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27일 토요일

사망에서 생명으로 (1)



죄인에서 선교사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밴쿠버에 사시는 그리스도인 여러분에게 첫 인사를 전해 올립니다. 이렇게 지면을 통해 여러분과의 만남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에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부족하고 자격 없는 저임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구하며 그분의 뜻을 잘 나눌 수 있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바입니다.

저는 올해 6월, 밴쿠버순복음교회에서 있었던 밴쿠버 코스타에 강사로 섬겼었던 오테레사 선교사입니다. 그래서 혹여 이 신문을 애독하시는 그리스도인분들 중에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모르시는 분들이 더 많이 계실 것임으로 간략한 저의 소개를 시작으로 앞으로 몇 번의 간증을 통해 좀 더 자세히 저에 대해 나누려고 합니다. 또한 어떻게 제가 밴쿠버 크리스쳔신문에 글을 기고하게 되었는지, 이 신문에 나누게 될 글의 내용은 어떤 것들인지에 대해서도 단계적으로 나눌 예정입니다. 미리 핵심 부분을 말씀드린다면, 한민족을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계획, 그리고 북한의 과거와 현 실상을 역사의 흐름을 따라 나누고 앞으로 맞이하게 될 통일을 대비하여 한민족공동체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그래서 한인 디아스포라 그리스도인들이 준비해야 할 몫은 무엇인지에 대하여 지금까지 사역해오면서 하나님께 배우고 깨달았던 부분들을 근거로 부족하나마 나누게 될 것 같습니다.

위의 나열한 엄청난 내용들을 제가 다 나눌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저와 저의 공동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일하셨던 부분에 대해서만 나눌텐데요, 상당부분은 간증을 통해서 나누게 될 것 같습니다. 때문에 부족한 제가 하나님의 뜻과 마음, 우리 민족의 비전을 여과없이 하나님 주시는 그대로, 최대한 근접하여 나눌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죄인에서 선교사로 .....
저는 함경북도에서 태어나 22년간을 한반도의 위쪽동네에서 살았던, 일명 한국에서 말하는 ‘탈북민’출신의 선교사이고 사역자입니다. 2011년 1월 남편(2009년 결혼)과 함께 한국에서 해마다 1~2월에 열리는 ‘통일비전캠프’(부흥한국의 주최로 열렸던 캠프 - 대표: 고형원 선교사)에서 1호 선교사로 오대원 목사님의 파송말씀과 함께 New Korea에 파송된 하늘나라 선교사입니다. 선교사라고 하면 많은 분들이 나라를 묻습니다. 나라와 상관없이 우리 모두 선교사로 이 땅에 부름 받았습니다. 인천공항에 첫 발을 디뎠을 때에야 비로소 대한민국임을 실감하고 감격했었는데 그 추억이 벌써 10년전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10년이라는 시간을 돌아보니 온통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뿐입니다. 죽어도 신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던 제가 감리교신학대학교 학부에서 신학을 전공하게 되었고 또 급히 부르시는 하나님의 이끌림으로 ‘예수전도단’이라는 선교단체에서 DTS(Discipleship Training School) 훈련을 받으면서 주님을 인격적으로 깊이 만나게 되었고 이어 중보기도학교 훈련과정을 시작으로(2005년부터) 지금까지 중보기도사역자라는 상상할 수도 없는 길을 걸어왔습니다.

현재는 NKB(New Korea Builders : 대표)공동체를 섬기고 있으며 임박한 우리 한반도의 ‘통일’을 대비하여 중보기도를 해오던 과정에 다양한 영역에서 실제적으로 준비해야 할 일들의 면면을 보게 되었고 통일을 위해 열심히 뛰고 계시는 수많은 동역자들과 함께 ‘통일코리아’의 밝은 미래, 하나님께서 그려가시는 통일된 한민족의 사명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을 알래야 알 수 없었던 흑암의 땅에서 죄인으로 살았어야 했던 저를 오늘날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는 선교사로서의 자리까지 인도하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오 테레사 선교사 / ot2022@hanmail.net]




 

아브라함 이야기


 

아브라함의 섬김 / 창 18:1-8 (1)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그토록 염원하며 기다려오던 약속을 이루어주신다고 했을 때, 하나님의 능력 대신에 자신의 생각과 고집 속에 갇혀 완고해졌던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다시 한 번 믿음으로 견고해진 것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완고함이 아니라 믿음에 견고해졌을 때에 아브라함에게는 변화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달려나가 엎드려 나그네들을 맞이한 아브라함
여호와께서 두 천사와 함께 평범한 사람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을 때 아브라함은 그 나그네들을 정말 귀하게 여기고 그들 앞에서 쩔쩔매면서 그들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2절에 보면, 아브라함은 그들을 보자마자 영접하기 위하여 달려가서는 땅에 엎드렸습니다: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개역개정에서는 아브라함이 달려가서 영접하고 땅에 엎드린 것으로 나와 있지만, 아브라함은 ‘(영접하기 위하여) 달려가서 엎드렸던’ 것이었습니다. 물론 나그네를 극진히 대접하는 것이 당시의 풍습이기는 하지만, 그에게는 나그네를 대접할 수 있는 수 많은 남녀 종들이 있었고, 더군다나 지금 아브라함의 나이가 99세입니다. 즉, 손님이 왔다고 해서 100세가 다 된 노인이 손님을 맞이 한다고 뛰어가서 엎드릴 필요는 없었던 것입니다.

섬기게 해 달라고 간청한 아브라함
맞이하기 위해 달려나가 땅에 엎드린 것도 모자라, 아브라함은 그들을 섬기게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3-5절의 내용은, 그냥 지나가지 말고 제발 발을 씻고 쉬다가 음식 (떡)을 먹고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아브라함의 행동은 일반적인 경우가 아닙니다. 아쉬운 쪽은 주인인 아브라함이 아니라, 나그네들이기 때문입니다. 대개는 나그네들이 집주인에게 마실 물을 달라고 하거나 음식을 달라고 하지 이렇게 주인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나그네들을 섬기겠다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음식을 준비하고 식사 시중을 든 아브라함아브라함의 간청에 나그네들이 그렇게 하라고 하자, 아브라함은 마치 자신이 꿈꾸어 오던 일이 이루어진 것처럼, 직접 사라에게 가서 고운 가루 세 스아 (Seah)로 빵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세 스아란 약 22 리터 정도 되는 엄청난 양입니다. 뿐만 아니라 기름지고 좋은 양을 잡아 요리하라고 하인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요리들을 가져다가 상을 차리고 그들이 나무 그늘 아래서 음식을 먹는 동안 서서 음식 시중을 들었습니다. 그야말로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한 것입니다.

나그네들의 존재를 몰랐던 아브라함3절에 보면, 아브라함은 그들을 ‘주’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주’는 단수이고, 또한 ‘주’란 말은 이미 창 15:2, 8절에서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뜻으로 쓰였기 때문에 여기서도 하나님에 대한 칭호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이들의 존재를 알았기 때문에 달려나가 엎드리고 섬기게 해달라고 간청을 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에 주라고 불렀다기 보다는, 나그네들 가운데 리더에게 ‘주’라고 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들이 사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까지 아브라함은 그들의 존재를 몰랐던 것 같습니다. 히 13:2에 보면,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고 나와 있는데 이것은 아브라함이 나그네들의 존재를 몰랐다는 것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정기수 목사 / 캐나다중앙교회 / 778-237-8084]




 

필객의 붓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바깥 일을 마치고 돌아와 잠시 눈을 붙이고 나니 방안이 깊은 어둠에 잠겨 있습니다. 겨울로 가는 이 계절의 짙고 두터운 어둠 속에 낮의 의욕과 활기까지 완전히 묻혀버려, 마음을 쓰며 바쁘게 움직여 다니는 것에 비해 삶의 내용이 텅 빈 것 같은 허전한 마음이 듭니다.

부스럭 부스럭 의식을 가다듬고 내려가 저녁을 준비하면서 어둠의 두께만큼 짙게 에워싸는 우울한 느낌을 밀어내며 계속 좋은 의미들을 주입합니다. 우주를 떠돌며 늘 큰 염려와 두려움을 지고 가는 생각에 비해서 실제의 삶은 얼마나 단순한지, 탐내고 갈망하는 욕망의 종류와 빛깔에 비해 삶은 이렇게 일어나 씻고 밥하고 먹고 자고의 반복으로 참으로 소탈하고 조촐합니다. 나이가 들어 남들에게 보이고자 하는 허영이 줄고 이생의 자랑의 거품이 꺼지고 나니, 많고 화려한 음식들 보다 입 맛에 맞는 반찬 하나에서 더 만족을 느끼고, 크고 화려한 집보다 맘 편하게 몸을 누일 공간이 더 족하고, 옷도 내 몸에 잘 맞고 거동에 편한 것이 제일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누리는 것보다 마음을 깊이 나눌 수 있는 단 한 사람을 더 갈망하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지금의 나의 삶은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너무나 완벽한 은총에 둘러 쌓여 있습니다.

티브이나 영화 등 우리가 보고 듣는 것들이 우리의 의식 안에 형성해 놓은 잘못된 가치관으로 인해 인생의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가 길바닥에 버려지고 있습니다. 폭력이나 음란을 정의나 아름다움으로 미화시켜 상식의 선을 침범해 들어오고, 시시한 잡담이 생에 대한 의미와 진리를 덮어 누르고 있는 지금의 영화와 노래, TV쇼와 잡지들을 보면, 앞으로 우리 자녀들을 성적인 문란함이나 폭력과 동물적인 충동에서 지켜 보호하며 인간다운 존귀와 양식과 분별을 가진 사람답게 키우는 일이 정말 쉽지 않은 과제로 여겨집니다.
늘 기계와 교감하며 권위나 어른들의 지혜에 무신경한 아이들이 짐승이 길들이는 대로 말하고 옷 입고 문신하고 화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 때 저러다 말 것이라고 쉽게 넘어가 지질 않습니다.
물질 만능과 성과 폭력과 기호의 자유라는 잘못된 가치에 미혹되어 감각만 키우던 사람들이 욕망의 작은 그릇을 채우려다가 욕망에 중독되고, 결국은 욕망의 노예가 되어, 돌이킬 수 없는 죄악이나 씻을 수 없는 부끄러움에 빠져, 가정을 깨뜨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크나큰 고통을 주다가 결국 자신의 인생이 회생 불능으로 황폐해진 이후에야 그 동안 자기가 학대하고 죽이고 미워한 것이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인 것을 발견하는 비극으로 끝맺음 하는 예를 우리는 주변에서 흔하게 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도 겉 모양은 구원 받아 말과 행실은 조심하더라도 마음으로부터의 회개에 이른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오랜 신앙 생활에도 여전히 잘못된 생각 때문에 아파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건강을 해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트럭 위에 앉아서도 보따리를 이고 있었다는 어느 촌노처럼, 구원의 놀라운 은혜에 올라 타 있으면서도 섭리하심에 맡기지 못하고, 고개가 휘도록 생각의 짐 보따리를 얹고 다니며, 조금 있으면 기억도 나지 않을 것들에 격렬해져 허상을 논하고, 허상을 탓하고, 허상에 분을 품고, 허상에 자만하고, 허상을 탐하고, 허상을 염려하고 두려워하면서 살아갑니다.

진정한 구원은 마음의 출애굽이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가치와 욕망을 추구하던 이전의 생각에서 돌이켜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자리에 늘 깨어있어야 합니다.
생각이 말을 낳고, 말이 행동을 낳고, 행동이 습관을 낳고, 습관이 운명을 낳는다는 사실을 배운 우리라면, 단지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습관을 바꾸려고 기를 쓸 일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의 진정한 회개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예수님과 멍에를 매고 그분이 생각하시고 이끄시는 대로 마음을 길들이며, 나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이신 말씀으로 인도함 받는 일을 훈련해야 합니다. TV나 컴퓨터 화면에 광고 하나만 올리는데도 돈이 어마어마하게 드는데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마음의 화면에 값싸게 아무 것이나 포스팅 하지 않는 철저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마음에 떠오르는 인물이나 사건들도 과연 시간을 들여 생각을 쏟을 가치가 있으며 입에 올릴만한 것인지 말씀의 필터에 걸러 꼼꼼하게 점검해야 합니다. 지금 나의 삶을 어지럽히는 사람들이나 사건들은 늘 있게 마련이지만, 이런 하찮은 일들이 외적인 상황은 흔들 수 있겠지만 마음까지 흔들지는 못하게 해야 합니다.

사방에서 두려움과 염려거리들이 덮쳐오는 이 마지막 때에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말씀 앞에 복종시킴으로 생각의 방탕을 그치고,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끊임없이 기도로 올려드리는 것이 평강의 큰 비밀입니다.
생각은 문제로 이끌지만 기도는 답으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생각을 주님께 복종시키는 일이 마음 안의 두려움과 불길한 암시들을 없애고 큰 평안을 주어, 생각이 많던 젊은 때는 예민하여 설치던 잠도 지금은 기력이 진할 때까지 놀다 잠든 어린애처럼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고 편안하게 잠듭니다.
말세를 당한 그리스도 안의 모든 형제 자매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여 마음으로부터의 진정한 회개에 이르러, 거룩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아름답게 이루어 가길 기도합니다.

[서수영 사모 / 밴쿠버크리스찬문인협회 부회장 / penofgod@gmail.com]
 
 
 
 
 

2012년 10월 21일 일요일

길진리생명이신 그리스도 예수 < 12 >







0056. 『마이어』대위의 죽음
프랑스 혁명으로 유대인들에 대한 법적 제재가 제거되자 프랑스는 유대인들이 거주하기에는 가장 안전한 나라로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로마카톨릭교회의 영향하에 있는 자들은 프랑스의 모든 불운을 유대인들에게 돌렸다. 『보불전쟁』(the Franco-Prussian War)에서 독일인에게 패한 프랑스는 경제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으며, 1880년대에는 상황이 유대인들에게 불리하게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1885년, 언론인으로서는 『예수회』(Jesuit)회원인 『드루몽』(Edouard Drumont)은 『프랑스 유대인들』(La France Juive)이라는 책을 저술하였다. 프랑스의 모든 불운을 유대인들에게 전가하기 시작한 그의 책이 호응을 얻어 몇 년 사이에 백만 부 이상이 판매되자 그는 신문(La Livre Parole)까지 창간, 프랑스 군부 내의 유대계 장교들의 진출을 시기한 군수뇌부 내의 반(反)유대 카톨릭 세력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이를 항의한 젊고 유능한 유대계 장교 『마이어』(Armand Mayer)대위가 죽임당한다. 그의 장례식과 행렬에는 5만여명이 군중이 운집하였고 『헝가리』계 유대인 법률가로서 프랑스에 특파원으로 파견된 언론인 『헤르츨』(Theodor Herzl, 1860-1904)도 그 행렬에 있었다.

0057. 『드레퓌스』사건 (L’Affaire Dreyfus, 1894-1906)1894년 가을, 프랑스 군부 내의 드레퓌스(Alfred Dreyfus, 1859-1935) 대위가 군사기밀을 독일에 넘겼다는 혐의로 기소되어 무기형을 언도받고 무계급으로 강등되었다. 지휘관을 상징하는 그의 칼은 부러지고 계급장, 모든 장식과 단추까지 제거당한 후 더 이상 군복이 아닌 군복 차림으로 거대한 군연병장에 운집한 인파 앞을 돌게 하였다. “매국노!”, “유대인들을 죽여라!” 라는 군중들의 함성에 드레퓌스는 “나는 무죄하다!”라고 맞섰고, 신문기자단석 앞에 이르자 그는 걸음을 멈추고 “나는 무죄하다는 사실을 온 프랑스에 고하라!”라고 절규하였다. 그리고 그는 서아프리카의 프랑스령(領)인 『악마의 섬』(Devil’s Island)에 유배되었다. 이 사건을 보는 프랑스 지성들의 시각은 달랐다. 작가 『에밀 졸라』(Emile Zola, 1840-1902)가 “나는 고발한다”(J’accuse)는 글을 신문에 투고함으로써 양심의 포문을 열었다. 프랑스의 여론은 양분되기 시작하였으며, 군재판부가 『졸라』구속령까지 내리자 그는 영국으로 피신하였고, 군수뇌부 내의 음모자의 자결 등으로 드레퓌스는 유배 5년만에 『악마의 섬』에서 다시 『빠리』로 송치되어 재판은 재심에 들어갔으며, 결국은 대통령의 특명에 의해 사면된 후 『드레퓌스』대위는 다시 소령으로 복귀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을 통해 무려 12년 동안 프랑스의 이성(理性)을 쪼개어 놓았으며, 온 유럽의 양심을 저울질하신 사건이었다.







0058. 변하지 않으려고 변하고 있다
오늘날 『로마』교회의 사제들은 루터의 칭의론을 강의한다. 우리는 “파괴하기 위해 침투하라”(join to destroy)는 『로마』교회의 정신을 경계해야한다. 오늘 날 『로마』교회의 사제들은 “거듭난다”, “구원경험”, 구원의 역사, “『그리스도』와의 만남”, 성령세례, “『그리스도』를 영접”, 은사경험, 『케리그마』등의 표현을 상투적으로 늘어놓는다. 사제나 수녀들은 복음적인 집회에 참석도 하며, 기독교의 찬송가도 배운다. 지역 기독교회의 모임, Y.M.C.A. 등의 모임에도 나타나며, 기독교회의 메시지와 신학용어도 자유자재로 인용한다. “구원중심”이니 하는 단어를 사용하는 저들의 간교한 표현에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속는다. 그들은 기독교회의 목사들과의 만남에서 “구원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다”라고 능란하게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천주교도들에게는 이와 상반된 거짓된 교리를 가르친다. “반대하기 위해 인정하라”(agree to disagree, we agree to differ)는 『로마』교회의 생리를 모르면 저들은 변하고 있다고 속단하게 된다.
기독교의 어느 신학자의 표현 - “과거 카톨릭과 현대의 카톨릭은 구별해서 생각해야 하며, 『제2바티칸』공회의 교황『요한 23세』, 『바오로 6세』의 선언이 밝힌 것과 같이 저들의 교리와 기본 가르침에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뭐가 바뀌었던 말인가? 교황, 사제가 없어졌는가? 연옥의 불이 꺼졌는가? 『마리아』, 성자, 전통숭배가 해제되었단 말인가? 저들이 변하고 있는 것은 변치아니한 것을 숨기기 위해 부지런히 옷을 갈아입는 것일 뿐이다. 성경은 사단의 세력은 ‘광명의 천사로 가장’(고후11:13-15),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24:4-28)고 우리들에게 경고하고 있다.”

0059. 로마카톨릭교의 기원
사도 『바울』에 의해 복음의 씨가 『로마』에도 뿌리를 내리고 예수의 이름은 초대교회의 박해 속에서 『네로』의 사자굴에 던져져도 더욱 뻗어져 갔다. 그러한 박해 중에서도 교회지도자들 사이에서는 크고 작은 교권암투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로마』는 첫 교회지도자 『리누스』(Linus, A.D. 67-76)로부터 『실베스터』(A.D. 314-335)에 이르는 동안 31명의 지도자를 가졌었는데, 그 중 첫 18명은 아무도 침대에서 죽은 자가 없었으며 모두가 암살, 독살, 길에서 자객에 의해 쓰러졌다. 사단은 세상명예, 탐욕에 찬 이러한 교권지도자들을 다루는데 조금도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콘스탄틴』대제는 종교통합을 추구해왔고, 이때의 교회감독 『실베스터』는 ‘로마의 대로(大路)’, ‘로마의 군력’, ‘로마법(法)’, ‘로마의 권력을 이용’, ‘로마의 평화’(Pax Romana, 무력하의 평화)를 꿈꾸며 기독교 포교를 계획하였다: “로마와 손을 잡고 세력을 펼치리라. 로마의 지배를 따라 뻗어나가면 ‘예수의 세례’는 저절로 ‘로마의 길’을 타고 온 땅의 동서남북 끝에까지 흘러갈 것이며, 로마의 감독은 온 인류의 영적 아버지로서 인류에게 얼마나 큰 축복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인가!”

0060. “그리스도냐? 가이사냐?” 인간은 명예심과 탐욕심이 많은 동물이며, 기독교는 박해 속에서는 더욱 강한 폭발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한 사단은 전략전술을 바꾸어 『로마』황제 『콘스탄틴』을 자신의 수(首)제자로 택하고, 박해 대신 포용정책을 가지고 『로마』교회지도자 『실베스터』와 만나 협상하게 한다. 동상이몽(同床異夢)의 권력과 교권의 두 지도자는 흥정에 들어갔다. 거룩한(?) 허영심에 불탄 『실베스터』는 “그리스도냐? 가이사냐?”의 갈림길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는, 눈앞의 땅의 군주의 권력을 택하였다.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요 19:15)라고 『유대』인들이 소리지르던 길을 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사도 『요한』이 기록한 대로 처음부터 거짓에 속한 무리였다: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함을 인함이 아니라 너희가 앎을 인함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않음을 인함이니라”(요일 2:19-21).

0061. “슬프다! 그대 『콘스탄틴』이여!”
『바벨론』종교는 『로마』의 천하통일과 더불어 쉽게 고대 『로마』전역으로 퍼져갔고, 순교와 박해속에서 강해지고 부유해진 『로마』교회는, 당시 『로마』의 정치수반이요 『바벨론』종교의 대 제사장(최고승원장)의 직책을 겸하여 가졌던 『콘스탄틴』대제와 결합함으로써, 사단이 예수를 유혹할 때 던졌던 약속 -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눅4:6) - 을 사단으로부터 받고 천하영광을 꿈꾸는 기독교 모조품 종교가 태어난다. 종교통합을 통해 『로마제국』을 하나로 통치하려고 시도해온 『콘스탄틴』대제가 받아들인 기독교라는 것은 『시몬』화(化)된 기독교였으며(행8:20), 이 배도의 신앙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어, 온 『유럽』을 넘어다 보기 시작하였다.

사단은 기독교의 모조품 교회를 세우는 데 성공하였다. ‘정치권력과 종교와의 결합’은 그날 이후로 로마카톨릭교회를 특정지어 온 단어이다. 사단과의 영적전투에서 대패를 당하고 권력의 시녀로 타락한 이 결정의 순간을, ‘회칠당한’기독교회사는‘기독교의 승리’라고 기록해왔다. 복음의 진수를 알지도 못했던 『단테』조차도 그의 『신곡』(神曲)에서 “슬프다! 그대 『콘스탄틴』이여! 너를 통해 얼마나 많은 악(惡)이 세상에 들어왔던고!”라고 썼다.

A.D. 313년, 『밀라노』칙령이 공고된 후, 『바벨론』종교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던 『로마』의 이교도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옴으로써 교회는 이교화 되기 시작하였고, 그 후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로 선포되었을 때 『로마』 종교는 ‘바벨론의 비밀’의 알을 품기 시작하였다(계17:5).


0062. 가이사와 그리스도
콘스탄틴 대제의 개종(改宗)에 대하여는 사가(史家)들 간에도 이견이 있어왔다. 스위스의 사가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 1818-1897)는 그의 유명한 저서 ‘콘스탄틴의 생애’(Leben Konstantins)에서 콘스탄틴의 거짓된 개종에 대하여 엄격히 다루었으며, 이 책은 120여년 동안이나 계속 출판되었다. 그는 과장된 유세비우스(Eusebius, c.260-c.340)의 ‘콘스탄틴의 생애’(Vita Constantini)를 반박하였다. 콘스탄틴에 대한 유세비우스의 아첨은 지나쳐 ‘신(神)에 대한 불경’으로 간주될 정도였다. 부르크하르트는 유세비우스를 두고 ‘황제찬미가 중에 가장 역겨운 자, 철저하게 불성실한 최초의 고대사가(古代史家)’로 언급하였다. 유세비우스는 콘스탄틴을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특히 장래의 황제들을 위한 이상적인 군주의 상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오리겐을 따랐던 유세비우스는 시편, 이사야(시72:7-8, 사2:4)등에 기록된 메시야에 적용된 구절을 대담하게 콘스탄틴에게 적용시켰다. 심지어 콘스탄틴을 두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의 성취로 간주하였다. 콘스탄틴은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하나님의 말씀의 거룩한 대변자’(Holy Speaker of God’s Word)였다. 시편 96:12을 인용, ‘새 노래로...’ 콘스탄틴을 찬양하였다. 아구스도의 평화의 때에 그리스도가 탄생(눅2:1), 구약선지자의 예언성취는 콘스탄틴에 의해 완성된 것으로 보고, ‘한 통치자, 한 제국, 한 하나님’(One Ruler, One Empire, One God)의 선전표어를 등장시켰다. 로마제국은 하나님의 선택된 제국, 그리스도는 로마시민으로 이 세상에 임하셨다고 믿었다.

0063. 2045년: 인간불멸의 해?
2045년이 되면 인간은 영원히 죽지 않게 될 것이라는 시사주간지 타임(Time, Feb. 21, 2011)의 기사. 영국, 미국, 불어권 시사주간지들이 다투어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신의 존재?’, ‘죽음 후의 천국’, ‘인간은 정녕 어디서 왔는가?’등의 기사들을 커버스토리로 다루기 시작하였다. 정치, 경제 등의 ‘시사성’기사들을 제쳐놓고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는 것이 기이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주님께서 무엇이 가장 ‘시사성’이 있는 기사인가를 다시 생각케 하신다(“아버지, 그렇군요!”). 이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인간들이 매일매일 죽음을 지나 ‘영생과 영벌’로 갈라지는 사실보다 더 시사성이 강한 사건이 없다고 하신다.



내 주여 진리의 말씀으로
사슬에 얽매인 날 풀으사
내 맘에 평화를 누리도록
영원한 생명을 주옵소서
(찬송가 284 / 주예수 해변서③)

구영재 선교사 [KOO, P.O. Box 8844 Victoria, BC V8W 3Z1 Canada]




 

정성헌 선교사 선교칼럼




목회가 있고 선교도 있다!?



선교지 정탐에서 돌아온 우리 부부는 카라칼팍스탄으로 사역지를 옮기기로 결정을 했다. 동역하던 이목사님 가정과 믿음교회는 전심으로 지방사역을 돕겠다면서 우리 가정을 격려했다.

사역지를 옮기고자 파송교회의 허락을 요청했다. 그러나 파송교회에서 온 반응은 전혀 생뚱맞은 것이었다. 담임목사님은 파송교회의 사정이 어려우니 다시 돌아와 부목사로 목회를 섬기라고 하는 것이다. 참 난감했다. 전화를 걸어 파송교회의 사정을 물었다. 부목사들이 동시에 사임을 하면서 목회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었다. 파송교회의 사정은 어렵지만 언어습득이 끝나가고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하려는 시점에 철수하여 목회를 도우라는 지침은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러나 다시 돌아온 말은 “목회가 있고 선교도 있다”라는 말이었다. 나는 더욱 곤혹스러웠다. 나를 향한 담임목사님의 신뢰는 감사한 일이지만 어디까지나 사명은 사명이고, 개인의 소명 또한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시 정중하게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따라 미개척지로 나갈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그러나 나의 바램과는 정반대로 일은 점점 꼬이고 있었다. 이른 새벽 전화벨 소리가 나를 깨웠다. 파송교회 선교담당전도사가 담임목사님을 바꿔 주었다. 느닷없이 “선교헌금을 교회로 전달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받아 써서야 어떻게 재정의 투명성을 보장하겠냐!”라고 하는 것이다. 영문을 몰라 내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중에 확인한 사실이지만 한 권사님이 선교부담당 전도사에게 나의 개인통장번호를 물어 100만원을 헌금하시고는 다른 교회로 옮기셨다는 것이다. 국제전화도 제대로 되지 않은 지역에 있던 나로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 알 수도 없었고, 누가 헌금했다는 것을 확인할 길도 없었다. 결론은 내게 정직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알지 못하는 일이라고 해명을 했으나 마지막 말이 내 맘에 비수와 같이 꽂혔다. “우리교회 성도들은 사역은 진행치를 않고 말만 배우고 있는 정선교사를 부담스럽게 생각한다.” 이 말에 나는 말문이 막혀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렇게 통화는 끝이 났다. 차마 내려 놓지 못하는 수화기에서 들리는 뚜뚜 소리는 마치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중형 선고 같았다. 정죄와 단절, 생명줄(?)이 끊어지는 것 같은 기막힌 현실에 이르고 만 것이다.

개척초기부터 온 삶을 드려 섬겼던 파송교회에 나라는 존재가 하루 아침에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고 만 것이다. 물론 나는 이 말이 온 성도들의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제되지 않는 배신감에 몇 일을 뜬 눈으로 세우고 말았다.

선교후원과 선교사 후원이라는 말은 엄청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만약 선교사가 주체가 되어 선교를 한다면 선교사의 개인적인 소명과 사명이 강조되는 말이어서 선교사후원이 된다.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당신이 선교사로 사명을 받아 선교하는 일에 우리가 후원하겠습니다” 라는 식이다. 이 말은 선교사가 개인적인 서원을 갚는 일이나 개인적 소명을 위해 교회와 관계들이 동원된다는 의미로 비춰질 수 있다. 이렇게 된다면 결국 선교사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빚 아닌 빚을 지게 되는 것이다. 과연 선교라는 것이 선교의 소명을 받은 선교사의 일을 돕는 것인가?

하나님의 선교를 수행하기 위해 교회가 선교사를 세워 그 사역을 위임했다면 교회가 주체가 되어 선교를 진행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선교사후원’이라는 말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선교사의 개인적인 서원을 갚는 일에, 개인적인 소명 때문에 선교를 지원한다면 선교사는 교회의 부담스러운 짐인 것이 분명하다. 얼마든지 이런 왜곡된 프레임에 갇혀 있을 수 있다.


나는 파송교회의 관리집사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분은 방송실에서 예배마다 녹화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집사님, 저희 가정을 파송하고 예배나 다른 모임에서 저희 가정을 위해 기도한 적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주저 끝에 나온 대답은 “없는 것 같습니다.”였다. 고민하며 소명받은 사람으로서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으로 편지를 썼다. “현장에서 러시아말을 배우는 일에 게을렀다고 백 번 질책하셔도 저는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나 말을 배우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하신다면 저는 수긍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선교사를 교회의 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교회에 부담스러운 선교사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그런 선교사라면 더 이상 선교비를 받을 수 가 없습니다. 다음 달부터 선교비를 보내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 철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 진다. 그러나 그 때는 내가 낼 수 있었던 만용이라면 만용, 용기라면 용기였다.

그 후 선교비는 오질 않았다. 개교회에서 파송된 선교사로서 예기치 않은 파국을 선교지에서 맞은 것이다. 그 해 봄은 참으로 시리고 서러웠다. 국제 미아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 때 뼈저리게 경험했다. 그러나 나는 보내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붙잡아야 했다. 파송교회가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사역지를 옮겨 개척사역을 시작하기로 했다.

새벽마다 일어나 무릎을 끓었지만 분노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번번이 소망의 하나님을 붙잡지 못한 채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 들곤 했다. 어느 날 새벽 주님은 하염없이 머리를 숙인 내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셨다. “용서하여라. 내가 너희를 용서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용서하라.” 나는 요나와 같이 대답했다. “주님, 그 말씀 하실 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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