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아침에 집을 나서니 이슬에 젖은 나무와 풀과 흙 냄새가 향긋합니다. 단풍이 절정을 이룬 가을 아침의 정취에
살아가는 행복으로 가슴이 벅차 오릅니다. 차창으로 지나가는 이 풍성한 운치와 아름다움을 표현하기에 나의 어휘가 너무도 짧아 감탄만 뱉어냅니다.
내 인생 결산의 때에도 이 계절처럼 아름답고 기품 있게 무르익을 수 있는 은혜를 간구합니다.
가을의 정취에 맞게 그림처럼 예쁜 카페에서 향 좋은 커피 한 잔을 사 들고 나오면서 지금 나의 주변을 영상으로 찍어본다면 너무도 아름다울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마음을 어지럽히는 생각들을 완전히 제거하고 아름다운 영상의 평면 위를 움직여 다니는 나를 객석의 자리에서 바라본다면 내 삶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이 온통 아기자기한 운치와 행복한 그림일 것입니다.
자질구레한 생각들에 갇혀 이런 아름다운 객관을 놓치고 살아가는 것은 참 억울한 손실입니다.
가을의 정취에 맞게 그림처럼 예쁜 카페에서 향 좋은 커피 한 잔을 사 들고 나오면서 지금 나의 주변을 영상으로 찍어본다면 너무도 아름다울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마음을 어지럽히는 생각들을 완전히 제거하고 아름다운 영상의 평면 위를 움직여 다니는 나를 객석의 자리에서 바라본다면 내 삶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이 온통 아기자기한 운치와 행복한 그림일 것입니다.
자질구레한 생각들에 갇혀 이런 아름다운 객관을 놓치고 살아가는 것은 참 억울한 손실입니다.
얼마 전 어느 작은 음악회에서 귀에 묻어온 음악이 요즘 계속 되살아납니다.
“나는 고독의 친구, 방랑의 친구..”
대학시절 카페나 버스에서 자주 들었지만 한번도 가사를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던 노래였는데, 수 일 동안 머리 속에 거듭 되뇌어지는 이 노랫말의 전체 가사가 궁금해 인터넷에서 찾아 읽어보니 허무가 주제입니다. 이런 노래들의 영향력 아래 당시 우리 세대의 사람들은 허무에 깊이 공감했고 술 문화가 여학생들에게까지 보편화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나는 고독의 친구, 방랑의 친구..”
대학시절 카페나 버스에서 자주 들었지만 한번도 가사를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던 노래였는데, 수 일 동안 머리 속에 거듭 되뇌어지는 이 노랫말의 전체 가사가 궁금해 인터넷에서 찾아 읽어보니 허무가 주제입니다. 이런 노래들의 영향력 아래 당시 우리 세대의 사람들은 허무에 깊이 공감했고 술 문화가 여학생들에게까지 보편화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인간은 독백하는 존재, 혹은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존재라고 철학자들은 말합니다. 실로 우리의 머리 속에는
생각이 쉬지 않고 돌아가고 있고 우리는 늘 이 생각 저 생각 사이를 떠돌며 마음으로 정처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때로 생각은 독한 술처럼 시간도
잊게 만들고 지금 곁의 따스한 햇살도 꽃이 피고 지는 것도 단풍도 노을도 보지 못하도록 눈을 충혈시킵니다.
생각은 참 중요했습니다.
떠오르는 대로 아무 것이나 받아들이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 동안 생각의 자유가 있다고 믿으며 마음에 떠오르는 것들을 다 받아 들였지만 실상은 온갖 염려와 분노와 편견과 판단과 짜증과 자기 연민과 우울과 낙심과 불안에 종 노릇하고 있었던 것을 간과해왔습니다. 생각의 자유가 아니라 생각을 거부할 자유가 우리에게 더 값진 자유입니다. 밤새 나를 아프게 하고 독한 시기와 다툼으로 충동질하여 나를 허물고 쓰러뜨리는 생각들을 차단하고 거부하여 마음의 평화를 지켜야 마땅했습니다.
떠오르는 대로 아무 것이나 받아들이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 동안 생각의 자유가 있다고 믿으며 마음에 떠오르는 것들을 다 받아 들였지만 실상은 온갖 염려와 분노와 편견과 판단과 짜증과 자기 연민과 우울과 낙심과 불안에 종 노릇하고 있었던 것을 간과해왔습니다. 생각의 자유가 아니라 생각을 거부할 자유가 우리에게 더 값진 자유입니다. 밤새 나를 아프게 하고 독한 시기와 다툼으로 충동질하여 나를 허물고 쓰러뜨리는 생각들을 차단하고 거부하여 마음의 평화를 지켜야 마땅했습니다.
뉴 에이저(new ager)들은 생각을 비우고 현재의 의식으로 깨어있기 위해 명상을 하며 잡념을 떨치고 무상에
이르기 위해 애를 쓰지만, 그것은 손바닥으로 샘솟는 물을 막는 것처럼 죽어 의식이 사라지기 전에는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성경은 생각을
비우려는 헛된 노력으로 진을 뺄 일이 아니라 주야로 하나님의 말씀을 채우라고 합니다. 빈 컵에 담긴 공기를 빼기 위해서 단순히 컵에 물을 채우는
이치와 같습니다.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한다는 사도 바울의 표현처럼, 비우고 또 비워내도 도저히 비워낼 수 없게 바로
차오르는 잡다한 상념들을 예수님의 말씀을 가득 채움으로 비워지게 하는 것입니다.
허무나 방황이 아니라 진리이신 예수님이 친구가
되어야 우리의 인생은 영광으로 존귀로 인도함 받습니다.
예수님을 친구로 삼는다는 것이 인간미를 버리는 것 같고 수도원의 삶처럼 너무 뻔하고 지루하고 고리타분할 것 같지만 실상은 햇살의 눈부심. 나무와 식물과 하늘의 오묘에 눈뜨고 온 세상 만물에 깃든 하나님의 영광을 알아 보는 감성이 살아나게 되면서 하루하루 삶이 아름다운 여행이 됩니다. 퇴폐나 술이 인간미를 더해주는 것이 아니라 거룩과 사랑과 신뢰 속에 진정한 인간미가 무르익습니다.
예수님을 친구로 삼는다는 것이 인간미를 버리는 것 같고 수도원의 삶처럼 너무 뻔하고 지루하고 고리타분할 것 같지만 실상은 햇살의 눈부심. 나무와 식물과 하늘의 오묘에 눈뜨고 온 세상 만물에 깃든 하나님의 영광을 알아 보는 감성이 살아나게 되면서 하루하루 삶이 아름다운 여행이 됩니다. 퇴폐나 술이 인간미를 더해주는 것이 아니라 거룩과 사랑과 신뢰 속에 진정한 인간미가 무르익습니다.
얼마 전 내가 가끔 거래하던 여행사가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고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 사람만
건너면 거의 다 아는 사이가 되는 밴쿠버처럼 작은 도시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사업을 했던 사람이 이런 몰염치한 결정을 내리기까지 긴 시간 동안
불안과 절망과 탐욕과 이기심과 대화를 나눴을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 한 켠에서 ‘얼마나 힘들었으면..?’ 하는 동정도 일어납니다.
구미의 가스 폭발로 한국의 한 도시가 재난 지역으로 선포됐습니다. 한국 땅이 정치며 경제며 문화 예술이며 교회까지
성한 곳이 없이 어둠의 세력의 집중 포화를 맞고 있는데 사람들은 아직도 연회의 술에 취해 흥청거리고 있음이 너무 답답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불안이 팽배된 분위기 속에서 앞으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에 지레 겁을 먹고 염치를 버리는 일이 많아질 것입니다. 생각은 결국 행동으로 습관으로
삶으로 나타나, 사랑에 대한 생각이 나를 사랑으로 이끌어주고 미움에 대한 생각이 먼저 나를 미움으로 파괴시킵니다. 어디에 있든 상황보다 생을
대하는 마음 가짐이 삶을 이룹니다.
상황을 따라 마음에 잔꾀를 쓰며 얄팍하게 살아온 사람들은 평온하고 안정된 상황에서도 크게 요동하고 흔들리지만, 마음에 진실과 지혜를 쌓은 사람들은 모두가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깊고 아름답게 처세합니다.
상황을 따라 마음에 잔꾀를 쓰며 얄팍하게 살아온 사람들은 평온하고 안정된 상황에서도 크게 요동하고 흔들리지만, 마음에 진실과 지혜를 쌓은 사람들은 모두가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깊고 아름답게 처세합니다.
다윗의 시편은 마음에 떠도는 생각을 그대로 기도로 올려드린 고백들입니다. 퇴폐와 향락과 허무와 방랑이 아닌
지존자의 말씀을 친구 삼을 때, 천 명이 왼쪽에서 만 명이 오른쪽에서 넘어지고 쓰러지는 재앙이 닥쳐도 그 화가 우리에게 미치지 못합니다.
어려울수록, 바깥의 바람이 거셀수록, 무모하게 과열되고 있는 열기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말씀과 기도로 생각의 두께와 깊이를 더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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