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19일 일요일

필객의 붓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며

 
 
뜰에 앉아 잎새를 흔드는 햇살과 바람을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에 하늘의 평화가 담겨옵니다. 나이가 드니 정물이 주는 고요와 평안이 좋아집니다. 놀거리 없이 잠시만 가만히 있어도 지루하던 어릴 때는 자연은 무척 심심하고 무료한 세계였는데 이제 자연은 나에게 늘 새롭고 풍성한 쉼과 교훈의 세계로 열렸습니다. 자연의 맑은 숨결과 부드러운 색감 속에서 속도와 소음에 지친 오감을 쉬고 긴장으로 탁한 숨을 맑게 걸러내며 이렇게 하루 종일 앉아있으라 해도 싫증이 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나무와 풀과 하늘과 꽃과 바람.... 이름만으로도 그대로 아름다운 시요, 영혼을 깊고 풍요롭게 하는 노래입니다. 타락하기 전 인간의 모습이 만물보다 경이롭고 아름다웠음을 “심히 좋았더라” 강조하신 하나님의 감탄 속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 때문에 인간들은 사망의 쏘는 표적이 되어 평생 고통으로 속을 파먹히고 일그러진 생각과 부정적인 자아상으로 파괴되어 버렸습니다.
동성끼리의 결혼을 인권이라 하고, 나체로 돼지 우리에서 지내는 것을 행위 예술이라 하는 제 정신이 아닌 세상이 음란과 쾌락의 문화로 사람들의 정욕의 화덕에 불을 일구고, 도저히 이성을 가진 사람이 한 짓이라 할 수 없는 패륜과 엽기적인 범죄행위들을 보면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다가 죽는다는 솔로몬의 격한 표현이 오히려 얌전하게 느껴집니다. 악한 일에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음으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기에 너무도 담대합니다. 죄악의 관영함과 사람의 생각과 도모가 너무나도 악한 세상의 뉴스들을 보면, 노아 이전의 세상을 죄악으로 파괴시켰던 옛 뱀들이 음란으로 얽혀 우글거리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고, 심판 때에 소돔과 고모라가 이 땅보다 견디기 쉽겠다고 하신 예수님의 탄식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공중 권세 잡은 사단은 미디어를 통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쏟아 붓고 있으며 이런 정신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비교의식의 전갈에 쏘이고 경쟁의 독침에 찔린 것 같은 쓰라린 고통을 당합니다. 모래보다 무거운 미련한 생각의 짐과 늘 마음 한구석을 짓누르는 고통때문에 사람들의 영혼이 곤비합니다. 저 사람은 무슨 걱정이 있을까 싶은, 평범이상의 부와 권력과 명예와 재능과 외모를 가진 사람들도 예외없이 마음의 고통을 호소하며 뒤채는 모습을 우리는 봅니다. 그래서 생계와 건강과 취업과 불확실한 진로 등 많은 고민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정치와 경제와 관계와 나이 등의 변수들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확실한 성곽을 구축하려고 열심히 애를 쓰며 달리지만, 왕의 아들이란 귀한 신분으로 태어나 모든 지혜와 권력과 돈과 명예를 소유했으며 주변국들이 감히 대적할 수 없는 강대국의 왕으로서 천하 만민의 칭송을 받았던 솔로몬도 허무의 고통을 어쩔 수 없었던 것을 보면,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이 무거움을 치울 수 없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무서운 고통의 이름은 죄짐입니다.
이 끝없는 번뇌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것을 인간 최고의 달성으로 여기는 불교 뿐 아니라 인류 종교의 최대 숙원이 죄짐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 죄짐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용서뿐입니다. 그것은 면벽수도나 고행이나 명상을 통해 없앨 수 없고 선행이나 구제, 몸을 불사르는 희생으로도 그 고통의 무게를 한치라도 덜 수 없습니다.

복음의 메시지의 핵심은 죄와 회개 그리고 예수님을 통한 용서입니다.
우리가 용서받아 죄가 씻음받고 그래서 사단이 더 이상 죄책감의 냄새를 맡고 덤빌 수 없습니다. 우리를 사형으로 정죄하는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되어 죄와 사망의 법 아래서의 복역의 때가 끝나고 생명의 성령의 법 아래서의 새로운 은혜의 삶이 열렸습니다. 따라서 죄 사함을 받고 영원한 형벌에서 놓임을 받았다는 것은 백만 장자가 된 것보다 대통령이 된 것보다 어느 분야에서 최고의 인물이 되는 것보다 훨씬 더 중대하고 복된 일이며,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평생을 기쁨에 젖어 살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과 용서의 기적을 맛보고 죄책의 짐을 벗은 사람은 더이상 욕심과 정욕에 휘둘리지 않으며 사람들을 외모로 판단하거나 이생의 자랑에 흔들리거나 미움과 갈등에 종노릇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는 이 놀라운 은혜는 일생에 단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 순간, 셀 수 없이 구할 수 있는 은혜라는 사실은 심장이 떨리도록 놀랍고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함께 나눈다 해도 삭감되거나 줄어들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빛이 그렇고 소리가 그렇고 우리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러합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을 비춘다 해도 절대 감하거나 나뉘지 않고 전체의 명도와 강도로 주어지는 오늘의 맑고 투명한 햇살처럼 하나님의 사랑도 누구를 향해서나 동일하고 완전합니다. 교회인 우리는 죄악의 포로가 되어 마음이 상하고 죄짐에 억눌린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의 용서를 전할 아름다운 사명을 받았습니다. 주님 다시오실 그날까지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이 사랑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이 우리가 마땅히 해야할 일일 것입니다.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서수영 사모 / penofgo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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