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20일 일요일

정성헌 선교사의 선교칼럼




손으로 말하는 사람들 ①



한 날 수도에서 전화가 왔다. 갓 부임한 이선교사였다. 그는 농아들을 ‘손으로 말하는 사
람들’이라부르며, 장애인사역을 시작하려는 분이었다. 원래 원불교 집안에서 자라 “소록도엔 왜 교회만 있고 법당은 없는가?”라며 원광대 불교학과를 나와 그 곳에 법당을 짓고 염불하던 사람이었다. 그가 소록도 한센인들에 의해 믿음이 전염되어 법당에서 성령님의 역사로 회심한 후 선교사가 된 것이다. 수도에 농아교회를 개척하려고 준비 하던 중 동역할 사람을 찾아 그 사람을 데리고 가니 2주일만 재워 주고 먹여달라는 것이다. 목탁과 출신인 이 친구에게 나는 선교지에서 낚시를 가르쳐 살생을 유도한 얄궂은 관계였으므로 흔쾌히 오라고 했다.

공항에서 영접을 하는데 우즈벡 청년 ОО이란 사람이 인사를 했다. 저녁을 먹고 이선교사가 그 청년을 자세히 소개하는데 나는 기가 막혔다. 그 청년의 부모는 다 선천성 농아이고, 형제들 중 반은 듣고, 반은 듣지 못하는 농아인 가정의 장남이었다. 하는 일이 가관이었다. 수도의 복잡한 시장 통에서 벌어지는 사행성 놀음판의 전문 야바위꾼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해가 되질 않아 하필이면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저 사람이냐는 투로 핀잔을 주었다. 그래도 이 목탁과 출신이 도를 좀 닦기는 한 모양이었다. 나를 보며 빙긋이 웃는 것이 “어찌 깊은 혜안을 너 같은 범인이 알겠느뇨!”라는 표정이다. 그래도 이유가 뭐냐고 캐물었다.

농아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역자는 선천성 농아 집안에서 태어나 말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양쪽을 다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농아들에 대해 특별한 심정을 가졌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긴 뭔가 봤기에 1200킬로 미터를 비행기로 태워 데려 왔겠지 라며 믿기로 했다. 이선교사가 ОО에게 예수님를 전했으나 무슬림이라 개종에 부담이 있고, 가족의 생계에 대한 짐과 조직에서 이탈할 경우 벌어질 일 때문에 결단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우리교회 성도들이 집중적으로 ОО이 주님을 영접하고 성령 세례를 받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나는 교회의 리더들에게 이선교사와 ОО을 소개하고 방문목적을 위해 기도를 요청했다. 우리 교회에 놀음꾼에서 확실한 은혜를 받고 변화된, 그리고 과거에 조직의 보스 출신이었던 두 전도사가 있어 열심으로 ОО를 위해 기도하며 격려했다. 오전에는 내가 그와 전도용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몇 일이 지나자 마음을 열고 복음을 들은 ОО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했다. 우리 모두는 기쁨이 충만했다. 그러나 그날 밤, ОО에겐 심각한 영적인 공격이 있어 몇 차례나 가위 눌림과 헛소리로 옆에 누운 자던 우리들은 일어나 대적기도를 해야 했다.

주일이 되자, 아침을 먹고 시장으로 나간 이선교사와 ОО이 7명의 농아들을 데리고 예배에 참석했다. 유난히도 중앙아시아에는 소아기 때 열병으로 청력을 잃은 후천성 농아들이 많다. 비공식 통계는 전 인구 2% 정도라고 한다. 예배 설교를 ОО형제가 수화로 통역했다. 나는 아직 성경을 모르는 농아들이 제대로 알아 들을 수 있을까 라며 설교 내내 조바심을 냈다. 다음 날 오후 20여명의 농아인들이 교회로 왔다. 이선교사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초대한 것이다. 이선교사는 갓 배운 소련식 수화로 열심히 전하긴 했지만 짧은 자기의 수화실력에 답답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 먼 곳 이국 땅, 다른 민족이 와서 수화를 하는 그 모습 자체만으로도 그들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던 것이 분명했다.

몇 일이 지나자 이선교사는 ОО을 데리고 수도로 돌아갔다. 주일이 되자 농아인들이 하나 둘 모여들더니 십여 명이 뒤쪽에 자리를 잡고 예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난감했다. ‘통역이 없으니 어떻게 설교를 전달하며, 찬송은 또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래도 그 분들은 사뭇 진지하기만 했다. 그 다음 주에는 열다섯 살쯤 돼 보이는 한 소년이 서서 통역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신앙이 없고, 성경도 전혀 모르는 그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광고 통역 뿐이었다. 나는 그 아이를 불러다가 주중에 신앙교육과 설교통역을 준비시켜야 했다. 나도 러시아말이 온전치 않은데다 그 아이도 모국어는 카라칼팍어이고, 러시아말은 길거리에서 배운 수준이었다. 그러니 우리는 서로 갑갑하기만 했다. 수화통역을 맡은 아이는 부담이 되어 예배출석을 들쭉날쭉하는 사이에 교회에 예기치 않은 일이 생기고 말았다.

문제는 같은 예배에 참석하지만 농아인과 기존 성도들이 전혀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뿐만 뿐 아니라 서로는 심한 생활수준의 차이가 있었다. 농아들은 교육받은 사람들이 적어 삶이 열악했고, 그 흔한 수세식 화장실 사용법을 모르는 사람이 허다했다. 급한 김에 볼일을 보고는 어떻게 물을 내려야 할 지를 몰라 도망치듯 사라지길 다반사, 특히 예배당은 마루바닥이어서 신을 벗고 들어와 앉아야 하는데 문제는 발 냄새가 너무 심했다. 급기야 교회의 리더들이 나를 찾아와 예배를 따로 드렸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나는 무슨 소리냐고 했지만 다음 회의에 다시 거론되자 나도 슬그머니 물러서 농아형제들의 의향을 물어보고 결정하겠노라고 대답을 했다.

나는 농아형제들 중 맏형 격인 ‘우작바이’를 불러 점잖게 예배를 따로 드리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이미 성도들의 불평을 눈치채고 있던 ‘우작바이’는 그 큰 눈에 근심이 가득하여 큰 팔을 놀려 천천히 손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목사님, 우리에겐 제대로 된 통역이 없어 성도들에게 답답해 보이고, 손으로 찬송해야 하니 다른 형제자매들을 집중하지 못하게 할 때가 있어 죄송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배당 안에서 공기를 타고 우리 몸에 부딪히는 그 느낌과 바닥을 통해 전달되는 스피커의 바이브레이션 만으로도 우린 행복하고 충분합니다. 그러니 제발 우리를 형제자매들에게서 떼어 따로 예배드리라고 하지 말아주세요!”

[SEED Canada 대표 / 778-316-3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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