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열 전도사 (전북 정읍) 간증
저는 전북 정읍 작은 시골 교회에서 사역하는 임정열 전도사입니다. 사실은 부끄러운 저를 드러내는 일이지만 지면을 통하여 밴쿠버 성도님들께 인사를 드리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증거 하려는 것입니다.
저는 교회가 없는 충청도 공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서 미신을 섬기며 우상을 숭배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라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저희 가정은 넉넉한 편이라 공주에 있는 계룡 여중학교에서 공부 할 수 있었습니다. 그곳은 저에게 점차 신앙을 알아가는 계기가 되었던 곳입니다.
비록 부모님 세대에서는 친척을 통 털어 누구도 믿는 사람이 없었지만, 결국 저는 가문에서 예수 믿는 첫 열매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공부하며 자라서 결혼 적령기에 법무부 소속 공무원 남편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너무나 좋은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성실하고, 근면하며, 책임감이 투철했습니다. 직장에서 승진을 거듭하여 마침내 사무관에 오르게 되었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가정이 되었습니다. 능력 있는 남편에 두 아들을 양육하며 고생이 무엇인지 흔히 말하는 고난이 무엇인지 모르며 살아갔습니다. 그러던 제 인생에 풍파가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남편이 간경화라는 진단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게 10년을 투병하던 남편은 세상 물정 모르는 아내와 두 아들을 남겨두고 17년 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돈 떨어지면 죽는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아무런 준비도 경험도 없는 세상에 세 모자를 남기고 간 남편의 빈자리를 책임지면서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낮에는 생업을 꾸려가고 밤에는 그동안 하고 싶었던 신학을 공부하였습니다. 남편 떠난 빈자리가 언제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신학을 마쳤고, 마침내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사실 세상 물정도 잘 몰랐지만, 목회 세계도 전혀 몰랐습니다. 그런 저는 전남 진도 근처에 있는 20여 가구가 사는 '죽도'라는 섬마을의 작은 교회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전기, 수도가 없는 그리고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배가 몇 일 씩 운행을 못하는 곳이었고, 이장님을 제외하고는 할머님들이 전체 주민인 가난하고 소박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었습니다.
대개 섬에는 양식장과 어선을 가지고 수산업을 하는 주민이 있기 마련인데, 유독 그 마을에는 그런 사업을 하시는 분이 없었습니다. 단순히 호미로 작은 텃밭을 일구며, 썰물에 물이 빠지면 바닷가에 가서 어패류를 캐며 살아가시는 전형적인 섬사람들이었습니다. 다투는 일 없이 서로 도우며 순박하게 살아가는 낙도 인심은 초보 전도사에게 큰 위로가 되었고 그것은 제 인생의 첫 목회를 잘 감당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세월이 지난 지금 뒤돌아보니 하나님께서 내 약함을 아시고 그런 곳에서 목회 첫 단추를 끼우게 하셨습니다. 이것 또한 하나님의 축복임을 생각할 때 지금도 눈물 겹도록 감사를 드립니다. 사례비도 없었고 없는 것이 많은 그곳에 따뜻한 마음들이 어우러지니 지금 생각해도 그렇게 작은 돈으로 그곳에서 5년을 살았다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지만 제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나날들이었답니다.
그때 제 통장에는 달랑 천원 밖에 없었고, 그렇다고 어디에다 도움을 청할 방법도 길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지금까지 남편 덕분에 순탄하게 살았던 저를 낮출대로 낮추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가면서, 남들은 힘들겠다며 별의별 소리를 다 하여도 저는 견디고 있었습니다. 빗물을 받아먹고, 호롱불에다 냉방에서 잠을 잤습니다. 목회가 어렵다고 잔뜩 겁먹고 달려가는 저를 안심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주일이면 교회로 찾아오시는 노인분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만 5년의 사역이 끝이 나고, 정읍에 위치한, 2년째 사역자도 교인도 없는 빈 교회 건물을 빚을 얻어 시작하면서 새로운 농촌 목회의 길이 주어졌습니다. 서로 돕고 의지하던 섬 목회와는 달리 점점 어려움들이 다가오기 시작하였습니다.
1년 반 정도 지난 어느 날, 평소 점점 기울어 가던 교회 건물이 갑자기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넘어진 그 자리에 천막 칠 돈도 없어서 비닐하우스를 만들었는데, 겨울이 왔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곳 정읍에는 유난히 춥고 눈이 많이 내립니다. 날마다 눈이 오면 걱정과 두려움이 엄습해옵니다. 눈이 조금만 쌓이면 비닐하우스가 축 처지고 금방 무너지기 때문에 비닐하우스 꼭대기에 눈이 쌓이지 않도록 계속 빗자루로 쓸어야 했습니다. 도구를 사용하면 비닐이 찢어지기 때문에 지붕을 보호하려고 밤새도록 눈 전쟁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하얀 눈을 보고 예쁘다고 감상에 젖어 들지만 가난한 농촌 여 전도사에게는 너무도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눈은 자주 오고 많이 오는지 어느 날은 밤새도록 눈을 치우고 울면서 눈을 치우고 안에 들어가면 눈물이 얼어서 고드름이 되고 등에 내린 눈이 얼어서 옷이 안 벗어지고 여름에는 더워서 울고 겨울에는 춥고 눈 치우며 울고 섬에서 저축한 눈물 몇 배를 그때 다 쏟았습니다.
그런 여건에서도 농촌에 사는 농부들의 영혼을 붙들고 기도하는 저에게 서울 어느 교회의 손길을 통하여 교회 건물이 조립식으로 새로 세워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비록 작은 조립식 건물이지만, 저에게는 대리석 못지않은 성전이 되어 이곳 마을을 전도하며 기도로 섬기는 복음의 터전이 되었습니다.
비록 미자립 교회지만 노인분들 중심으로 성도님들이 계십니다. 그동안 전도사 엄마 옆에서 함께 고생하며 자라던 두 아들은 잘 자라서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 했습니다. 그리고 17년간 낙도와 농촌에서 사역하면서 외출 한 번 제대로 못 했었는데, 이번에 캐나다에서 따뜻하게 초청을 해 주셨습니다.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그동안의 쌓였던 모든 피로가 날아가는 것 같습니다. 넓은 나라를 직접 눈으로 보고 말로만 듣던 미국과 캐나다 땅을 밟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렙니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맡기신 농촌 사람들의 영혼 구원을 위하여 열심을 내려고 합니다.
시골 전도사를 초청해 주신 밴쿠버 숭실 교회와 교민들께 감사드립니다.
정읍에서 임전도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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