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3단계 에로스 (Eros) (감정적, 육신적 사랑/ 나 중심의
사랑 )
필레오 (Phileo) (친구와의 사랑/ 진실된 우정/ 인정하고 인정받는 사랑)
아가페 (Agape) (조건 없는 사랑/ 하나님의 사랑)
필레오 (Phileo) (친구와의 사랑/ 진실된 우정/ 인정하고 인정받는 사랑)
아가페 (Agape) (조건 없는 사랑/ 하나님의 사랑)
우리는 사랑(아가페)을 먹고 살아야만 한다.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아가페)이심이라.”(요1 4: 8) 그런데 우리 모두가 진실된 사랑에 굶주려
있다. 우리 주위에는 육신적인 사랑, 자기 중심적인 Eros 사랑만 넘쳐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 그 결과로
하나님의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수준 낮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랑”의 의미가
하나님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사랑”의 의미와 아주 다르다는 것이다. 이제 사랑에 대해서 약간의 분석을 해보면서 우리가 사랑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사랑을 주고받는 삶을 살아가기가 그렇게 어려운 이유를 파악해 보고자 한다.
우리말이나 영어에는 사랑의 마음을 표현하는데 오직 “사랑” 이라는 단어 하나 밖에 없지만 헬라 말에는 사랑을 몇
가지로 나누어서 각각을 다른 단어로 표현해 놓았다. 성경에 나오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거의 대부분이 아가페, 즉 하나님의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인데 우리가 사용하는 사랑은 육신적인 에로스 사랑을 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같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면서도 우리는 성경과는
아주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헬라 말에 의하면 사랑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제일 초보적인 단계는 에로스 사랑이다. 감정적이고 육신적인
것이며 세상적이고 나 중심의 사랑이다. 어린 아이가 초콜렛이나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사랑이고, 이성의 겉모습만을 보고 빠져 들어가는 감성적인
사랑이며 나의 육체적인 욕구를 만족시키고자 하는 이기적인 사랑이다. 어린아이에게는 자기를 편안하게 해주고 맛있는 것을 주는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고 딱딱한 음식이나 입에 쓴 약을 주는 사람은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어른들도 이 사랑에서 벗어날 줄을
모른다.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아주 중요한 문제가 다가온다. “우리가 어떻게 에로스가 가득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을 배우며 연습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답은 성경, 특히 창세기에서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은 결혼을
통해서 배우고 연습되어져야 한다. 하나님의 설계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나서 아담을 창조하신 다음에 가장
중요하게 이루신 일이 무엇인가를 보면 바로 답이 나온다. 아담의 갈비뼈로 이브를 창조하셔서 아담에게 데려오신 일이다. 아담과 이브 두 사람이
하나 되게 하여 가정을 이루게 하신 것이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참으로 심오한 뜻이 담겨져 있다.
(창 2:20-23)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창 2:20-23)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그리고는 바로 이어서 말씀하신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아담이 비록 하나님의 형상이었지만 혼자서는 결코 온전하지 못하기에 이브를 “돕는 배필”로 만드셔서 아담을 보완하게 하신 것이다. 그렇게 둘이 한
몸으로 연합되어야만 하나님과 온전하게 교제할 수가 있고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을 깨달으며 실천할 수 있게 된다는 말씀인 것이다. 사탄은 이 비밀을
잘 알고 있기에 우리의 가정을 파괴하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이 죄에 떨어짐으로써 아가페 사랑의 능력이 망가져버렸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이제 아가페 사랑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사랑이고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할 수 있는 사랑이 되었다. 여기에 우리의 안타까움이 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실제 우리의 삶에서는 거의 전혀라고 할 만큼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아가페
사랑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아가페 사랑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징검다리가 필요하다. 바로 필레오 사랑이다. 친구와의 사랑이고 진실된 우정이며 서로를 인정하고 인정받는 사랑이다.
나이에 상관없이, 처지에 상관없이, 서로를 인격적으로 인정하는 사랑이다. 필레오 사랑이 체질화되고 습관화되면 우리는 그 다음 단계인 아가페
사랑을 훨씬 쉽게 배우고 연습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 한국의 유교적인 전통과 관습은 이 필레오 사랑을 근원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군사부 일체
(왕과 선생과 아버지는 같다), 장유유서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존중하라) 같은 삼강오륜의 계명들은 수 백 년 동안 우리 사회를 아주 딱딱한
수직적인 구조로 만들어 놓았다. 지연, 학연이 온 사회를 지배하고 있으며 선후배 사이가 군대 계급 사회처럼 엮여져 있다. 또한 수십 년간의 일제
시대와 이어지는 군사 독재가 그 수직성을 더욱 강화시켜 놓았다. 그 결과로 우리 민족의 인간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능력과 인격적인 대화의 능력이
심각하게 망가져버렸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웃을 우리 몸같이 사랑하라고 하셨고, 더 나아가서 어린아이처럼 되어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마 18:3) 수평적인 사회를 의미하는 말씀이고 필레오 사랑, 아가페 사랑의 관계를 말씀하신 것이다. 입은 옷이나 사회에서의 직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전심으로 필레오 사랑을 배우고 연습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아가페 사랑의 의미를 깨달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웃을 우리 몸같이 사랑하라고 하셨고, 더 나아가서 어린아이처럼 되어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마 18:3) 수평적인 사회를 의미하는 말씀이고 필레오 사랑, 아가페 사랑의 관계를 말씀하신 것이다. 입은 옷이나 사회에서의 직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전심으로 필레오 사랑을 배우고 연습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아가페 사랑의 의미를 깨달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필레오 사랑을 배우고 실천할 수 있을까? 간단하다. “인격적인 대화”이다. 일방적인 가르침이 아니고
상대방과 인격적인 만남을 갖는 대화이다. 서로를 귀중한 사람으로 인정하면서 마음을 나누는 대화이고, 지성을 채워주며 자극하는 대화이고, 의지를
세워주는 대화이다.
질 문 ——————————————————————————————————
당신의 이성 관계 / 부부 관계를 ‘어떤 사랑’이 주관하고 있나요?
대인 관계에서 에로스와 필레오와 아가페 중 어느 것이 당신을 움직이나요?
나의 속사람은 대부분의 경우 ( ) 사랑에 의해 움직이고 때때로 ( ) 사랑에 의
해 움직인다
—————————————————————————————————————
깨어지는 결혼, 늦어지는 결혼
질 문 ——————————————————————————————————
당신의 이성 관계 / 부부 관계를 ‘어떤 사랑’이 주관하고 있나요?
대인 관계에서 에로스와 필레오와 아가페 중 어느 것이 당신을 움직이나요?
나의 속사람은 대부분의 경우 ( ) 사랑에 의해 움직이고 때때로 ( ) 사랑에 의
해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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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지는 결혼, 늦어지는 결혼
거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사회적인 여건의 변화가 가장 심각한 것이리라. 돈 없이 출발하는 젊은 부부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삶을 개척해가기가 너무 어려운 사회가 되어버렸다. “제 먹을 것은 가지고 태어난다” 는 옛말이 무색한 사회가 되었다. 온
힘을 다해서 살아보려 애쓰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어린 미혼모들을 보면서, 싱글 맘과 아빠들을 보면서, 부부가 헤어져 사는 기러기 가족들을
보면서, 아프고 안타까운 마음을 추스르기가 어렵다.
이렇게 주변 상황이 어렵게 되면서 마음의 깊은 상처가 더 크게 부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인간의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삶의 자세 때문이다. 남편과 아내를 하나님의 존귀한 인격체로 대하기보다 상대방의 상품 가치를 중요시하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구자형 목사(밴쿠버내적치유사역원장) sarangheali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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