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소아시아와 요한계시록 일곱 교회
(2) 서머나 (SMYRNA)
서머나는 대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의 작가로 유명한 고대 헬라의 시인 호머의 고향으로도 전해지고 있다. 옛 도시
서머나는 참으로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가진 도시였음이 분명하다. 서머나가 잠시 그리스령이었으나, 터키 초대 대통령이었던 무스타파 케말 장군에
의해 터키에 환원되었다. 당시 독립군을 지휘했던 케말 장군이 그리스와의 전투에서 서머나를 되찾은 후 서머나 바닷가에 앉아 술을 마시며 도시의
아름다움에 취하여 시상이 절로 떠올랐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 급격히 진행된 무분별, 무계획적인 개발과 도시화의 결과로 그 아름다움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1) 초기역사
고고학 발굴에 의하면 BC 3천년 경부터 사람들이 거주한 흔적이 나타난다. 그리스에서 이주한 이오니아계 사람들이
살기 이전에 레레그(Lelerler)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거주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현재의 테페쿨레(Tepekule)에서 발견된 도자기 파편들은 BC 10세기경의 것으로 이 시기부터 사람들이 이곳에
집단적으로 거주했음을 보여준다. 현재에 발굴되어 볼 수 있는 거주지 터들은 BC 9-7세기의 것들이며, 이들 가운데 BC 640년에 건축된
아테나(Athena) 신전도 포함되어 있다.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의하면 BC 665년 리디아 왕국의 기게스(Gyges)의 이오니아 지역 침공 때 공격을 당했으나,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견고한 성벽을 중심으로 침략자들을 격퇴했다. 그러나 BC 600년, 알야테스(Alyattes) 왕이 이끄는 리디아군에 함락을 당해 도시는 폐허가 되고 주민들은 주위로 분산 이주하였다. BC 500년경에 아테나 신전이 복구된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여 이 시기에 다시금 도시가 복구된 것처럼 보이나 이전의 규모로 회복하거나 번영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의하면 BC 665년 리디아 왕국의 기게스(Gyges)의 이오니아 지역 침공 때 공격을 당했으나,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견고한 성벽을 중심으로 침략자들을 격퇴했다. 그러나 BC 600년, 알야테스(Alyattes) 왕이 이끄는 리디아군에 함락을 당해 도시는 폐허가 되고 주민들은 주위로 분산 이주하였다. BC 500년경에 아테나 신전이 복구된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여 이 시기에 다시금 도시가 복구된 것처럼 보이나 이전의 규모로 회복하거나 번영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서머나 출신으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의 저자 호머(Homeros), 2세기경 서머나에 살았던 아엘리우스
아리스티테스(Aelius Aristides)는 멜레스 강변에 호머에서 헌사된 호메레이온(Homereion)이라는 신전이 있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리고 파우사니아스(Pausanias)도 호머와 관련해서 “서머나에 멜레스강이 있는데, 물이 깨끗하고 좋다. 강 바로 곁에 호머가 시를
지었다고 전해지는 강의 근원을 이루는 샘이 솟아나는 동굴이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멜레스강은 이후에 터키인들 사이에 멜레즈
시내(Melez Çay)라고 불리며, 1895년 서머나에서 가장 수질이 좋은 이 물을 이용해 서머나 최초의 터키 전통 술인 라커공장이 세워지고도
했다. 공장이 건축될 당시까지도 샘 근처의 아르테미스 신전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지금은 개발의 물결에 흔적이 전혀 남아있지 않고 있다.
(2) 헬라시대
아나톨리아를 정복하던 알렉산더 대왕(BC 334)이 이곳에 주둔하여 “서머나에 새 도시를 세우라”는 꿈을 꾸고
서머나에 성채를 건설하여 주둔하였고, 자연 항구와 교통의 요지로 인해서 상업도시로 발전되었으며, 많은 디아스포라 유대인(Diaspora
Jew)들이 이곳에 이주해 살았다. 현재도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으며, 회당이 여러 개 있다.
(3) 로마시대
서머나는 로마에 충성을 다했으며(BC 133년 이후) 로마 원로원은 그들의 공로와 충성심을 참작하여
티베리우스(Tiberius) 황제의 신전을 세우도록 하였다. 서머나는 아시아 제1의 도시라는 명예를 얻기 위해 에베소, 버가모 등과 경합을
벌였다(BC 55-56).
스트라보(Strabon)는 이 도시를 “모든 도시 중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표현했다. AD 178년,
대지진으로 도시가 파괴되었을 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도시 재건을 명령하여 재건설되었고, 1688년과 1778년에도 큰 지진이 있었다. 역사를
거쳐 리디아, 헬라, 아랍, 비잔틴, 십자군, 터키, 그리스 등의 수많은 전쟁을 치르는 동안 대부분의 건축물들이 파괴되고 소실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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