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 아브라함 / 창 20:1-7 (하)
아비멜렉의 책망과 아브라함의 변명아비멜렉은 잠에서 깨자마자 그의 신하들을
불러 꿈 이야기를 들려주고, 또 아브라함을 불러서 책망합니다: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느냐
내가 무슨 죄를 네게 범하였기에 네가 나와 내 나라가 큰 죄에 빠질 뻔하게 하였느냐 네가 합당하지 아니한 일을 내게 행하였도다 하고” (9절).
그러자 아브라함이 변명을 합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이 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10절). 즉,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가 아니기에 사라를 빼앗고자 자신을 죽일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에 거짓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도 사라가 자신의 이복 누이라고 밝힙니다: “또 그녀는 정말로 나의 이복 누이로서 내 아내가 되었음이니라” (12절).
여기서 이복누이란 ‘나의 아버지의 딸’로 배다른 오누이라는 의미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과 사라는 그렇게 하기로 약속을 하였기 때문에 거짓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내 아버지의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 후로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하였었노라” (13절). 이것은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하려고 했던 아브라함의 시도 (영적인
약점)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사명을 깨달은 아브라함아브라함의 변명을 들은 후 아비멜렉은 그의 아내 사라를
돌려주는 것은 물론 양과 소와 종들, 그리고 은 천 개를 아브라함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준 것은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아비멜렉은 자신이 꿈에서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7절의 말씀처럼 아브라함은 중보기도를 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출산하게 하셨으니” (17절). 다시 말하면, 아비멜렉을
통해 아브라함은 다시 한 번 자신이 부름받은 목적과 자신이 해야 할 일 (천하만민이 복을 받는 일)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창 12:3);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창 18:8).
중보 기도자 아브라함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중재자로서 아브라함의 사명은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은 중보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 진다고 하나님은 아비멜렉을 통해서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이유는 아브라함만 잘 먹고 잘 살게 하거나 높이 세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해 천하만민이 구원받고
복을 받게 하시고자 그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환경이 어려워지자 사명이 아니라 자신의 약점 (두려움과 거짓말)을 드러내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아직도 신앙적으로 약함을 아신 하나님은 아비멜렉을 통해서 책망은 물론 사명까지 일깨워주셨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인 우리의 사명
하나님은 아브라함처럼 우리를 부르셔서 예수님을 믿게 하셨고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인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세상만민이 복을 받도록 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중보 기도를 통해 이룰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도 세상을 위해 중보기도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우리의 중보 기도를 통해서 닫혔던 문들이 열려지고, 막혔던 곳이 허물어지며 화해와 통합의 역사가 일어나 심령마다, 가정마다, 직장마다, 교회마다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살 맛나는 세상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처럼 우리를 부르셔서 예수님을 믿게 하셨고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인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세상만민이 복을 받도록 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중보 기도를 통해 이룰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도 세상을 위해 중보기도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우리의 중보 기도를 통해서 닫혔던 문들이 열려지고, 막혔던 곳이 허물어지며 화해와 통합의 역사가 일어나 심령마다, 가정마다, 직장마다, 교회마다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살 맛나는 세상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정기수 목사 / 캐나다중앙교회 / 778-237-8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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