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5일 토요일

사도행전 이야기



두 개의 이름을 가진 자들




1999년 1월 19일 큰 아들이 태어났다. 이름을 무엇으로 지을까?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 아이는 병원에서 낳지 말라고 한 아이다. 기형 확률이 너무 높다는 이유였다. 90% 이상이었다. 의사도 간호사도 부모, 형제도 모두가 임신중절을 촉구했다. 기형인 아이도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생명이기에 출산을 강행했다. 아이는 병원 검사결과를 비웃고, 건강한 모습으로 세상에 태어났다. 고민, 고민 끝에 아이의 이름을 ‘준(俊)’이라 지었다. 뛰어난 인물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멋진 일꾼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이름이다.
‘누가’는 부모의 큰 기대 속에서 태어난 것 같다. 그의 이름의 의미가 “빛을 비추는 자”인 것을 보면, 그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누가는 수리아 지방의 안디옥(터키 남부 시리아 접경) 출신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예수님을 만나 바울과 함께 동행하기 시작했다. 바울과 누가의 만남은 좋은 끌과 돌의 만남이었다. 누가는 이 만남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한 작품으로 만들어져 갔다

누가는 바울의 지병(바울의 가시)을 담당하는 의사의 일과, 선교의 통역자로서 일을 시작했다. 로마제국 전역에 복음을 전하며, 각종 풍토병과 계절병에 직면한 바울과 그의 일행을 돌보는 일에 전념했다(딤후4:11). 특히 그는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통해, 신약성경의 1/4 이상을 차지하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두 권의 대작을 탄생 시켰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전승에 의하면 누가는 주후 93년, 그리스에 있는 한 올리브 나무에 매달려 순교 하면서까지 자신의 이름값을 해냈다.

하나님의 자녀는 두 개의 이름을 소유한 자들이다. 하나는 부모가 지어준 이름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붙여준 ‘성도’란 이름이다(고전1:21). 성도는 누구인가? 거룩하신 하나님에 의해, 특별히 구별된 자들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첫째, 깨끗한 삶을 추구해야 한다(요일 3:2-3).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목적과 이유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롬14:8). 이 두 가지의 원칙이 지켜지는 삶을 살 때, 이름값하고 사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황보창완 목사 (밴쿠버성산교회 청년부) / 778-708-5540

정성헌 션교사의 선교칼럼



그래 이 놈. 너만 봤니!  (1)


임대한 아파트에서 시작된 교회는 얼마 되지 않아 더 이상 앉을 자리가 없을 만큼 자랐다. 공간도 좁지만 소음으로 이웃에게 어려움을 주고 있어서 시급히 예배장소를 물색해야 했다. 교회 개척지와 부지를 물색하기 위해 작정기도회를 하러 새벽기도를 다녔다. 수도 동쪽 외곽지역 아파트 밀집지역에 교회가 없어 그 곳에 교회를 개척할 마음으로 새벽기도 후 땅밟기 기도를 했다. 그 곳에는 교회부지로 구입할 만한 일반 주택이 거의 없었다. 주택지 가가호호를 탐문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한 집이 있다라는 주위 사람의 연락을 받았다. 땅도 넓고 집도 쓸만해서 마음에 들었다. 한 날 그 집과 동네에 땅 밟기 기도를 마치고 집 현관에 들어서는데 한 쪽 다리가 이상해서 봤더니 구두 축이 빠져 달아나고 없었다. 어렵게 발견한 집이라 온 통 정신이 그 집에 팔려 있었다.
한 날 연락을 하고 주인을 만났는데 우즈벡 중년 여인이었다. 집을 보려고 안으로 들어가자 집안 거실이 둘로 나뉘어 있었다. 이상해서 물었더니 남편이 불의의 사고로 죽으면서 자신과 전처의 아들에게 이 집이 상속되었는데 소유권이 자신과 그 아들에게 반 반씩 있다는 것이다. 자신은 팔길 원하지만 전 남편의 아들이 동의해야 하니 사고 싶으면 찾아서 의향을 물어보라는 것이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연락처와 주소를 받아 카작스탄 국경 마을로 갔다. 마침 집안에 결혼 잔치가 벌어져서 나와 아나똘리는 귀빈으로 대접을 받았다. 집안 분위기를 살펴 집 주인을 찾았다. 삼촌이라는 사람이 그 조카는 고향인 우즈베키스탄 남단 ‘수르한다리아’ 주, 아프가니스탄과 타직스탄 국경도시인 ‘데나우’에 살고 있다고 했다. 타슈켄트에서 멀고 먼 오지였다. 집을 사려고 하니 주소와 연락처를 달라고 했더니 데나우에 가면 자동차 정비소가 두 개 있는데 첫 번째 만나는 정비소에 가서 그 아버지의 이름을 대면 바로 알려 줄 것이라고 했다. 아나똘리는 주소와 전화번호도 없이 서울에 김서방 찾듯 가냐고 회의적이었지만 나는 절박했다. 그래서 아직 한 번도 우즈베키스탄의 남쪽 지역을 가 본적이 없으니 이 번 기회에 정탐 겸 세상구경을 하자며 아나똘리를 부추겨 동행을 했다.
길은 멀고도 험했다. 그 때엔 변변한 지도 한 장 구하기도 어려웠다. 묻고 또 물어 가야 했다. ‘조금 더 가다 좌회전 하시오.’ 조금 더 가는 것이 결국 90키로미터 였다. 이른 새벽 두 시에 출발한 우리는 거의 쉼 없이 달려 오후 4시 경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12월 초인데도 아직 감이 달려있고, 석류가 매달려있는 진풍경이었다. 인도양에서 부는 바람이 아프카니스탄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오면서 높새바람 현상으로 그 곳은 겨울인데도 온도는 가을 같았다.

첫 번 째 만나는 자동차 정비소에서 이름을 대고 물었다. “인구 3만인 ‘데나우’시에 자동차 정비가 한 두 개냐?”라는 것이다. 난감해져서 이곳 저곳 정비소를 헤매고 다녔다. 아나똘리는 뭔가 이상하고 속았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그러다 한 우즈벡인이 고려인이 하는 정비소가 있으니 그 곳에 가서 물어보라는 것이다. 아니, 이 국경도시에도 고려인이 산단 말인가? 찾아 갔더니 정말 번듯한 정비공장의 사장이 고려인이었다. 우리를 소개하고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이 사람은 나를 멋적은 표정으로 여러 번 살펴 보더니 안으로 들어가자 소리도 없이 밖에다 세워 놓고는 몇 마디 하더니 입을 다물었다. 우리는 서먹해서 공장마당을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날은 어두워지고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았다. 이 먼 길을 와서 그 냥 돌아가야 한단 말인가? 나는 허탈하기만 했다. 아나똘리는 빨리 포기하고 눈이 내리기 전 돌아가자는 것이다. 산 밑에는 비가 내리면 해발 2000미터가 넘는 고갯길은 눈 천지일 텐데 어떻게 가자는 것인지? 차를 몰고 올라선 고갯길은 고도가 높아지자 내리는 눈으로 몇 미터 앞도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헤드라이트 앞으로 달려드는 눈으로 피곤해서 계속 교대로 운전을 해야 했다. 민가가 나오자 나는 아나똘리에게 이 상태로는 위험해서 더 이상 못 가니 자고 날이 좋아지면 가자고 제안했다. 대답은 안된다는 것이다. “눈에 빠져 죽어도 이 구덩이에는 못 들어 간다는 것이다.” 무슨 소리냐고 했더니 “저기 들어가면 이가 옮아요. 집으로 가서 아내에 무슨 면박을 받으려고 저기서 자요!”라는 것이다.
산맥을 두 개나 넘는 눈길 운전은 거의 밤 스키를 타는 것 같았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오르막 내리막에 차가 미끄러질 때져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오며 ‘데나우’에서 만난 그 고려인이 괘씸했다. ‘그 멀리서 동족을 만났으면 재워라도 주어야지! 뻔히 눈 오는 그 험한 길을 그냥 돌려 보내는 인사가 어디 있나? 몰인정한 사람 같으니라고!’ 몇 마디 하자 아나똘리는 같은 고려인이라고 “사람마다 다르지요!” 라고 한다.
폭설로 가게 문이 닫혀 있어 가져간 빵과 물, 운전할 때 피곤하면 먹으라고 아나똘이의 아내 나타샤가 준비해 준 당근으로 버티며 집에 돌아왔다.
다음 날 열을 받은 나와 아나똘리는 바로 카작스탄 국경으로 다시 달려 갔다. 그 집사람들은 우리를 다시 만나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집주인이 어디 있다고 엉뚱한 소리를 해서 그 먼 길을 헤매게 하며 고생하게 하냐?”며 아나똘리가 흥분을 해서 소리를 높였다. 마침 외출에서 돌아오던 그 집 할머니가 우리를 불러 자초지정을 설명했다. 그 집의 한 쪽 주인인 자신의 손자는 마약 중독자로 금치산자가 되어 있어 재산권 행사를 할 수 없는데 친적들이 부끄러워 사실대로 말을 못하고 손님들에 큰 실례를 했으니 용서하라는 것이다. 그 먼 길을 다녀오느라고 애를 쓰게 했으니 죄송하다면 차를 부어 주며 우즈벡 전통을 따라 축복기도를 해 주었다.
몇 일이 지나서 전화가 왔다.  ‘데나우’에서 잠시 만났던 사람인데 자신을 기억하겠냐는 것이다. 기억을 하고말고요!  타슈켄트에 와서 호텔에 있는데 속히 나를 만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SEED Canada 대표 / 778-316-3579]

“아이티”에 다녀왔습니다



“아이티”에 다녀왔습니다





물질에 파묻혀 지내면서도 여전히 정신이 빈궁한 아이들, 귀에 음악을 꽂고 기계의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살아가며 인간적인 교감을 잃고 자신의 모습과 목소리가 점점 희미해지는 아이들, 쓰나미처럼 덮쳐오는 문화의 위력 앞에 문신이며 피어싱이며 노출이 심한 옷차림, 우리 세대에 악으로 눈총을 받던 것이 버젓이 유행이 되고 악하고 음란한 문화를 세련됨으로, 미련한 생각을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아이들을 보며 안타까움을 넘어 이대로 놔두면 안되겠다는 위협을 느끼기까지 했습니다. 껍데기적인 것들과 허황된 형상들에 길들여진 아이들에게 본질을 볼 수 있는 눈을 띄워주고 싶다는 열망이 있던 차에 아이티 선교 여행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한국과 캐나다가 여행 자제 지역으로 분류해놓은 나라, 아이티 여행을 준비하면서 참 많은 싸움이 있었습니다. 전염병에 대한 위험이나 불안한 치안과 흉흉한 소식들이 전해지고 있는 곳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라는 걱정들과 떠나기 전날까지 예방 접종이 없이는 못 들어가며 아이티를 다녀온 사람들에게는 한국의 입국이 제한된다는 허황된 소식과 싸워야 했습니다.
우리를 초대하신 현지 선교사님께서 워낙 일을 평온하게 진행해 가시기에 쓸데 없는 걱정으로 번거로움을 드리고 싶지 않아 내가 감당할 부분들을 조용히 기도로 싸우면서 내심 두렵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과연 그곳에서 보고 듣게 될 것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곳에서 보고 들을 엄청난 사실 앞에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것 때문에 가슴에 울렁증이 일고 천진하게 나를 믿고 따르는 아이들 앞에서 내 마음의 깊이와 사랑의 함량이 금새 바닥을 드러내면 어쩌나 하는 것도 두려웠습니다.

포르토 프랭스의 공항에 도착하니 날씨가 후끈하고 피부에 닿는 햇살이 맵습니다. 무법천지의 나라답게 눈 앞에서 불법이 상식처럼 행해지고 있습니다. 구호품은 대부분 중간에서 분실되고 비행기에서 직접 짐으로 가져온 가방도 하나 둘 씩은 없어진다고 하는데 다행히 우리 짐은 박스 몇 개가 뜯어져 있었던 것 말고는 잃어버린 짐은 없었습니다.

2년 전 지진으로 황폐해진 땅을 복구하고 부상자를 치료하고 물과 양식을 전달하기 위해 많은 세계의 사람들이 이 땅으로 들어왔다는 생각을 하니 감동이 느껴집니다. 거리의 사람들 하나 하나 얼굴을 살펴서 엄청난 재난을 겪은 저들의 눈빛에 담긴 것이 무엇일까 읽게 됩니다. 도시 전체가 폐허 더미 같고 수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겉돌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가난과 처참한 과거와 쓰레기 더미가 이리로 흘러 들어오는 것처럼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상했던 악취는 없었습니다. 너무나 뜨거운 볕에 모든 것이 다 말라 비틀어져 냄새는 거의 안 났습니다.

숙소
숙소는 수출 자유 공단 안에 LA의 한국인 사업가가 세우신 건물에 머물렀는데 유엔군이 치안을 담당하고 있어 안전했습니다. 아이티는 수도와 전기가 공급되지 않아 사람들이 도로 위로 흐르는 구정물에 몸을 닦고 뭔가를 씻는 모습도 간혹 보이고 밤에는 자체 발전을 한 몇몇의 집 외에는 완전한 어둠입니다. 그러나 공단 안에는 자체 발전기로 전기와 수도 시설이 되어있어 에어컨도 시원하게 나오고 화장실이나 샤워 시설도 잘 갖춰져 있고 침대마다 모기장이 쳐져 있습니다.

레오간 까사인 학교
가장 지진 피해가 많았던 레오간이란 곳에 선교사님께서 세우신 난민촌과 학교를 방문했습니다. 학교에 와야 하루 한끼 먹는다는 아이들의 눈빛에 간절함인지 체념인지 모를 난감한 깊이가 있습니다. 하루 한끼 먹는 천사처럼 맑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이들의 허기를 달래줄 수 있다면 뭐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속으로 무척 안쓰러웠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반응을 곁눈질해 보니 아이들을 보는 눈빛에 깊이가 있고 눈동자가 젖어있습니다. 누구 하나 더럽다고 인상을 쓰거나 하지 않고 해맑게 웃으며 아이들을 껴안아주는 모습과,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착하고 진실하게 반응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무척 대견하고 안심이 되었습니다. 콩 물을 끼얹은 밥을 쏟고 울어버리는 아이의 밥을 손으로 주어 담으며 아이들의 얼굴에 참회의 기색이 서렸습니다. 음료수 내기 축구 경기에 지고도 즐거워하는 모습에서 아이들은 이기고 싶은 마음보다 사랑하고 캐어 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더 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의 가난이 아이들 안에 잠자고 있던 사랑을 깨웠고 그들의 연약함이 아이들 안에 돌보는 마음을 깨웠습니다. 생각에 사랑 한 방울을 섞으면 마음은 온통 사랑으로 물들고 생각에 미움 한 방울을 섞으면 마음은 온통 증오의 도가니가 됩니다. 마음에 미련 한 방울이 떨어지면 생각이 온통 미련해지고 생각에 작은 지혜가 들어가면 마음은 총명으로 반짝입니다.

시내 땅 밟기와 십 만 명의 묘지티브이에서 여러 번 보았던 대통령 궁과 포르토 프랭스 대성당과 지진이 일어났던 여러 지역을 돌면서 기도 한 후 십만 명이 한 구덩이에 묻힌 곳에서 선교사님의 권유로 성찬식을 하고 유언장을 썼습니다. 세계의 언론이 보도한 바, 삼 십 만 명의 시체들이 길거리에 뒹굴고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중, 사람들은 여진에 대한 공포로 몇 달 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바깥에서 잠을 잤다는 아비규환의 상황과 사람들의 눈물도 애통도 국가적인 절망도 지금은 모두 땅속에 묻혀 고요하기만 합니다. 우리 모두는 수 많은 사람들의 죽음 앞에서 자신의 죽음을 묵상하며 현재의 삶을 바로 잡았습니다.

카리브해의 바닷가는 아름다웠습니다. 신비스럽도록 아름다운 바다 물결이 쓰레기 더미 저 너머에 넘실대고 있고 사람들은 이 바다와 아무 상관 없는 듯 살아갑니다. 리조트로 개발되어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이웃 나라 도미니카와는 달리 국제 자본주의가 외면한 이 땅에 대한 말 할 수 없는 긍휼과 애착이 생깁니다.

고아원 방문
처음에는 인형처럼 텅 빈 감정으로 그냥만 지켜보던 아이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마음을 열고 함께 춤을 추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함께 기도하는 시간에는 아이티의 아이들의 앞날을 하나님께 부탁 드리면서 북미의 아이들이 마음을 다해 오래도록 기도했습니다.

아이티 교회 주일 예배 사역과 공연 예술 캠프주일에는 현지의 장관들이나 유력자들이 출석한다는, 그 땅에서 가장 큰 교회에서, 온 성도들이 한 목소리로 열창하는 찬양과 심령의 가난과 간절함으로 드리는 무척 감동스러운 예배에 참석하여 우리 아이들도 워십댄스와 드라마를 했습니다. 청소년 아이들이 열정적으로 노래하고 춤추며 드라마 하는 모습을 보고 현지인들이 무척 은혜를 받았고 그 나라의 대통령 변호사가 친히 전화를 해서 아이들의 사역에 감동을 받았다고 감사를 전해왔습니다. 두 번째 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오전과 오후에 현지 교회의 아이들에게 춤과 노래를 가르치고 공연 캠프가 끝난 후에는 교회의 청년들과 함께 노방전도를 하고 금요일 오후에는 그 교회에서 다 함께 공연을 했습니다.


니꼬 형제현재 총리가 된 전 외무부 장관의 비서로서 현지인 변호사이며 한국의 성균관 대학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어 한국과는 특별한 인연이 있는 니꼬 형제에게서 지진 당시의 상황과 생과 사의 기구한 엇갈림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베네수엘라의 대통령 차베스가 아이티의 지진이 인공 지진이라고 했다는 말도 들었지만 누구의 소행이든,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참 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신 말씀을 생각하며 마음에 계속 되던 질문, 그 땅의 사람들 하나하나 이름을 알게 되고, 땀이 축축한 손을 잡으면서 더 강렬해졌던 질문 “왜?”에 대한 대답을 그 형제의 입을 통해 들었습니다.

그는 나사로의 부활에 대해 나누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힘과 소망이 완전히 죽게 하셨지만 하나님의 능력과 힘으로만 일으킬 수 있음을 모두가 인정할 수 밖에 없을 때 이 땅을 다시 일으키실 것이라는 부활에 대한 약속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지진이 재앙이라고 말하지만 자신에겐 더 큰 은혜에 대한 약속이라 하는 말에 무조건 수긍하고 싶고 그대로 되도록 기도하고 싶었습니다.

감사패
아이티의 사람들은 다른 어느 빈국의 사람들보다 가난해도 염치가 있었습니다. 알량한 도움을 가지고 들어와 거들먹거리는 외국인들에 대한 반감으로 우리를 경계하던 사람들이, 땀에 흠뻑 젖어 헐떡거리면서도 뜨겁고 먼지가 흩날리는 길거리에서 찬양하고 드라마하며 복음을 전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감동하여 눈빛에서 경계심이 풀리고 진정으로 우리 아이들을 알고 싶어하고 친구가 되고 싶어했습니다.

그 땅을 떠나온 이후 현지 교회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감사패를 보내왔습니다. 어려운 지역에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선교사님의 사역에 누만 끼치지 않고 와도 성공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선교사님께서는 이제껏 들어왔던 팀들 중에 넘버 1 팀이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셔서 모두에게 무척 격려가 되었습니다.

아이티에 오기 전 올란도 플로리다에서 최고의 휴가를 즐기고 온 한 아이의 플로리다는 너무 재미있었지만 밤이 되면 공허했고 일주일이 지나니 이제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곳에서는 매일 밤 뿌듯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잠들고 돌아갈 시간이 되니 너무나 아쉽다는 고백을 들으면서 사람들은 역시 의미로 사는 존재임을 확인했습니다. 아이티의 울퉁불퉁한 도로 위를 흙먼지를 쓰고 다니던 아이들이 뉴욕에 도착해서 비단 길처럼 부드러운 길을 달리면서도, 타임스퀘어의 현란한 밤 도시를 걸으면서도 아이들은 아이티를 이야기하며 그리워했습니다. 오직 물질에만 반응하며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러운 것들만 가치 있게 여기는 것 같던 아이들을 움직이는 가치도 역시 사랑이며 헌신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안심이 되었습니다.

아이티에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우리처럼 소망하고 갈망하며 꿈을 꾸는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만났습니다. 여행이 끝나기만 기다리며 다시는 안 가겠다고 할 줄 알았던 아이들이 너무 아쉬워하며 내년에도 꼭 다시 오겠다고 하는 말에 무척 놀랐고 힘든 대가를 치르고 이 땅에 왔던 보람이 크게 느껴졌습니다.

[서수영 사모 / 밴쿠버크리스찬문인협회 부회장 / penofgod@gmail.com]







아브라함 이야기


 

하갈의 체험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 / 창 16:7-16



하나님의 약속이 지연되고 미래가 불투명해지자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 대신 그럴듯해 보이는 사래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하갈을 통해 후손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들의 계획은 처음에는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곧 평화롭던 가정에 원망과 다툼이 생기더니 결국 임신한 하갈은 여주인 사래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도망치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이후에 일어난 사건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집트로 도망가는 하갈사래의 학대를 피해 사막 (광야)으로 도망친 하갈은 수르 (Shur)로 가는 길 옆에 있는 샘 (우물)에서 하나님의 천사를 만납니다. ‘수르’ (Shur)는 시내 (Sinai)산 북서쪽에 있는 이집트 바로 옆 광야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지금 하갈이 가나안에서 이집트로 가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즉, 하갈은 자신이 원래 나왔던 이집트로 도망을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갈을 만난 하나님의 천사이집트로 가던 하갈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천사는 그녀에게 질문을 합니다: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8절 상). 처음 보는 낯선 이가 자신의 이름 뿐 아니라 자신의 여주인의 이름과 신분을 말할 때, 하갈은 크게 놀랬고 이 낯선 사람이 신적인 존재임을 알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천사는 하갈에게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봅니다. 이미 하갈의 이름은 물론 그녀의 신분까지 알고 있던 천사가 정말 몰라서 묻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하갈로 하여금 지금 현재 그녀가 처한 상황을 돌아보게 하신 것입니다. 똑같은 질문에 대해서 거짓말을 했던 가인 (창 4:9)과는 달리 그녀는 솔직하게 말합니다: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8절 하). 그러자 그 천사는 하갈에게 명령을 합니다: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9절). 이것은 하갈이 여전히 사래의 종이기 때문에 돌아가라는 냉혹하고 확고한 명령입니다. 특히 여기에 쓰인 ‘복종하라’는 말은 히브리어 동사 ‘아나’ (ʿānā)의 ‘히트파엘’ (Hitpael)형으로 그 뜻은 ‘시달리다’ 혹은 ‘비하하다’ 입니다. 이것은 하갈이 다시 사래에게로 돌아가 자신을 낮추고 사래에게 시달려야 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갈은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녀와 임신한 아이가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갈에게 약속을 준 하나님의 천사
하갈에게 다시 여주인에게로 돌아가라 명령한 천사는 이번에는 그녀에게 약속을 줍니다: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10절). 이것은 아브람에게 하셨던 약속들 (창 12:2; 13:16; 15:5)과 똑같은 것으로 하갈의 자손이 아브람의 약속에 포함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어서 그 천사는 하갈이 아들을 낳을 것이고 이스마엘이라고 이름 지으라고 말합니다: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11절). 여기서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은 직역하면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하갈의 고통스러운 부르짖음을 들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주석가들이 이 구절을 해석하면서, 하나님은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고통과 압제당하는 자들의 부르짖음을 외면치 않으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왜 하나님께서 하갈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고통당하는 하갈에게 초점을 맞추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본문은 비록 하갈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초점은 여전히 아브람에게 있습니다. 왜냐하면 12절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스마엘에 대한 예언오늘 본문 16:10-11절의 말씀만을 보면, 이 구절들은 단순히 이스마엘에 대한 약속이요, 축복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12절은 독자들로 하여금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이 구절은 저주의 말씀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하니라.” 이것은 이스마엘의 거만하고 반항적인 모습을 나타내는 말씀이지 축복의 말씀도 아니요 저주의 말씀도 아닙니다. 이것은 이스마엘의 미래에 대해서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즉, 비록 인간적인 대안의 결과로 하갈을 통해 아브람의 아들 이스마엘이 태어나지만, 이스마엘은 약속의 자녀가 아니라 육신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롬 9:8).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것을 하갈에게 알려주신 것일까요? 그것은 이 모든 것이 하갈을 통해 아브람에게 알려지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브람으로 하여금 이 모든 것을 듣고 다시 한 번 믿음에 서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갈이 체험한 하나님
이집트로 도망가던 길에 자신을 만나 주시고 구해주신 하나님을 가리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13절). 즉, 하갈은 하나님을 ‘엘 로이’라고 부르는데 그 뜻은 ‘보시는 하나님’ 혹은 ‘보살피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갈은 하나님을 만났던 그 샘을 ‘브엘라해로이’라고 부릅니다: “이러므로 그 샘을 브엘라해로이라 불렀으며 그것은 가데스와 베렛 사이에 있더라” (14절). ‘브에르 라헤이 로이’는 ‘나를 보시는 살아계신 분의 우물’ (The well of the living who sees me) 이라는 뜻입니다. 즉, 하갈은 극심한 고통 중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보고 계시는 하나님으로, 구원의 하나님으로 체험을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하갈의 체험 역시 12절의 말씀과 같이 아브람과 관계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해답이 15절에 나옵니다.

이스마엘이라 이름 지은 아브함
도망갔던 하갈은 하나님의 천사의 말에 순종하여 사래에게로 돌아와 모든 굴욕을 참아냅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들을 낳습니다: “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낳으매.” 그런데 아브람은 그 아들의 이름을 하나님의 천사가 알려준대로 ‘이스마엘’이라고 지었습니다: “아브람이 하갈이 낳은 그 아들을 이름하여 이스마엘이라 하였더라”. 이것은 다시 돌아온 하갈이 그 동안 광야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아브람에게 이야기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하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브람은 이스마엘이 아브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에 포함될 것이지만, 그는 약속의 자녀가 아니라 육신의 자녀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갈만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도 보고 계시며 보살피신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인내하지 못하고 인간적인 대안을 택한 자신의 불신앙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깨달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지연되자 급한 마음에 인간적인 대안을 택했고, 그로 인해 가정에 문제가 생겼을 때에도 아브람은 이것을 단순한 여자들의 문제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아브람은 하갈의 체험을 통해서, 이스마엘에 대해서, 약속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서 더욱 깊이 깨닫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브람처럼 다른 사람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기울여, 깊은 깨달음과 각성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정기수 목사 / 캐나다중앙교회 / 778-237-8084]

2012년 8월 30일 목요일




“어지러운 세상 중에…”



0023. ‘종교’냐 ‘그리스도’냐

기독교는 종교가 아닌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깔뱅은 ‘기독교강요’에서 이 종교라는 단어를 잘못 사용하고 있으며 한국에 왔던 초기 미국인 선교사 곽안련은 기독교의 ‘복음공과’를 가지고 ‘종교공과’로 잘못 기록하고 있다. 기독교는 ‘고등종교’라는 등, ‘생명의 종교’라는 거짓말을 버리자. 기독교는 곧 ‘그리스도’이시며, 십자가와 생명의 ‘복음’이다. 종교는 ‘미신’과 같은 뜻을 가지고 있으며,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미신적이구나”(행17:22)의 미신적이라는 단어를 종교성으로 변개, 에큐메니즘의 일치를 위해 희랍정교회(동방교)측의 자극을 피하려고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하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는 천주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다. 즉 기독교의 요람은 천주교가 아니라 유대교이다(1996년 10월/아래차트참조).

 
 
 

0024. ‘PK’(Promise Keepers) - Purgatory Kit!(‘연옥통’) (1996년 10월)

‘약속이행자들’이 수만명씩 모여서 “담을 허물자!”고 고함친다. 손뼉을 치고 휘파람을 불고 감정이 고조됨에 따라 흥겨운 무드가 술렁인다. “1인의 리더쉽”을 부르짖는다. 즉 ‘로마교황’밑으로 돌아가자는 로버트 슐러의 망언 - “지금은 프로테스탄트 교도들이 목자장이 되신 (로마)교황 앞에 나아가 우리가 집(로마카톨릭교회)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할지를 물어야 할 때이다” (“It’s time for Protestants to go to Shepherd - the Pope - and say ‘what do we have to do come home’?” - Los Angeles Herald Examiner, 19 Sep. 1987) - 을 외치고 있다.

4만 명이 조금 못 되는 목사들을 모아놓고 축구코치가 목사들에게 ‘로마교황’ 앞으로 가는 길을 코치하고있다: “Our clergy are divided,,,We’ve got to have one leadership, one leadership only.” 이에 함성으로 화답하는 목사들. 공중에서 찍은 아틀란타 스타디움 ‘돔’을 꽉 메운 군중은 마치 “끓는 가마솥”같다. 불이 영원히 꺼지지 않는다는 연옥통을 내려다보는 것 같다.

트레스 디아스, 빈야드, 프라미스 키퍼스... ‘가정을 구하자!’는 구호의 포장지가 벗겨지니 그 안에는 다른 것들이 들어있다. 에큐메니칼 이단들이 부르짖는 일치운동의 핵심은 모두 천주교의 ‘미사’로 유인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말씀을 부끄럽게 만드는 제단위의 제사가 바로 천주교의 ‘미사’이다.

0025. 마태16:18의 ‘반석’이 『베드로』라고 선언한 빌리 그래함 등의 신(Neo)복음주의 지도자들로 인해 깊어만 가는 배도의 밤 (Billy Graham: Believe: Love Immesearable / March 4, 2003 → http://billygraham.org/article.asp?i=80&s=64) (2006년 가을)

히브리 성경에서 ‘반석’(바위)은 결코 인간에게 사용되어진 예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유의하시길 (예, 삼상2:2, 시편 18:31, 44:8 등등). “한 몸에 두 혼”(One Body with Two Souls) - 즉 『천주교』(종교)란 이름으로 수많은 천주교도들을 이끌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뉴욕시 센트랄 파크의 1/8크기의 도시국가 바티칸(정치)을 가지고 200 여 개 국에 대사, 영사들을 파견하고 있으며, Passport, 돈(은행), 우표, 군대 등을 독자적으로 보유, 세계제일의 ‘중앙정보부’를 가진 독립국가. 당신은 이것이 신약성경이 말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믿고 있는가?

0026. 『베니 힌』 (1997년 봄)
‘안녕하세요, 성령님’의 저자. 예수님의 타이틀인 ‘평화의 왕자’(Prince of Peace, 사9:6)상을 제정하여 로마 교황에게 바친 자. 베네딕트파가 운영하는 천주교학교를 졸업한 자. “자신의 근본정신은 로마카톨릭정신이며 로마카톨릭 식으로 거듭났음”(Christianity Today, Sep.3, 1991)을 밝힌 자. “나의 생각과 행동은 매우 카톨릭 적(的, very Catholic)”이라고 서슴지 않고 선언한 자. PTL Show에서는 자기를 공격한 자를 향하여, “성령의 따발총으로 머리통을 날려 버리겠다”고 공언한 자. 삼위일체가 아니라 9위1체를 주장한 자. 로마카톨릭 화체설 신봉자이며, 그래서 “나는『베니 여호와』” 라는 망발을 서슴지 않으며, “하나님의 자녀는 인간이 아니고 신(神)이다”라고 지껄이는 자.

베니힌은 자신의 영적능력을 1973년 그가 참석했던 케트린 쿨만의 집회에 두고 있다. 그가 영향을 받았다고 자랑스럽게 말한 쿨만을 포함한 3명의 여자들은 모두 신자(信者)로서 이혼했으며 그 중 한 명은 두 번이나 이혼하였다(이 3명의 여인들은 Kathryn Kuhlman, Woodworth Etta, McPerson 이다). 그러면 베니 힌이 “안녕하세요, 성령님”에서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케트린 쿨만은 누구인가? 그녀는 부흥사 B.A. Waltrip을 자기의 집회에 초청하였고 결국은 아내와 두 아들을 두었던 월트립과 결혼, 8년간 살다가 다시 이혼하였으며 월트립은 감옥에서 죽었다. 그녀는 Dino Kartsonakis라는 미남(美男) 피아니스트를 식당 등 어디에나 에스코트하도록 하였으며 그의 음반제작과 이탈리아에까지 가서 양복을 맞춰 입도록 배려하였다. 케트린 쿨만의 집회에는 자주 늘 30~40명에 달하는 로만칼라 제복차림의 신부들과 수녀들을 초청, 집회 단상 위에 앉도록 하였다. 1975년 10월 11일, 케트린 쿨만은 로마교황청을 방문, 교황 Paul Ⅵ를 만나고 돌아와 정신질환으로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였다. 이것이 쿨만에 대해 알려진 이야기의 대략이다.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
(찬503 고요한 바다로 ②)

구영재 선교사 [P.O. Box 8844 Victoria, BC V8W 3Z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