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1일 토요일

길진리생명이신 그리스도 예수 < 17 >









0083. 프랑스의 두 마을 이야기(1): 산골 마을 ‘샴봉’
제2차세계대전시 유대인 3,500여명을 숨겨 돌봐준 『위그노』마을
로마교황청이 프랑스의 왕권을 동원하여 거의 한 계절 동안 계속 된 성 바돌로메 대학살로 인해 남불(南佛)로 피신하여 살았던 위그노(Huguenot)와, 역시 로마교회의 끊임없는 박해를 피해 산속으로 피신하였던 보드와(Vaudois/Waldensian)들의 유적들을 찾아나섰다. 22년 전의 일로 아무에게도 해본 적이 없는 이야기를 처음으로 글로 쓰고 있다. 지역들이 너무 광범위하여 두 곳을 먼저 보기로 하고 프랑스의 남동부 지역의 세벤느(Cevennes) 산악지대에 위치한 구릉지대(les Plateau)에 가까운 인구 3천 여명의 마을 『샴봉』(Le Chambon-sur-Lignon)에 도착하였다. 상세한 프랑스 지도가 아니면 표기가 되어있지 않는 산골로써 주민 거의가 위그노들의 후손들로서 매년 9월 첫 주가 되면 전세계에서 위그노들의 후손들이 이곳 산골로 모여 천주교회의 박해를 피해 산 속에서 숨어 살면서 믿음의 주(主)를 찬송하였던 저들의 선진들의 믿음을 기리고 있었다. 산골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을 보니 눈물 겨웠다. 워낙 먹지 못하고 쫓겨다닌 위그노들의 지도자 - 목사, 장로, 집사 - 들의 평균수명이 47세를 넘지 못한 때였다. 노예선으로 끌려가 바다에 수장된 성도들의 명단 수백 명이 색바랜 종이 위에 기록되어 있었다.

제2차세계대전 발발 하루를 앞두고, 이곳 교회로 부임한 프랑스 개혁교단 소속의 트로큼(A. Trocme)목사 부부. 그는 이곳 저곳 농경지를 중심으로 넓게 퍼져있었던 성도들의 구역성경공부 지도를 위해 13개의 구역과 지도자들을 세웠다. ‘히틀러의 교황’ 『비오』12세의 로마교황청을 통해 나치는 프랑스의 우방으로 선전되고 있었고 친 나치 포스터들이 온 프랑스에 나붙고, 일부 ‘레지스땅’들의 반격 외에는 나치는 총성 한 방 울리지 않고 빠리 개선문 아래로 진군하였다. 로마교황청의 ‘20세기 십자군 나치’를 통한 전유럽천주교화의 계획이었다. 나치의 진군으로 프랑스도 이제는 더 이상 유대인들에게 안전한 나라가 되지 못하였다. 스위스로, 미국으로, 남미로 멀리 떠난 자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그 나라안에서 ‘도피성’을 찾아야만 하였다. 천주교회에 의해 대량 학살당하고 『빠리』거주가 불법으로 선언되었던 위그노들. 유대인들은 저들과 같은 운명을 이미 경험하였던 위그노들의 산골마을로 한 두 명씩 찾아들기 시작하였고 『샴봉』의 산골사람들은 그들에게 은둔처를 제공하였다. 이 소문이 유대인들에게 퍼져나가기 시작하자 이제는 유대인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이 마을로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전교생이 14명에 불과하였던 산골초등학교의 유대인들이 들어오면서 학생 수가 220명을 넘게 되어 증축이 불가피 하였다. 트로큼 목사의 지도 아래 동네사람들이 증축한 학교교실은 전시에 마을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충당하여 여름캠프장 숙소같이 조그만 건물들이었다.

트로큼 목사는 깊은 번뇌 속에서 기도에 몰입하였다. ‘산상수훈’을 읽었고 ‘누가 네 이웃이냐?’라는 주님의 음성을 기억하였다. 유대인들을 숨겨주다가 발각되는 날에는 누구나 유대인들과 같은 운명을 각오해야만 하였다. ‘구약들’(舊約, Old Testament, 산골사람들은 유대인들을 ‘구약들’로 불렀다)은 매일매일 『샴봉』으로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트로큼 목사의 마음은 확정되고 확정되었다. “아버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을 저희들에게 보내주시는데 어떻게 저희들이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13명의 성경공부 구역장들과의 연락망도 조직되었다. 스위스나 스페인으로 가고자 하는 유대인들은 교인들이 비밀 루트를 통해 스위스나 스페인 국경까지 인도하였다. 그리고 단 한 푼의 금전도 요구하지 않았다. 로마카톨릭교회를 통해 조국 프랑스를 나치에 매도한 ‘빼땅’(Petain)정권의 새 수도 ‘비쉬’(Vichy)는 이 마을에서 불과 140키로 떨어진 서북편에 있었다. 비록 산골이기는 하였지만 나치의 비밀경찰(Gestapo) 주둔지역과 너무나 가까웠다. 예기치않은 나치의 순찰이 오기 전날에는 알 수 없는 사람으로부터 트로큼 목사에게 꼭 전화가 걸려왔다. “내일, 내일” 그리고는 전화가 끊어졌다. 전 유대인들은 깊은 숲속으로 피신하였고 비밀경찰이 철수하면 『샴봉』마을 성도들은 교회로 모여 하나님의 돌보심을, 온 감격으로 찬송하였다. 이 찬송소리를 신호로 숨었던 유대인들은 다시 숲을 빠져나왔다. 필자가 들어가본 숲은 나무는 크지 않았으나 대낮에도 햇빛이 차단될 정도로 빽빽한 숲이었다. 후에 트로큼 목사와 마을 지도자 2명 포함 모두 3명의 지도자들이 나치 비밀경찰에 구속되어 수용소에 갇혔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독일의 패전을 앞두고 죄수들이 죽음의 수용소로 재수용되기 일주일 전, 이들 3명은 수용소의 서류처리 미비로 기적적으로 석방되어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1940-44년 사이에 트로큼 목사의 지도 아래 이 마을에서 목숨을 건진 유대인들의 수는 무려 3,500명이 넘었다. 이 마을을 거쳐 이스라엘로 돌아간 많은 유대인들이 다시 이 마을로 돌아와 자신들의 은인들에게 감사를 표시하게되었고 1979년에는 이 곳 마을 중심거리의 담벽에 기념헌판을 부착, 저들을 구해준 샴봉 마을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시하였다. 시편 말씀 “의인은 영원히 기념하게 되리로다”(시편 112:6)는 히브리어와 프랑스어로 기록하였다.


이곳에서 태어난 유대인 ‘소바지’(Sauvade)씨는 영화제작자가 되어 이 마을을 소재로 다큐멘터리 영화 ‘Weapons of the Spirit’을 제작함으로써 거의 반세기 만에 이 이야기가 대대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이스라엘 정부에서는 이곳에 조사단을 보냈다. 그러나 주민들 어느 누구 한 사람도 이 일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다. 이미 세상을 떠난 트로큼 목사 내외를 도와 구약백성들을 숨겨주었던 젊은 베텍스(Bettex)목사도 이제는 팔순(당시 78세)을 바라보고 있었고 『샴봉』부읍(邑)장 등 주민 40여명은 이스라엘 정부 초청으로 예루살렘의 『야드 바셈』(Yad Vashem, 유대인 대학살 추모기념관)에 새겨진 ‘『샴봉』마을 기념헌판식’에 참석하였으며, 이스라엘 정부는 유대인들 구출에 생명을 걸었던 이들에게 『의(義)의 메달』을 수여하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정부는 “우리가 당신들의 선행을 폭력(?)으로 노출시키고자 한 행동을 정중히 사과합니다”라는 사과문을 발표하였다.

영화제작자로 성장한 ‘소바지’씨의 가족을 숨겨준 마리 브로뜨 할머니 집을 방문, 한나절 대화를 나누었다. 이 할머니의 친아들은 어린시절에 시도 때도 없이 어머니로부터 회초리를 맞았던 이야기를 필자에게 들려주었다. 혹시나 어린 아들이 ‘너희집에 유대인이 있지?’하고 누가 물으면 ‘아니오’라고 대답할 것이며, ‘있다’고 대답하면 이렇게 호되게 맞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실제로 어머니로부터 회초리를 여러 번 맞았다고 어린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그는 장성하여 그 지역의 중학교에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0084. ‘교리를 부패하게 만드는 유전들’
유전은 교리(敎理)를 부패케 한다. 인간의 유전을 하나님의 말씀과 동등한 선에 올려 놓고 외경(外經)을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였던 가장 사단적인 『트렌트』공회(1545-63). 그 후 “미혹케하는 영과 마귀의 교리를 좇아”(딤전4:1) 로마카톨릭교회가 “발람과 니골라 당의 교리”(계2:14,15)들을 제정한 이 “사단의 회”(계2:9)가 어째서 거룩한(?) 기독공회란 말인가? 이러한 것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가르침(행2:42)을 벗어나 “지내쳐”(요이1:9),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벗어났다. 진정한 교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미 확정한 것들로서 우리에게 온전한 교리로 주어졌다. 사도들은 후에 올 공회들에 앞서서 교회의 생명의 원천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를 기록한 자들이었다. 딤후3:16,17 말씀은 우리를 “온전케”하시는 교리에 대해 말씀하신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구비되게 하려 함이니라”. 어느 교단 할 것 없이 기독교 신학에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아시아의 일곱교회를 심판하듯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아래 있다. 그러나 천주교 신학에서는 성경은 ‘교회의 책’이 된다. 즉, 로마교황 아래 예속된 책으로 교황의 권위 아래 종속된 책에 불과하다. ‘성경과 유전’을 언급할 때 성경은 늘 소문자(scripture)이고 유전은 대문자(Tradition)로 기록된다. 로마교황청의 ‘유럽 공동체’(EC)는 2006년 8월을 기해 ‘그리스도와 교회’의 두 단어 기술을 그리스도는 ‘소문자’(christ)로 쓰기로 결정, 강제로 시행되고있으며 교회는 천주교의 전통대로 그대로 대문자(Church)를 고수하고 있다. 이제 세계종교통합을 주도, 모든 종교 안에 ‘메시아’(그리스도)의 존재를 인정할 채비를 마쳤다.


바람들아 외쳐라 예수 구원하신다
기뻐하라 나라들 예수 구원하신다
구원하는 소리를 산과 들에 전하라
우리들의 승전가 예수 구원하신다
(찬송가 252 / 기쁜 소리 들리니 ④)

구영재 선교사 [KOO / PO Box 8844 Victoria, BC V8W 3Z1 Canada]
 
 
 
 
 

교회음악Plus











교회음악이란


음악이 교회 안에 있다고 다 교회음악은 아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교회에서 사용한다고 하나, 교회음악인 것처럼 위장하고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세상음악들도 있다.

세상의 음악은 서양 음악, 동양음악, 전통음악, 클라식(고전음악), 째즈음악, 불루스, 탱코, 디스코, 락, 헤비메탈, 국악등으로 분류하거나, 시대적인 것, 민족적인 것, 요새는 대부분이 춤 없는 노래, 춤추며 노래하는 곡으로 나누인다. 사람에 따라, 자신이 선호 하거나, 좋아하는 것을 기준으로 분류한다.

교회에도 음악이 여러 가지 있다. 합창찬양곡, 찬송곡, 복음성가, 복음송, 워쉽송, 크리스찬 락, 크리스찬 헤비 메탈, 토착화를 위한 민족음악(국악) 등으로 분류하고 나눈다. 교회에서의 음악도 세상의 음악과 별 다른 것이 없음이 현실이다.

그러나 교회음악은 구원 받은 자들이 부르는 노래, 음악이어야 한다. 세상적이면서 구원받은 사람처럼 행세하며 부르는 노래가 되어서는 안된다. 구원의 확신 속에서 부르는 노래, 음악이 교회음악이어야 한다.

교회음악은 교회가 가지고 있는 사명과 기능을 따라 예배음악(찬송, 찬양, 구원에 대한 감사 음악), 교육음악(성경의 내용을, 기독교인의 올바른 삶의 방법을 가르치는 음악), 전도/선교 음악(전도, 선교를 목적으로 구원으로 인도하는 음악), 친교음악(서로 교제하고 친교하는 목적으로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는 음악)으로 기준을 가지고 사용되어야 한다. 교회 안에서의 음악은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교회의 기능과 목적에 맞게 선택되고 사용되어야 한다.             
홍동근 / 목사, Music Minister




사망에서 생명으로 (6)



주님의 제자로 산다는 것은


전 세계를 들썩하게 했던 50여개국에서의 정권교체와 새로운 대통령들의 취임식이 있어 그 어느 해보다도 주목되어지고 흥분되었던 2012년도 이제 한달을 남겨두고 있는데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대한민국의 12월 19일 대선, 밴쿠버에 사시는 한인그리스도인 여러분들도 당연히 기도해주시고 응원해주실줄 믿습니다. 11월 마지막 주 칼럼으로 개인적인 저의 간증은 마무리하고 12월부터는 본격적인 ‘통일담론’에 대한 나눔들을 하려고 합니다.

지난 호에서 나누었던 것처럼 한국에 온지 3년쯤 되었을 때 DTS훈련과 중보기도학교 훈련을 마치면서 제게 새로운 인생이 열렸습니다. DTS 훈련 중에 저는 강원도라는 지역으로 전도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약 두달 넘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강원도 지역을 돌며 기도하고 예배하게 되었는데 2005년 1월 1일 정선이라는 지역에서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나님, 올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십니까?’라는 질문을 올려드리게 되었습니다. 그 질문과 함께 제 눈앞에 강원도 태백산 정상에 있는 ‘천제단’이 보였고 그곳을 내려다보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세상의 헛되고 헛된 신을 숭배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산을 밟고 예배하는데 왜 나를 위해서는 예배하는 사람이 이렇게 없느냐?” ‘천제단’은 단군을 우상화하여 숭배하는 곳이었습니다.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이고 느껴지는 하나님의 외로움에 저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고 ‘하나님,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제가 여름에 와서 하나님 만족하실 때까지, 하나님 마음 시원해지실 때까지 예배드릴게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라고 하나님께 응대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약속이 훗날 저의 인생을 ‘중보기도자’로서의 삶으로 인도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가운데 있는 첫 사역일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그야말로 순수한 마음 하나로 정말 혼자 올라가서 예배하려고 주님과 개인적으로 했던 약속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약속을 하나님께서는 중보기도학교에서 구체화시켜주셨고 결국 ‘한반도의 회복, 부흥의 시작’이라는 기도회가 탄생되었고, 40일간 쉬지 않고 예배하고 기도하는 첫 사역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부흥의 불씨’팀이 중보기도학교에서 결성되고 태백지역의 교회들이 연합하여 40일동안 24시간 산에 텐트를 치고 서로 교대해가며 예배하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대한민국에서 한다하는 무당들이 와서 기를 받는 ‘천제단’안과 밖에서의 영적전쟁을 통해 저는 제대로 영적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고, 대한민국의 8대 영역을 올려드리고 기도함으로 한국에 온지 3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한국의 모든 구석들을 들여다보면서 문제점들을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 했습니다.

이후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설립하게 되고 끊임없이 중보기도와 예배를 통해 한반도의 회복을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통일을 계획하시고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사역에 눈을 뜨게 되었고, 태백산 기도회가 지난 3년 뒤인 2008년에는 통일을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NK100일 중보기도’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북한을 위한 100일 기도를 2008년과 2009년에, 이후 3년간은 남한과 북한을 함께 올려드리며 New Korea, 통일코리아의 시즌을 맞이하고 살아가야 할 대한민국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준비해야 할 여러 가지 문제들과 방향을 보게 되었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북한을 바라보고 통일을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NKB(New Korea Builders)라는 새로운 공동체로 통일을 향하여 전진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주님의 제자로 산다는 것은 ‘순종’이 첫 시작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북한과 통일이야기, 다음달부터 본격적으로 나누기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오 테레사 선교사 / ot2022@hanmail.net]
 
 
 
 
 

예수님의 마음 치유




제 15 장 점점 씩씩해져가는 여성들 (Tomboys), 작아져가는 남성들


운전대를 잡아야만 하는 누나
톰보이 강의를 들은 선교사 지망생 박 집사가 눈을 반짝이면서 말한다. “목사님, 오늘 강의 중에 우리 누님 이야기를 많이 하셨어요. 저희 누님이 바로 ‘왕 톰보이’인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누님에 대한 의문 또 누님과 매형 사이의 여러 의문도 풀렸습니다. 저희 누님은 늘 운전대를 자신이 잡아야 합니다. 만일 어쩌다 매형이 운전을 하는 때는 너무나 차 안이 시끄럽지요. 누님이 말로 운전을 다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물었다. “집사님은 누님과 사이가 어땠습니까?” 씩 웃으며 대답한다. “예, 그냥 알아서 피해가면서 살아왔지요. 부딪치면 늘 대형 사고가 나니까요... 하하!!”

박 집사는 겉으로 보아도 아주 부드러운 성품의 사람이다. 자라면서 누나의 강한 성품 때문에 많이 치었다. 모든 일에서 피해나가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박 집사도 톰보이 아내를 만났다는 사실이다. 자기의 약점을 보완해줄 씩씩한 성품의 아내를 만난 것이다. 그 아내도 함께 세미나에 참석했기에 나눔의 시간을 통해서 몇 가지가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집에서 무언가 망가지면 남편을 부르는 게 아니라 아내가 직접 연장을 들고 나온다. 전구가 끊어져도 아내가 전구를 찾아 들고 나온다. 초등학교 6학년 딸과 4학년 아들이 있는데 딸이 벌써 엄마를 그대로 닮아서 연장을 챙긴다. 세미나 중에 우리가 강의실 조명의 조절을 부탁했더니 부인이 사다리를 들고 나온다. “남편에게 부탁하시지 왜 이 무거운 사다리를 직접 가져왔어요?” 라고 물었다. “우리 남편에게 부탁해서 제때에 되는 일이 없으니까요” 강의실에 폭소가 터진다. 박 집사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아내 맘에 들게 하지 못합니까?” “저 사람은 제가 하는 일은 무엇 하나 만족하는 게 없답니다. 다 다시 한답니다.” 다시 폭소가 터진다.

자기가 해 주는 일에 만족하지 못하는 아내의 모습을 반복해서 보면서 남편은 이제 아내의 부탁을 들어도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결과가 이미 뻔하기 때문이다. 아내가 불만스럽게 생각할 것이고 그 일을 아내가 다시 할 것이니까... 그래서 이제 아내도 그런 일은 남편에게 부탁조차 하지 않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아내의 마음에는 하나님께 헌신한 이 착한 남편에 대한 불만이 쌓여갔던 것이다. 세미나를 통해서 부부가 서로의 많은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특히 아내가 부드러운 남편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이 남편을 멋지게 사용하고 계신 모습을 보게 되었다. 자신의 마음에는 너무나 부족하게만 보였던 남편인데... 그 가정에 아름다운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남편을 빼앗긴 톰보이딸만 넷인 집의 막내다. 할머니가 몹시 아들을 기다렸기에 이 딸도 뱃속에서부터 완전 톰보이가 되었다. 막내라고 부모님이 워낙 예뻐하고 언니들의 보호가 있었기에 자라면서 큰 아픔은 없었지만 이미 톰보이로 변한 성품은 그대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여자로서 공과 대학을 들어갔고 학교에서 아주 부드럽게 보이는 남학생을 만나서 (친구의 애인을 뺏어서) 뜨겁게 연애를 하고나서 친구들의 시샘 속에서 결혼을 했다. 그런데 그 남편에게 상처가 아주 많았다. 어려움 속에서 노력해서 자수성가한 강한 아버지가 부드러운 아들이 마음에 들지 못한다고 말로, 또 정신적으로 아들에게 오랫동안 많은 상처를 준 것이다. 그렇게 상처 많은 두 젊은이가 정신적인 준비 없이 결혼을 한 것이다. 처음부터 삐그덕 거렸고 세월이 가면서 점점 어려움이 심해지면서 결국 남편이 이 강한 아내를 떠나버렸다. 자기를 무조건 섬겨주는 속셈있는 여자에게 끌려간 것이다.

내가 이 자매를 처음 만났을 때는 아주 많이‘남자’였다. 그러면서 또한 매우 심각한 정신적인 혼란 속에 있었다. 남성과 여성이 본인 속에서 끊임없이 부딪치고 있기에 남자들과도 여자들과도 대화가 제대로 되지를 않았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자유롭게 살던 남편이 이런 아내를 만나서 얼마나 어려웠고 또 눌리며 살았을까... 하는 것이 이해가 된다. 그런 상황에서 부드러운 유혹의 손길이 닥쳐왔을 때 못 이기는 척하고 그 유혹을 받아들였을 상황이 상상이 된다. 처음에 이 자매와 대화를 할 때는 나도 매우 긴장이 되곤 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나와 상담을 하면서도 “목사님, 참 못됐다...”는 식으로 말을 함부로 했다. 한국 여성으로서의 기본적인 예의조차 안 되어 있던 것이다. 아들 하나를 데리고 유학생 엄마로 이국땅에 와 살면서 많이 울었다. 빈 집에 들어가면서 서러워서 울고, 안타까워서 울고, 외로워서 울었다. 도무지 마음을 추스르지를 못했다. 그런데 치유 학교에 다니면서 마음이 만져지기 시작했고 여태 몰랐던 ‘마음의 원리’를 깨달아가게 되었다. 자신이 상처 많은 톰보이인 것을 알게 되었고 남편도 아주 상처를 많이 입은 부드러운 어린아이인 것을 보게 되었다. 겸손하게 “치유의 원리”를 자신에게 적용하며 주님의 말씀을 붙잡기 시작했다. 아픔을 준 남편과 시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며 불쌍한 마음으로 용서하면서 생각과 삶이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기타를 열심히 치면서 늘 아들과 찬양을 불렀다. 그러다가 교회 주일 예배 찬양 팀에 참여하게 되었다. 일 년쯤 지나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었고 나도 더 이상 긴장하지 않는 순한 양이 되었다. “너무 예뻐졌네...” 라는 말을 자주 듣는 사랑스러운 여인이 되어간다.

구자형 목사(밴쿠버내적치유사역원장) saranghealing@hanmail.net
 
 
 
 
 
 
 
 
 
 
 
 

교리문답ㆍ구속사적 설교 회복 절실






강단의 변화가 교회 개혁의 시작


이단, 신비주의, 번영신학, 신앙과 삶의 분리, 윤리 문제 등 한국 교회는 올바른 신앙 정립의 부재로 발생하는 복합적인 문제들로 영적 능력을 상실해가고 있다. 어떻게 하면 이와 같은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까?
한국설교학회(회장 정창균 교수 / 합신대)가 최근 개최한 제16차 정기학술대회에 발제자로 참석한 설교학자들은 교리문답 설교를 비롯해 구속사적 설교 등 강단의 변화에서부터 교회 개혁이 시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성환 교수(웨신대)는 잃어버린 신앙 유산인 교리문답 설교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성도들이 각종 이단의 사설에 현혹되고, 예언이나 환상, 신비체험 등과 같은 신비주의에 빠지는 이유는 목회자들이 성경을 왜곡해서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라며 “성도들이 이단과 신비주의에 맞서 신앙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세우게 하려면 교리문답 설교를 반드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목회자들 가운데 교리의 중요성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문제다. 교리 연구는 지적인 것을 추구할 뿐, 영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 신학 지식을 많이 습득할 수 있지만 신앙과 삶의 괴리 현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 다양한 논쟁을 불러와 다투거나 자신이 속한 특정 교파만 옳다며 편파적인 성향을 갖는다는 것, 교리 연구가 때로는 말씀의 참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는 것 등이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교리 연구는 비록 지적인 면에 많은 비중을 두는 것은 사실이지만 오히려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신자가 살아가고자 하는 열심과 성숙을 보일 수 있다”며 지적 노력 없이 영적 성숙을 이룰 수 없다고 역설했다. 즉, 올바른 교리 연구를 통해 자신의 신학(신앙)을 점검할 수 있기 때문에 신학의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고, 신앙적 반성이 각자의 삶에 반영돼 보다 성경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교리문답 설교는 자칫 성도에게 지루함, 딱딱함, 심지어 교리의 주입과 강요함으로 인식될 수 있다. 따라서 목회자들은 교리문답 설교 계획을 철저하게 세워야 한다. 박 교수는 어떤 교리문답이나 신경, 그리고 신앙고백서를 설교를 통해 가르치고자 할 때, 각각의 구조나 특성을 반드시 파악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이미 52주에 걸쳐 설교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그렇다고 52주에 맞춰 모두 가르칠 필요는 없다. 129개의 질문과 답으로도 구성돼 있어 129 주일에 나눠 가르쳐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그 외에 다른 교리문답서들이나 신앙고백, 신조들도 마찬가지다.

박 교수는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는 목회자가 판단할 수 있지만 단순하고, 쉽고, 빠른 것을 원하는 세대에 맞춘다면 몇 개의 항목을 엮어 가르치기보다는 한 주에 한 항목씩 가르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고 제시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연속적으로 설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이 어렵다면 교회력에 따라 교리문답을 재배치해 설교할 수 있고, 교리문답서들의 내용 가운데 사회의 이슈들에 해답을 줄 수 있는 교리문답 항목을 엮어 시리즈 설교를 구성할 수도 있다. 박 교수는 “한국 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의 개혁과 변화를 위해 잃어버린 신앙유산인 교리문답 설교를 회복해야 한다”며 “교리문답 설교 운동이 일어날 때 한국 교회의 힘과 능력이 회복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조상현 목사(제자삼는교회)는 구속사적 설교를 통해 윤리 행위를 촉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목사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가는 구속의 역사라고 하는 성경신학의 관점에서 특정 본문을 해석하는 구속사적 설교가 ‘여기와 지금’의 청중에게 소홀하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며 “하나님의 구속사는 개인의 구원뿐만 아니라 구원받은 이들로 구성되는 신앙공동체를 지향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당부했다. 조 목사는 구속사적 설교는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선포할 뿐만 아니라 윤리 행위를 촉구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객관적 구속사만 드러낸다면 구속의 사건을 경험했던 성경 인물들의 반응과 삶의 모습은 철저히 배제될 수 있고, 그들의 삶을 통해 오늘의 성도들이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을 완전히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구속사는 하나님의 활동과 그것에 대한 인간의 반응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구속사 자체가 윤리적 행위를 촉구하는 설교의 정당성을 지지해준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구속사적 설교는 단순히 구속사를 드러내려고 하는 차원을 넘어서 그 내용이 청중의 삶과 구체적으로 관련을 맺을 수 있어야 한다. 조 목사는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통해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일으키고자 하셨고, 또 요구하시며 기대하셨던 변화가 무엇인지 살펴서 오늘의 청중들에게도 동일한 하나님의 구속사건이 재현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구속사적 설교가 반드시 윤리적 행위를 촉구하는 설교이어야 함은 성경 자체가 입증해주고 있다”며 “예수님도 산상수훈을 통해 구체적인 윤리적 행동을 촉구하셨다”고 덧붙였다. 결국 구속사적 설교는 성도 개인이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합당한 삶을 살 것을 촉구하고, 공동체적인 윤리 행위까지 촉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 목사는 구속사적 설교는 하나님과 성도 개인의 만남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구속사를 실현해 가는 현장인 신앙 공동체를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설교는 개인의 변화와 함께 신앙 공동체를 세워가도록 하는 이중적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구속사적 설교의 메시지는 단순히 성도 개개인의 구원과 윤리적인 행동을 촉구하는 차원을 넘어 신앙 공동체 전체가 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신앙 공동체 전체의 윤리적 성숙과 헌신으로 이끌어 ‘세상의 소금과 빛’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는 교회로 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igood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