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의 모양과 색깔이 다를 뿐입니다
한 겨울 영하 15도 넘는 혹한에 반 팔 옷을 입은 아이들의 모습에 내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 지 몰라 마음이
멍이 들고 있었다. 하루 종일 동네아이들은 골목 옆 마른 웅덩이에서 폐타이어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예림이의 오빠와 동생도 아이들에게 불려 나가
어울려 놀기도 했다. 타이어를 굴려 웅덩이에서 나오게 하면 이기는 게임인데 아무도 그만한 체격이나 힘을 가진 아이들이 없었다. 얼굴엔 마른버짐을
하고 얼굴과 손발이 튼 채 훌쩍거리는 코 밑으로는 영락없이 이차선 고속도로가 나 있는 아이들. 내 눈에 비쳐진 풍경은 마치 아득한 60년대로
돌아간 것 같았다.
예림이네 앞마당에 큰 버드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그 동네에 유일한 나무인 것 같았다. 거기에 그네가 달려
있었다. 그 나무 아래에서 아이들은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고향의 봄을 배웠다고 한다. 윤선생의 큰 아들은 한국에서 태어났고, 둘째는
싱가폴에서 났고, 그리고 그리고 막내는 영국에서 태어났다. 이 아이들에게 이제 기억에 남은 마음의 고향은 사막 끝 버드나무 그네가 걸린 이곳이
된 것이다. 내 마음은 하루 종일 북풍에 날리며 몰려다니는 비닐 봉지 만큼이나 스산하고 어지러웠다.
아내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이런 곳에서 어떻게 아이들을 키우며 사역을 견딜 수 있을까 하는 고민으로 가득 찬 것이
분명했다. 나도 인생의 험한 것을 조금은 경험했다고 생각했으나 막상 기막힌 상황, 특히 그 곳의 아이들과 윤선생의 세 자녀들의 현실 목도하자
하나님이 정말 공평하신 분인가라는 의문이 일기 시작했다. ‘부요한 서울의 하나님, 그래도 살만한 수도 타슈켄트의 하나님, 그리고 버림받은 것
같은 소금 땅 누쿠스 빈민가의 하나님. 과연 어떻게 하나님이 공평하시단 말인가?’ 혼돈과 분노가 내 심연을 휘젓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쉬고 있는데 예림이 아빠가 쉬는 방으로 들어왔다. 하루 동안 돌아본 도시와 이 곳에 대한 마음이
어떤지를 물었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정목사님, 과연 하나님이 공평하신 분입니까?”라고 묻는 것이다. 나는 순간 부끄러운 속내를 들킨 것 같아
당황했다. ‘아니 어떻게 내 속을 들여다 보기라도 하듯 이런 질문을 던진단 말인가?’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명색이 신학까지 한 목사로서
하나님이 공평하지 않다라고 할 수는 없는지라 ‘공평하시겠지요!’라고 대답했다. 나의 고민을 다 헤아리기라도 한다는 표정으로 그는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정 목사님, 하나님은 공평하십니다. 풍요한 서울의 하나님, 그래도 살만한 타슈켄트의 하나님, 이곳 오지 누쿠스의 하나님. 그 하나님은 동일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그 분의 축복의 모양과 색깔이 다를 뿐입니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저희 자녀들의 모습을 서울의 풍요로운 관점으로 본다면 가장 불쌍한 아이들로 비춰지겠지요. 그러나 저희는 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들에게 서울에서는 볼 수도 배울 수도, 깨달을 수도 없는 것들을 친히 가르치시고 경험하게 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곳에서 삶이 우리 아이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의 모양과 색깔입니다.”
축복의 모양과 색깔이 다를 뿐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내 속의 있던 혼돈과 근심을 흩어지고 빛으로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경험했다. 그렇다! 안전과 풍요, 더 나은 삶이란 틀 안에서 생각한다면 이곳에서 선교사의 자녀들은 희생당하는 불쌍한 인생일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아니신가! 그 분께 순종하는 자리가, 십자가를 지는 삶이 주님께 가장 아름다운 것 아닌가! 주님께 복된 것이라면 우리 가정에게도 복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으로 내 마음은 정리되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예림이 아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선배들이 땅 끝으로 가는 후배들 가정에 가르쳐 준 것이 하나 있는데 자녀들에게 가장 좋은 환경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 건강한 부부관계라는
것입니다. 저희 가정도 어린 아이들을 이곳으로 데리고 오면서 걱정과 고민을 많이 했지만 이 말이 절대 옳다고 믿고 그렇게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목사님, 주님의 인도하심이 있으시면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이 땅으로 와서 저와 함께 이 땅 카라칼팍스탄을 섬겨 주십시오. 그리고
우리 세 아이들에게도 한국말을 좀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나는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었다.
“정 목사님, 하나님은 공평하십니다. 풍요한 서울의 하나님, 그래도 살만한 타슈켄트의 하나님, 이곳 오지 누쿠스의 하나님. 그 하나님은 동일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그 분의 축복의 모양과 색깔이 다를 뿐입니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저희 자녀들의 모습을 서울의 풍요로운 관점으로 본다면 가장 불쌍한 아이들로 비춰지겠지요. 그러나 저희는 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들에게 서울에서는 볼 수도 배울 수도, 깨달을 수도 없는 것들을 친히 가르치시고 경험하게 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곳에서 삶이 우리 아이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의 모양과 색깔입니다.”
축복의 모양과 색깔이 다를 뿐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내 속의 있던 혼돈과 근심을 흩어지고 빛으로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경험했다. 그렇다! 안전과 풍요, 더 나은 삶이란 틀 안에서 생각한다면 이곳에서 선교사의 자녀들은 희생당하는 불쌍한 인생일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아니신가! 그 분께 순종하는 자리가, 십자가를 지는 삶이 주님께 가장 아름다운 것 아닌가! 주님께 복된 것이라면 우리 가정에게도 복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으로 내 마음은 정리되어지고 있었다.
누쿠스에서 삼 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이른 아침 떠나려던 계획은 사람이 그리웠던 예림이네의 청으로 점심까지 먹고
나니 오후를 넘기고 말았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는 우리 두 부부는 서로를 쳐다보지 않은 채 앞을 향하고 있었다. 몇 시간을 달려 아무다리아강이
굽어 보이는 사막 언덕에 이르자 갑자기 아내는 차를 좀 세우라고 했다. 차에서 내린 아내는 서쪽으로 막 넘어가는 해와 사막을 굽이쳐 흐르는
강물을 물끄러미 쳐다 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차 안에 잠들어 있어 나도 밖으로 나가 아내와 함께 나란히 옆에 섰다. 바람이 살을 에는 것
같았다. 아내는 내게 물었다. “여보, 당신을 이번 선교지 방문을 통해 무슨 말씀을 들었어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그냥 아내의 얼굴을
힐끗 쳐다 보았다. “여보, 이곳으로 와야겠지요. 이곳으로 우리를 부르시네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아내의 손을 꼬옥 잡고 눈을
감았다.
[SEED Canada 대표 / 778-316-3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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