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20일 일요일

터키이야기 (15)


7. 소아시아와 요한계시록 일곱 교회

◇ 신약성경과 에베소 ◇

오순절 당시 예루살렘은 유대인의 교회 중심지였고, 안디옥은 이방인의 교회 중심지였으며, 바울의 순교 이후에는 에베소가 교회의 중심지가 되었다. 에베소는 성경시대에 버가모를 누르고 아시아의 수도가 되었으며, 소아시아 지방의 정치, 교통, 무역, 문화의 중심지였다. 에베소는 성경에 16번 언급되었다.

1) 사도바울과 에베소
에베소 전도는 체류 기간과 사역 규모로 보아 바울의 전 전도여행의 금자탑이라 할 수 있다. 에베소는 바울이 2, 3차 전도여행 때 들렸다.

바울은 2차 전도여행의 귀로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함께 고린도에서 배를 타고 에베소에 들러 유대인의 회당에서 변론하고 가이사랴로 갔다(행18:19-21). 3차 전도여행 때(54-59년) 에베소에 와서 3개월간 회당에서 가르쳤고(행19:8), 그 후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3년 동안 가르쳤다(행19:9-10). 사도행전 20장에 기록된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에게 행한 고별설교에서 3년 동안 밤낮으로 쉬지 않고 눈물로 가르쳤다고 말하고 있다. 바울이 에베소에 머물면서 복음을 전하는 동안 에베소뿐만 아니라 계시록의 일곱 교회를 포함하여 소아시아 전역에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바울 이후에는 디모데가 에베소 교회를 돌보았고(딤전1:3), 아볼로와 아굴라, 브리스길라 부부가 이곳에서 전도활동을 하였다(행18:24-26).

바울이 이곳에서 고린도전서를 기록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며, 또한 이곳에서 감금된 듯하다(롬16:3,7; 고후6:4-10; 11:23-27; 고후1:8).

2) 사도요한과 에베소
연대는 분명치 않으나 바울이 순교당한 후 사도요한이 예수의 모친 마리아를 모시고 이곳에 와서 에베소 교회 목회와 전도를 하며 노년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이곳에서 핍박을 받고 밧모 섬으로 유배를 당했다가 다시 돌아왔으며, 요한복음, 요한서신서 등도 이곳에서 기록한 것으로 전해진다. 요한은 트라얀 황제의 통치기간 때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자연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평소에 요한이 동산에 올라가 기도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던 곳에 묻히기를 유언하여 동산에 무덤을 만들었고, 후에 유스티니아누스의 명령에 의해 요한의 무덤이라고 전승되어 온 장소에 교회가 세워졌다.

3) 계시록의 에베소 교회 (계2:1-7)
당시 황제숭배의 강요와 이에 따른 박해를 참으며 신앙의 정절을 지켰고, 거짓 사도들과 니골라당을 물리치고 진리를 분별하여 교리를 수호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처음 사랑을 잃었음을 책망하며, 처음 사랑의 회복과 처음 행위를 다시 되찾을 것을 권면하고 회개를 촉구하면서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긴 자에게는 낙원의 생명나무 과실을 주어 먹게 할 것을 약속하고 있다. 당시 에베소의 형식적 전통주의와 넘치는 풍요로움이 처음 사랑을 잃게 하는 원인으로 지적된다.

4) 신약 이후의 에베소
AD 110년경, 안디옥의 감독이었던 속사도 교부 이그나티우스가 체포된 몸으로 순교를 당하게 될 로마로 호송 중 서머나에 들렀을 때 에베소에 보낸 서신이 남아 있다. 이그나티우스는 에베소의 신자들에게 당시 에베소 감독이었던 오네시모를 통하여 보여주었던 친절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하고 몇몇 권면과 당부를 전하였다. 특히 오네시모 감독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에서 바울이 빌레몬에게 “나로 너를 인하여 기쁨을 얻게 하라”(몬20)라고 하면서 옥중에서 얻은 아들 오네시모라는 이름의 뜻을 원용하였듯이, 이그나티우스도 바울이 사용한 동일한 동사를 사용하여 “나로 너희를 인하여 기쁨을 얻게 하라”라고 했다.

이런 이유로 해서 빌레몬서의 오네시모와 이그나티우스의 에베소 서신의 오네시모가 동일한 인물이라는 주장이 자주 제기되었다. 만일 빌레몬서의 오네시모가 회심 당시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이었다면 이그나티우스와 만났을 때는 나이 70 정도가 되었을 것이다. 특별히 시카고학파는 바울의 서신이 처음으로 모아진 것은 2세기 초 에베소에서였다고 주장하는데 그들을 대표하는 J. Knox 같은 학자는 감독 오네시모가 그 일의 책임자였으며, 빌레몬서도 바울의 서신 속에 포함시켰을 것이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만일 오네시모가 후에 에베소의 감독이 된 것이 사실이라면 바울 옆에서 바울을 도우며 누구보다도 바울을 잘 알고 있었던 그가 바울의 서신을 모으는 일을 했으며, 빌레몬서도 자연스럽게 모음집에 포함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오네시모의 이야기는 역사 소설가들에게는 매력 있는 주제가 되어 미치슨(N. Mitchison)이나 존(P. John) 등 여러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으며, “오네시모”라는 소설이 연재되기도 했다.

이그나티우스의 에베소의 20절에서 특별히 성찬식에 대한 언급을 할 때 요한복음 6장 50절을 염두에 두고 주님의 몸인 떡을 “불사약이며 죽음의 해독제”라고 언급하고 있다. <계속>




 <사진 위: 에베소의 사도요한 교회 / 아래: 성베드로 성당의 성 이그니티우스 조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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