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8일 금요일

정성헌선교사의 선교칼럼



믿음을 건축하다- 1.도전



추방된 지 7개월 만에 선교지로 돌아왔다. 그러나 더 이상 거주등록을 할 수 없어 가족을 수도에 두고 비거주 사역을 시작했다. 사역지에서 170키로 미터 떨어진 인근 도시로 가서 다시 택시를 타고 잠입해 들어갔다. 성도들로 북적거리던 사택엔 정막만이 지키고 있었다. 창틀에 내린 누런 흙먼지가 주인 없이 지난 시간을 말하는 것 같았다. 감개무량하고 감사하기 그지 없었다. 다시 돌아와 섬길 수 있도록 해 주신 주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우리 가정이 추방되어 한국에 머무는 동안, 자체건물을 가지지 않은 종교단체의 등록을 취소한다는 신종교법이 발효되었다. 개척한 교회는 ‘고려인문화센터’를 임대하여 국가에 등록을 했었다. 그러나 내가 없는 사이 교회등록이 취소되었고, 법적으로 공적 모임을 할 수 없어 성도들은 소그룹으로 모이고 있었다. 돌아온 교회에는 산적한 문제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속히 새로운 예배처소를 구입하거나, 예배당을 건축해야 했다. 도착한 사택 마당에서 기도를 하는데 사택 맞은 편에 예배당을 건축하라는 음성이 들렸다. 사택 부지가 넓었기 때문에 공간은 충분했다. 그런데 10월 26일 기공예배와 함께 건축을 시작하라는 음성이 이어졌다. 나는 난감했다. ‘정말 이것이 주님의 음성이란 말인가? 10월 말에 어떻게 건축을 시작한단 말인가? 11월 초면 눈이 오기 시작하고…… 겨울은 최저 영하 25도까지 내려가는데, 어떻게 겨울에 공사를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인지? 내년 봄이면 몰라도…….’

한 참 고민스러운 마음을 모우며 기도하는데 사택에서 요란하게 전화 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열쇠로 열고 들어가 전화수화기를 들었다. 수화기에선 믿기지 않게 파송교회 교구담당목사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부산 본사의 오부장입니다. 잘 도착하셨는지요? 저희가 손을 모으는 중에 회장님이 그 곳에 사옥을 지으라는 말씀을 하셔서 사장님의 허락을 받고 저희가 적극 돕기로 했습니다.”
너무도 놀라운 일이었다. 추방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곳에서는 국제전화가 되질 않았다. 그런데 처음으로 걸려온 전화가 파송교회에서 온 국제전화이고, 예배당을 지으라는 내용이었다. 통신사정이 좋아 진 이유도 있겠지만, 나는 주님이 주시는 증거로 받아들이고 마음을 확정했다.

목사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성도들이 사택으로 달려왔다. 기쁨으로 다시 해후하게 된 것이다. 몇 일이 지나자 성도들을 모아 예배당 건축계획을 의논했다. 교회등록과 함께 합법적인 모임을 위해서 자체건물이 필요하다는 것은 다 동의했지만, 10월 26일 기공예배를 드리고 건축을 시작하겠다는 나의 말에 모두가 의아해 했다. 성도들은 겨울이 시작되는 시점에 무슨 공사냐는 의구심을 품었지만, 다시는 못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던 목사가 다시 돌아왔으니 하자는 대로 따르는 입장이었다.

건축을 결정했지만 풀 뿌리 수준의 성도들과 함께 건축을 해야 한다는 것이 고민이었다. 그리고 법적으로 외국인이 종교단체의 활동에 개입할 수 없는 입장이고, 안 밖으로 위험요소도 많았다. 제일 큰 고민 거리는 건축자재를 구하는 문제였다. 계획경제였던 쏘련 연방이 해체되면서 그 곳엔 그 때까지 7년이 지나도록 건축자재시장이 형성되질 않고 있었다. 건축자재를 시장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국가기관이나 개인 집에서 사와야만 했다. 그것도 대부분은 장물이었다. 그리고 건축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지…… 현지 사정을 알면 알수록 나의 고민은 깊어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볼료자가 나를 찾아왔다. 볼료자는 교회가 개척되자 온 가족이 교회에 나온 첫 가정이다. 그는 극동 하바롭스크에서 태어난 고려인이다. 그의 아버지는 1947년 시베리아 벌목공으로 왔다가 돌아가지 않고 러시아에 정책했다. 가정을 이루었으나 삶이 어려워 쌀 농사를 지으러 아랄까지 흘러 들어온 가정이다. 그는 그곳에 자라 학교교사를 했고, 요식업으로 돈을 많이 벌기도 했다. 그리곤 한 때 놀음에 빠져 많은 재산을 날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 당시에도 도시 중심에 두 개의 가게를 운영하는 재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대화 도중 볼료자는 예기치 않게 불쑥 자신에게 건축을 맡겨 달라고 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당황을 했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수도에서 건축으로 빚어진 현지인들의 재정사고를 보고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중에는 함께 기도모임을 하던 동료선교사의 교회에서 벌어진 사건도 있었다. 그 교회의 건축을 맡았던 고려인이 막대한 재정을 들고 모스크바로 도망을 쳤고, 동료선교사는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도망친 사람의 장남이 교통사고로 하반신 불수가 되었고, 얼마 후 본인도 교통사고로 객사하여 집안이 풍비박산이 난 일도 있었다.

나는 볼료자에게 왜 힘든 건축을 맡고자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하나님의 집을 짓는데 자신이 꼭 헌신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건축을 맡게 되면 많은 돈이 오가고, 늘 그 곳에서 부정부패를 보아왔던 불신자들과 성도들 사이에서는 자신에 대한 수많은 오해와 억측이 난무할 텐데 그 짐을 어떻게 지겠냐고 물었다. 그는 말이 없었다. 나는 성도들 중 누구에게 이 일을 맡기더라도 자신의 예배당을 짓는 일이니 어떤 보상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진정한 명예와 돈은 한 번에 취할 수 없는 일임을 설명하려 했다. 볼료자는 내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차리고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목사님, 저는 돈 때문에 이 일을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집을 짓는 일에 섬길 기회가 주어지길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SEED Canada 대표 / 778-316-3579]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