 합니다. 이제 나에게 남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마저 환영처럼 지나가 버리지 못하도록 오늘의 하늘을 깊게 올려보며 조금 전까지 가득 차 일렁이던 생각을 비워냅니다. 눈부신 햇살을 받아 투명한 나무의 실루엣을 보며 나무가 토해낸 향긋한 풀 숨을 들이쉬니 마음이 초록빛으로 진정이 됩니다.

세상은 온통 불안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정치도 불안하다, 경제도 불안하다, 인류의 내일도 불안하다 하는 중에 마케팅까지 불안 심리를 자극하고 있습니다. 보험을 들어라, 예금을 해라, 집을 사라, 투자를 해라, 살을 빼라, 운동을 해라, 그렇지 않으면 불안이 현실이 될 것이다 라는 식으로.
사람들은 불안에 눌려 자리에 누워서도 누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내 몫을 빼앗기지 않을까. 내일은 무엇을 먹으며 무엇을 입을까를 걱정하느라 깊이 잠들지 못합니다. 쏟아지는 볼거리와 몰라도 될 뉴스를 들으면서도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신경쓰고 염려하고 걱정하면서 불안에 시달립니다. 사람들은 불안을 떨치기 위해 바쁘게 돌아다니고 술을 마시고 운동을 하고 여행을 가고 친구에 집착하고 쉴새 없이 말을 하고 신경을 예민하게 세우면서 인격과 정신이 누더기처럼 헤어지고 있습니다.

불안이 충만한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은혜이며 능력입니다. 사람들은 가끔 개척 교회 사모의 직분이 힘들지 않는가 내게 묻습니다. 가족들은 가끔씩 하는 통화에서 목사 사모로써 말 못할 고민 때문에 속을 끓이다 큰 병이라도 얻을까 걱정하여 위로하려 애를 씁니다. 그러나 사모 라는 직분이 나를 얼마나 죄로부터, 시시한 생각으로부터, 오만하고 경박한 말과 행동으로부터, 미움과 시기로부터 지켜주는지, 항상 선한 생각과 좋은 말들을 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어느덧 내 본심도 선함으로 물들어 가고, 기분에 따라 제 멋대로 나불대던 혀도 길들여져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하는 온유한 지혜를 익히고 있습니다. 너무나 값진 인생 대학에서 사람에 대해서 배웠고, 칭찬이나 비난에 흔들리지 않는 법도 배우고 있습니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도 인내하며 소망하는 법을 배웠고 등 뒤에서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는 법도 배웠습니다. 무엇보다 늘 예수님을 의식하며 살아야 하는 나의 직분이 범사에 얼마나 큰 유익을 주며 얼마나 나를 붙들어주며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백 만 번의 생애가 주어진다 해도 백 만 번 모두 사모가 되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할 말 다하고 기분이 내키는 대로 행해야 직성이 풀린다고 하지만 바들바들 기분을 받들며 감정에 종 노릇하면서 결국 옹졸하고 경박한 심성으로 좁아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앞으로 생의 여러 도전들을 어떻게 헤쳐나가며 자신과 다른 수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받을 수 있을지 딱한 마음이 듭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본다고, 자신의 생각과 느낌이 정확하다고 믿고 있지만 자신의 인격만큼 보이고 인격만큼 느낄 수 있는 법이라 자신이 살아온 삶에 비추어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자신의 생각에 비추어 다른 사람의 생각도 그러할 것이라 단정할 따름입니다. 인격의 그릇을 거룩과 관용으로 넓혀 가는 일은 그래서 참 중요한 일입니다. 인격이 갖추어져 있으면 어디서든 그 그릇만큼 받으며 살 수 있지만 많이 갖고도 인격이 망가져 있으면 가진 것마저 길바닥에 쏟아버리고 맙니다.

이 생에서 얻은 가장 큰 영예는 내 땅이 결혼한 바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는 불길한 징조를 두려워하고 흉한 소식에 지레 불안해 하는, 황무지나 버림 받은 자의 삶이 아닙니다. 화평을 세워 관원을 삼고 공의를 세워 감독을 삼는(사60:17) 은혜 안에서 세상의 관원들이 적대감으로 대립하고 있고 불공평하고 탈취하는 시스템이 감독이 되어 불안의 요소들이 점점 가중되고 있는 이 때에도, 나의 영혼은 깊은 평화와 쉼을 누립니다. 불안에 바칠 시간들을 창조적인 일에, 미워하고 험담하는 시간을 사랑하는 시간에 바치고 좀 더 참고 견디고 충성하면서, 함부로 말하지 않고 아무 것이나 생각하지 않으며 정절과 인내로서 왕의 신부 된 품위와 인격을 다듬어 갈 것입니다.

그분은 오늘도 나를 영원을 향한 위대한 꿈과 소망으로 흔드십니다.
그분의 권세가 나를 지키고 그분의 부요가 나를 먹이고 그분의 힘이 나를 붙들어 주신다는 믿음 안에서, 그분의 인격, 그분의 생각, 그분의 성품, 그분의 취향으로 물들어 가는 영광, 내게 장가드시는 그 달콤한 사랑, 영원까지 책임지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인해 내 삶에 임하는 때와 시기와 필연이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든, 누구를 만나든 그분의 은혜 안에서 악은 악으로, 선은 선으로 갚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드센 바람을 맞고선 오늘의 나를 강하게 붙들어 줍니다.

[서수영 사모 / 밴쿠버크리스찬문인협회 부회장 / penofgo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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