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소아시아와 요한계시록 일곱 교회
(2) 서머나 (SMYRNA) - 신약성경과 서머나
(1) 복음전파의 경로
서머나에 복음이 들어온 경로는 분명치 않으나, 첫째는 에베소에서 3년간 복음을 전했던 사도바울의 영향과 둘째는 바울의 순교 후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던 사도요한이 서머나와 버가모에도 복음을 전한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에베소와 서머나의 거리는 약 80Km 정도이고, 사도요한의 수제자였던 폴리갑이 오랫동안 서머나 교회의 감독으로 있었던 점들을 감안할 때 이러한 추측이 가능하다.
서머나에 복음이 들어온 경로는 분명치 않으나, 첫째는 에베소에서 3년간 복음을 전했던 사도바울의 영향과 둘째는 바울의 순교 후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던 사도요한이 서머나와 버가모에도 복음을 전한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에베소와 서머나의 거리는 약 80Km 정도이고, 사도요한의 수제자였던 폴리갑이 오랫동안 서머나 교회의 감독으로 있었던 점들을 감안할 때 이러한 추측이 가능하다.
(2) 계시록의 서머나 교회 (계2:8-11)
“내가 네 환란과 궁핍을 아노니”
‘서머나’라는 이름은 “쓰다”라는 뜻으로 끊임없는 환란과 박해, 자연재해로 인한 빈곤들로 인해서 이러한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생각된다. 특별히 서머나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순교를 당하였다. 폴리갑 순교기에 의하면 폴리갑은 빌라델비아에서 잡혀온 11명의 신자들과 함께 순교자로 화형 당했으며, 그 밖에도 많은 환란과 박해가 있었다. 주님께서 주신 말씀은 이러한 서머나 교회의 배경을 두고 하신 말씀으로 여겨진다.
“내가 네 환란과 궁핍을 아노니”
‘서머나’라는 이름은 “쓰다”라는 뜻으로 끊임없는 환란과 박해, 자연재해로 인한 빈곤들로 인해서 이러한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생각된다. 특별히 서머나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순교를 당하였다. 폴리갑 순교기에 의하면 폴리갑은 빌라델비아에서 잡혀온 11명의 신자들과 함께 순교자로 화형 당했으며, 그 밖에도 많은 환란과 박해가 있었다. 주님께서 주신 말씀은 이러한 서머나 교회의 배경을 두고 하신 말씀으로 여겨진다.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서머나에는 제우스 신전, 퀴벨레 여신전, 등등 우상숭배가 성행하였고 로마시대에는 황제숭배가 성행하게 되었다. 그러자 우상숭배를 거절하는 기독교인들이 많은 박해를 받게 되었고, 특히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는 일에 유대인들이 로마인들의 앞잡이 역할을 하였다. 폴리갑이 12번째의 순교자로 화형 당할 때에도 서머나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이 그들의 율법 중 안식일을 범하는 죄를 지으면서까지 폴리갑을 산채로 화형 시키라고 주장했다. 폴리갑을 화형 시키기 위해 나무를 주워와 장작더미를 준비하는 등 실로 ‘사단의 회’처럼 기독교를 박해하는데 선두자 역할을 했다.
(3) 속사도 시대의 서머나
◎ 이그나티우스의 서신들 ◎
서머나는 계시록의 기록에는 몇 절만 기록되어 있지만 계시록 이후 속사도 교부들의 시대에는 수신자로서 그리고 발신자로서 여러 편지들이 남아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사도요한과 거의 동일한 시대에 살았고, 안디옥 감독으로 로마로 이송되어 트라얀 황제 때(AD 98-117) 순교했던 이그나티우스(Ignatius)가 로마로 이송 도중 드로아(Troas)에서 서머나 교회와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었던 폴리갑에게 보낸 서신이 전해지고 있다. 그의 순교가 학자들이 추정하는 대로 AD 110년경 이루어졌다면 이 서신들은 아마 AD 110년 이전에 기록되어 보내졌을 것이다.
서머나는 계시록의 기록에는 몇 절만 기록되어 있지만 계시록 이후 속사도 교부들의 시대에는 수신자로서 그리고 발신자로서 여러 편지들이 남아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사도요한과 거의 동일한 시대에 살았고, 안디옥 감독으로 로마로 이송되어 트라얀 황제 때(AD 98-117) 순교했던 이그나티우스(Ignatius)가 로마로 이송 도중 드로아(Troas)에서 서머나 교회와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었던 폴리갑에게 보낸 서신이 전해지고 있다. 그의 순교가 학자들이 추정하는 대로 AD 110년경 이루어졌다면 이 서신들은 아마 AD 110년 이전에 기록되어 보내졌을 것이다.
◎ 폴리갑의 빌립보서 ◎
빌립보서에서 보낸 서신에 답신으로 기록된 이 서신서는 이그나티우스의 순교와 관련되어 그의 신변에 대한 질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그나티우스의 순교 직전이나 직후에 기록된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기록 연대는 AD 110년경으로 여겨진다.
빌립보서에서 보낸 서신에 답신으로 기록된 이 서신서는 이그나티우스의 순교와 관련되어 그의 신변에 대한 질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그나티우스의 순교 직전이나 직후에 기록된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기록 연대는 AD 110년경으로 여겨진다.
그의 편지에서 폴리갑은 이단에게는 냉정하고 단호하였다. 당시 로마에서 활약한 말시온(Marsion)을 가리켜 “사단의 맏아들”이라고 잘라 말하였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는 자는 누구든지 적그리스도이다. 그리고 십자가의 증거를 고백하지 않는 자는 악마이다. 자기 욕심에 따라 주의 말씀을 왜곡시키고 부활과 심판의 사실을 부인하는 자는 사단의 장자이다.”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그나티우스와 폴리갑 서신서들은 사도들로부터 예수님에 대해 직접적으로 배운 속사도 교부들이 점증하는 교회의 내적(영지주의적 이단들), 외적(황제의 탄압) 위험들이 맞서서 기독교의 진리를 어떻게 옹호하고 가르쳤는지를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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