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4일 토요일

'가나안' (안나가)성도 100만 명 시대




목회자와 성도들에 대한 불만 때문에 교회 떠나

목회사회학연구소, ‘가나안 성도의 신앙 모습’ 설문조사 결과 발표

 
▲목회사회학연구소 주최로 25일 서울 남산동 청어람에서 열린‘갈 길 잃은 현대인의 영성’세미나에서 정재영 실천신학대학원대 교수가 소속 없는 신앙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10년 이상 교회 출석자들로 교회 이탈 전ㆍ후에도 ‘구원의 확신’ 높아
세 명에 두 명 꼴로 출석 희망 … 건강하고 공동체성 강한 교회 원해
신앙은 있지만 제도화된 교회는 출석하지 않는 100만 명의 ‘가나안 성도’. 자유로운 신앙생활 추구와 목회자에 대한 불만 때문에 교회를 떠났지만, 이들 중 세 명 가운데 두 명은 다시 교회에 출석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목회사회학연구소(소장:조성돈 교수, 실천신대)가 지난 25일 명동청어람에서 ‘갈 길 잃은 현대인의 영성’을 주제로 현재 교회를 나가지 않는 가나안 성도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진행된 이번 조사에는 총 316명이 참여했으며, 지난 2월 4일부터 13일까지 10일 간에 걸쳐 구조화된 설문지를 이용한 온라인 방법으로 진행됐다.
  
▲ 교회 출석 기간
조사결과에 따르면 가나안 성도 중 과거 교회출석시 서리집사 이상의 직분을 받은 사람도 85명으로 26.7%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교회 다닌 기간도 평균 14.2년으로 나왔다. ‘교회를 다닌 기간은 얼마나 되는가’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 중 21.9%가 ‘10~14년’, 21.3%가 ‘5~9년’로 비슷하게 나왔으며, 25년 이상이라고 응답한 비율도 20.3%가 나왔다. 평균적으로 10년 이상 교회를 출석했던 이들이 교회를 떠난 것으로 조사됐다.

그렇다면 왜 교회를 떠났을까?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원해서’가 30.3%로 가장 높게 나왔으며, ‘목회자에 대한 불만’(24.3%), ‘교인들에 대한 불만’(19.1%), ‘신앙에 대한 회의’(13.7%), ‘시간이 없어서’(6.8%) 등의 순으로 응답했다.
  
▲ 교회를 떠난 이유
이와 관련 교회 이탈 전 출석 교회의 상태를 묻는 질문에 ‘교회에는 문제가 없었다’라고 응답한 42.4%를 제외하면 ‘교인들의 삶이 매우 신앙인답지 못했다’와 ‘교회에서 지나치게 헌금을 강조했다’가 각각 30.6%와 30.0%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담임목회자가 매우 독단적이었다’(26.5%), ‘교회 내부의 분란과 갈등이 심했다’(21.8%), ‘교회 내부의 파벌다툼이 심했다’(21.7%), ‘교회 건축시 어려움이 있었다’(16.2%) 등으로 답했다.

교회를 이탈한 시점은 30대가 20.0%로 가장 많았으며, 고등학교 졸업 후 20대가 23.4%, 고등학교 이전 20.0%, 40대가 16.4%, 50대 이후 15.3%순으로 나왔다. ‘현재 교회를 떠난지 얼마나 됐는가’라는 질문에는 ‘5년 미만’이 27.3%로 가장 많았고, ‘5~10년’(25.3%), ‘10~15년 미만’(22.0%), ‘15~20년 미만’(18.5%), ‘20년 이상’(6.9%)으로 교회를 떠난 기간은 평균 9.3년으로 나왔다.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한 목회사회학연구소 부소장 정재영 교수(실천신대)는 “직분이 있었던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교회를 떠난 기간이 짧은 점을 고려할 때, 이들이 신앙을 잃지 않고 교회로 돌아올 수 있는 방안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교회 이탈 전 구원의 확신 여부를 묻는 질문에 ‘분명히 있었다’라고 응답한 비율은 48.1%로 ‘뚜렷하지 않다’(48.3%)와 거의 반반으로 나왔으며, ‘없었다’라고 응답한 비율은 3.5%에 불과했다. 교회 이탈 전 교회활동에도 53.4%가 ‘어느 정도 참여했다’고 응답했으며,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응답도 36.9%로 나와 전반적으로 교회 이탈 전 교회활동에 긍정적으로 참여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사실 교회를 떠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가나안 성도들은 교회 이탈 전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고민했을까. ‘6개월 이상’이 32.1%로 가장 많았으며, ‘별로 고민하지 않았다’(29.5%), ‘2~3개월’(17.5%), ‘4~5개월’(11.1%), ‘한 달 이내’(9.8%)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교회 이탈자 대부분 상당기간 동안 고민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수치다.
  
▲ 교회 이탈 전 구원의 확신 여부
교회 이탈 전 교회를 옮긴 경험을 묻는 질문에 ‘옮긴 적이 없다’는 응답이 45.7%로 가장 높게 나왔으며, ‘한번 옮겼다’(25.0%), ‘두세 번 옮겼다’(23.2%), ‘여러 교회를 옮겨 다녔다’(6.1%) 등으로 답했다. 본래 교회를 자주 옮겨 다니던 사람이 교회를 떠난 것이 아니라 한 두 교회에 정착해서 다니던 성도들이 교회를 떠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구원 문제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는 응답자는 31.0%였으며,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을 수 있다’는 응답도 36.2%가 나왔다. ‘구원의 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응답도 32.9%였다. 교회를 떠나기 전에 구원의 확신이 있었던 응답자들의 절반(45.7%) 가까이가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고 응답한 반면, 절반 이상은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을 수 있다거나 구원의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특히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고 응답한 98명을 대상으로 구원의 확신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 중 82.1%(전체 응답자의 25.3%)가 ‘확신이 있다’고 답했으며, 17.9%는 ‘확신이 없다’고 답했다. 정재영 교수는 “교회를 떠나기 전 구원의 확신이 있었던 사람들 중 90.5%가 지금도 구원의 확신이 있다고 응답했고, 뚜렷하지 않다고 응답한 사람들 중에도 61.3%는 현재 구원의 확신이 있다고 응답했다”고 설명했다.
  
▲ 현재 교회 출석에 대한 생각
그렇다면 교회를 떠난 가나안 성도들은 교회 출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가능한대로 빨리 다시 교회에 나가고 싶다’는 응답자는 13.8%였으며,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 다시 교회에 나가고 싶다’는 응답도 53.3%로 나왔다. 전반적으로 세 명에 두 명 꼴로 다시 교회에 나가고 싶다는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돼 이들의 교회 복귀를 위한 대책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 다시 교회에 나간다면 어떤 교회에 나가고 싶는가라는 질문에 ‘올바른 목회자가 있는 교회’가 16.6%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공동체성이 강조되는 교회’(15.6%), ‘건강한 교회’(11.1%), ‘부담을 주지 않는 교회’(9.4%), ‘편안한 교회’(8.8%), ‘신앙을 중시하는 교회’(8.4%), ‘봉사와 선교를 많이 하는 교회’(6.9%) 등의 순으로 나왔다.

정재영 교수는 “최근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에서 발표한 ‘기독교인의 신앙생활 및 의식조사’ 결과에서는 10.5%가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 대략 100만 명의 가나안 성도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며 “교회에는 출석하지만 한 교회에 정착하지 않고 떠돌아다니는 성도까지 포함한다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교회를 떠난 성도들 가운데 교회의 제도화에 대한 반발이 많았다”며 “한국 교회가 진정한 의미에서 공동체성과 교회 본질을 회복하지 않으면 가나안 성도들이 기성 교회로 복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설문조사 발표 후 발제자로 참여한 조성돈 교수는 “가나안 성도들은 교회에서 상처를 받거나, 교회 자체가 미워서, 또는 신앙에 대해 회의를 느껴서 교회를 나가지 않는 것이 아니다”라며 “대부분은 성년이 되면서 교회라는 틀을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틀에 박힌 신앙으로 살 수 없는데, 교회가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떠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조 교수는 “가나안 성도들에게서 발견되는 것은 아무리 이성적으로 교회를 떠나고 하나님을 부인하려고 해도 정서적으로 신앙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며 “한국 교회는 이들이 순례의 과정을 조금 덜 고통스럽게 마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순례의 끝에서 교회를 다시금 돌아볼 수 있도록 마음의 지지를 보내야 한다”고 당부했다.

청어람아카데미 양희송 대표기획자는 “가나안 성도 현상은 현재 한국 교회에 던져줄 수 있는 긍정적 기여가 될 것이라고 본다”며 “공동체를 말하면서도 사실상 ‘집단주의’를 조장하는 경우가 많은 한국 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설명했다.

양 대표기획자는 “가나안 성도들은 제도 종교, 무의미한 예배, 권위적이기만 할 뿐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위계질서, 위선적인 신앙생활 등에 대해 저항하고 있는 것”이라며 “한국 교회는 이들의 저항을 개혁과 변화를 위한 교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igoodnews.net]

길진리생명이신 그리스도 예수 < 37 >





 
 

666 이야기(3) 로마교황의 축복과 저주 ①

 
 
1. 로마교황『비오』9세(1846-78)는 시실리아(Two Sicilies)왕에게『황금(黃金)장미』<로마교황이 축복한 것으로 특별한 명예의 상징이며, 로마카톨릭국가의 원수, 교회, 도시 등에 기증되었던 것으로 순금(純金)으로 만든 장미. 대영백과사전의 “Golden Rose”란 참조. 이 황금장미의 실물은 프랑스 빠리의『끌리니』박물관 Musee de Cluny, Paris에도 소장되어 있다-역자주>를 보냈다. 이 왕은 일년이 채 못되어 왕좌에서 쫓겨났다.
2. 역시 같은 로마교황『비오』9세가 오스트리아의 황제를 축복했을 때, 황제는 일년이 못되어 베네치아(Venetia)를 잃었고 사도와(Sadowa)에서 참패를 당했다.
3. 로마교황『비오』9세는 스페인의『이사벨라』여왕에게 황금장미를 보냈다. 얼마 후 그녀는 왕좌에서 쫓겨나 망명 중에 죽었다.
4. 로마교황『비오』9세는 프랑스 위제니(Eugenie)왕후에게 황금장미를 보냈다. 일년이 못되어 왕과 왕비는 권좌에서 쫓겨났고 둘 다 망명 중에 죽었다. 그들의 외아들이었던 왕자는 아프리카에서 줄루(Zulus)족에 의해 살해되었다.
5. 브라질의 왕후는 로마교황으로부터 축복을 받았다. 삼일 후 왕후의 다리가 부러졌으며, 왕과 왕비는 권좌에서 쫓겨나고 귀양 중 죽었다.
6. 브라질의 왕위 상속자였던 공주는 로마교황으로부터 축복을 받았다. 곧 기형아를 출산했으며 망명 중 죽었다.
7. 로마교황은 멕시코의『막시밀리안』황제를 축복하였다. 황제는 곧 권좌에서 쫓겨났으며 국민들에 의해 살해 당했다.
8. 로마교황은 황제의 과부를 축복하였으나 그녀는 불치의 정신병에 걸려 망명 중 죽었다.
9. 1890년 로마교황은 수녀들을 가득 싣고 남아프리카를 향해 떠나는 증기선을 축복하였다. 이 배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실종되었다.                           
10. 로마교황은『몬테비데오』에서『부에노스 아이레스』로 가는 호화여객선을 축복하였다. 이 배는 이틀 후 침몰하였다.
11. 로마교황은 프랑스의 로마카톨릭교도였던 불랑제(George Boulanger, 1837-91)장군을 축복하였다. 2주가 못되어 그는 추방되었고, 그 후 그의 정부(情婦)의 무덤 앞에서 자살하였다.
12. 미국 남북전쟁의 영웅이었던 셔만(W.T. Sherman)장군 부인은 로마교황으로부터 황금장미를 받은 직후 죽었다.
13. 윈드호스트(Ludwig Windhorst, 1871년에 결성된 독일 로마카톨릭 중앙당지도자)박사는 로마교황이 수여하는 ‘그리스도 훈장’(Order of Christ)을 받고 일년이 못되어 죽었다.
14. 1895년『다마스커스』대주교는 빗토리아(Vittoria)에서 스페인의 군대와 함대에 로마교황의 축복을 기원하였다. 그 결과 스페인은 두 개의 함대와 두 개의 군단을 잃었다.
15. 1897년 로마교황 사절단은 프랑스 빠리에서 열린 대자선 바자회를 축복하였다. 5분이 못되어 바자회는 불길에 휩싸였고, 오스트리아 황후의 자매를 비롯한 거의 150여명의 상류인사들이 사망하였다.
16. 가련한 오스트리아 황후는 로마교황으로부터 황금장미를 받았다. 그 후 황후는 스위스 쥬네브 호수가에서 살해되었으며 그의 아들은 자살하였고 왕위계승자였던 조카『페르디노』는 사라예보에서 암살당해 세계 제 1차 대전이 일어났다. 그 후 오스트리아는 더 이상 제국으로 불려지지 않았다.
17. 로마교황을 방문한 영국왕『에드워드』7세는 교황자신의 서명이 들은『레오』13세의 사진을 기념선물로 받았다. 그 즉시 영국군이 소말리아에서 역전을 당했다는 소식이 들렸고, 왕의 건강은 악화일로로 치달아 죽을 때까지 회복되지 못하였다.
18. 로마교황은 영국왕의 특사였던 덴비(Denbigh)경을 축복하였다. 바로 그 날 남아프리카의 영국군은 참패를 당했고 미투엔(Mithuen)경은 중상을 입었다. 영국의회의 로마교황 신봉자들은 이 뉴스를 듣고 기뻐했다.
19. 1923년 바텐베르크(Battenberg)의 에나(Ena)공주는 결혼식날 로마교황의 축복을 받았다. 나흘이 채 못되어 그녀는 로마카롤릭 무정부주의자들의 습격을 받아 13명이 사망하고 80여명이 부상당하는 와중에 겨우 도망나와 목숨을 건졌다. 그녀의 결혼예복은 피로 범벅이 되었다. 1931년 5월, 그녀와 남편(알폰소 13세/왕)은 왕좌에서 쫓겨나 스페인으로부터 탈출하였다.
20. 1906년 로마교황은 로마카톨릭교로 개종한 세르비아의 나탈리(Natalie)여왕을 축복하였다. 그녀는 망명 중에 죽었으며 그녀의 외아들은 왕위에 올랐다가 살해되었다.
나의 마음 제단 위에 불길같이 타도다
영원토록 찬양하며 주께 영광 돌리리
찬양하리 찬양하리 죽임 당한 어린양
주께 영광 돌리어라 나의 죄를 씻어 주셨네 
 <찬198 / 정결하게 하는 샘이③>
 
구영재 선교사 [KOO / PO Box 8844 Victoria,  BC V8W 3Z1 Canada]
 
 
 
 
 

필객의 붓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며

 
쓰레기를 버리러 문밖을 나서니 사탕을 보고 달려드는 동네꼬마처럼 바람과 섞여 놀던 오후의 햇살이 와르르 나를 둘러쌉니다. 공기 중에 배어있는 꽃 향기와 풀 냄새에 코끝의 숨이 달콤해지고 친구를 만난 아이처럼 반가움으로 가슴이 부풀어 오릅니다. 잠깐 문 밖만 나서도 기분이 전환 됩니다. 밑빠진 독처럼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어 보채는 욕망을 달래며, 뭔가 허전하고 가슴 끝 어딘가 늘 불안에 젖어있는 것 같은 평생의 느낌을 지고 살아가는 인생 위에 드넓은 하늘이 펼쳐져 있어, 그 무한한 공간에 기도를 쏘아 올릴 수 있음이 정말 은혜입니다.
날이 좋으니 가라지를 열어놓고 차 청소를 하는 사람들, 현관 의자에 나와 앉은 사람들, 길을 막아놓고 하키를 하는 아이들로 텅 비어있던 거리가 사람 사는 동네답게 북적거리니 삶이 풍요롭게 느껴집니다. 모두가 저렇게 평화롭고 단순한 심령으로 더불어 살아간다면 바로 여기가 천국일텐데, 가족 모두가 일 자리로 내몰리고 결핍감과 시간에 쫓기며 사는 북미의 삶에 이런 한가한 시간을 내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일용할 양식에 대한 염려는 부자나 빈궁한자나 할 것없이 누구에게나 일생을 두고 따라붙는 염려인 것 같습니다. 이전처럼 양식이 부족한 때도 아닌데 아직도 여전히 먹고 사는 문제가 사람들의 마음을 염려로 짓누르고 마음을 각박하게 하고 삶의 내용을 구차하고 서글프게 하고 뼈가 녹아내릴 정도로 근심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도 안에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 하심은 정말 놀라운 뜻이 담겨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장래에 대한 걱정을 하고 평생을 대비하고 계획하는 것이 책임성 있게 사는 것인 양 교육을 받은 우리에게는 매일 손을 벌린다는 것이 무책임하고 무계획하고 처량하게 들릴지도 모를 일이지만,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존재들인 우리에게 그 약속은 연속적이고 어김없이 일정하게 채우시겠다는 임마누엘의 놀라운 약속입니다. 하루 하루 주어지는 시간들을 무심하게 받아들이며 내일이 온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가다가 갑자기 큰 병이 들거나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단 일초도 단 한 순간도 내 것이라 주장할 수 없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나에게 생명을 주신 분이 거두시겠다고 하면 거두어지는 것입니다. 품꾼의 날과 같은 인생이라는 성경의 표현처럼 하루하루 사는 존재들에게 일용할 힘과 지혜, 일용할 관계와 사랑, 일용할 은혜와 기적, 일용할 양식과 시간을 주시겠다는 약속은 그래서 참으로 다행스러운 약속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양식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만나는 다음 날까지 남겨둘 수 없으며 많이 거둔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자도 모자람이 없는 것이라 합니다. 사람들이 탐욕을 부리는 이유도 결핍에 대한 불안감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매일 주어지는 은혜와 채우심이 있는 줄 안다면 미리 내일까지 염려하며 강박적으로 움켜쥐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자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를 걱정하며 불평하고 원망하고 두려워하며 살도록 지음을 받지 않았습니다. 생계가 우리를 압박해 올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욱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함으로 이 모든 것을 더하시는 은혜 앞으로 더 가까이 나가야 합니다.
전 세계가 어렵다고 하는 이 때 우리는 낮은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 생의 자랑으로 자존심을 내세우며 마음을 높이면 안됩니다. 
도살의 날에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마음을 살찌게 하면 안된다고 야고보 사도는 권면합니다.
경제침체와 불안한 정국이 노래가 되어버린 뉴스를 닫고 잘 준비를 하며 양치를 하며 거울을 보면 뭔가 정리가 안된 채로 세월의 보폭을 따라 잡느라 숨차게만 가고 있는 것 같은 초조함을 느끼곤 합니다. 잠깐만이라도 세월에 브레이크를 걸어놓고 생이라는 바퀴가 확실한 달성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 점검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짙은 안개 속에서도 속도를 줄여주지 않고 마냥 제 속도로 달리는 세월 위에 얹혀가야 한다는 것이, 제 멋대로 달리는 말 위에 앉은 눈 먼 사람처럼 불안하고 위태롭게 느껴질때가 많습니다. 이럴 때 일수록 마음 안의 흐트러진 노래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허무가 아니라 믿음, 낙심이 아니라 기쁨, 미움이 아니라 사랑, 슬픔 대신 희락, 걱정대신 감사로, 내 안의 노래를 믿음으로 소망으로 사랑으로 바꾸는 것이 우리 인생이 메마른 광야에서 끝나지 않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열쇠일 것입니다. 지금 내 입에 있는 말을 보면 앞으로 내가 거둘 약속의 분량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충만하게 임하는 은혜를 볼 수 없도록 눈을 가리고 염려에 몰두하게 하는, 술거품이 이는 잡다한 생각의 잔을 거부하고 말씀하신대로 기뻐하고 기도하고 오직 감사하며 쉽지 않은 현재의 문제를 호미삼아 삶의 잡풀을 매고 지금의 시간에 아름다움과 가치의 씨를 심으며 찌푸려진 미간을 활짝 펴고 웃어봅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쉴 것이라' 는 시편의 말씀을 노래하며  침상 위에 예수님의 평강을 넓게 펼쳐 깝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라'는 말씀의 폭신한 이불을 어깨까지 끌어 덮고 나로 인해 기쁨을 이기지 못해 노래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믿음으로그리며 깊은 잠속으로 들어갑니다. 
 
[서수영 사모 / penofgod@gmail.com]





                

한국 홀사모 난생처음 밴쿠버 나들이 (3)



 
 
 

서미옥 목사 (부산) 간증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습니다.
저는 신앙 간증을 하기에는 아직 많이 부끄러운 사람입니다. 단지 지금까지 저와 함께하셨던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그 신앙을 고백하는 좋은 기회를 주신 하나님과 캐나다 숭실교회에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경남 진주 근교 작은 마을에서 중1때 친구를 따라 옆 동네에 있는 교회에 나가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음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시골마을 깊숙히 자리 잡은 교회라 목회자도 없었고(가끔 노회에서 파송한 목회자들이 오셔서 세례를 주고 가기도 하고, 여름 성경학교를 해 주고 가기도 함) 신앙을 지도해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린이에서 어른에 이르기까지 함께 모여 자발적으로 찬송하고, 기도하고, 성경 읽고, 예배드리며, 신앙생활을 했었습니다. 중2 때 학습을 받고  주일학교를 만들어 반사로 섬겼으며, 제가 만난 하나님을 학교친구들에게도 열심히 전하면서 꼬마전도사라는 새로운 이름표를 달고 열심히 교회를 섬기며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가난한 가정 형편 때문에 부산 큰언니 집에서 살며 신학을 하게 되었고, 신학생 신분으로 개척교회 유년부, 중고등부를 맡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키 작은 시골 출신 처녀 전도사가 사역의 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경남, 경기도, 부산, 울산, 등등 7개 교회를 주님이 인도하시는대로 달려갔습니다. 힘든 줄 모르고 언제나 즐겁게 그 길을 걸어가던 중, 함께 계시던 어른 목사님들께서 노처녀로 사역하기보다는 결혼하여 남편과 함께 동역하라는 권면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남편을 18 년 전에 소개를 받게 되었고.... 그때부터 고난의 길이 시작되었습니다.
남편은 공부도 충분히 했지만, 가정사에 덮친 어려움을 이기지 못해 술에 빠져서 살다가 결국 알콜 중독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쓰러져 죽어가는 사람을 새벽기도 가시던 장로님이 업어서 병원에 입원을 시켰고 그 증세가 너무나 심하여 부산 시립병원 원목으로 계시던 목사님께서 정성으로 돌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학적으로 90%이상의 사망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과 몇몇 분이 임종 예배를 드렸습니다. 죽었다는 의사의 최종 진단으로 시체 안치실로 옮겨졌는데, 마치 그때 안치실이 자리가 없어서 이틀을 복도 어두운 곳에서 대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흰 천으로 덮어 놓은 사람의 발가락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고, 영안실에 근무하던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라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조금씩 살아났으며, 어느 정도 건강이 회복 되었을 즈음에, 그 사람을 소개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때 지나가는 말로 “서울 신학대학에 합격하면 결혼 하겠다”고 그것이 불가능하기에 그렇게 퇴짜를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길로 신학 대학에 합격을 하였고 저는 제가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하기에 알콜 중독자 출신이며 죽었다가 살아난 이상한 신학생과 96년도에 결혼을 하였습니다.
어렵게 신학은 다 마쳤지만, 주기적으로 알콜 중독이 재발하여 언제나 넘어지기를 반복하는 남편은 사역자 아내에게 격려자가 아니고 언제나 걱정과 근심의 발원지가 되었습니다. 그런 환경을 부여안고 지금까지 왔습니다. 지금도 남편은 회복이 되면 강원도 산중에 있는 알콜 중독자들의 요양소에 가서 봉사를 잘하다가 본인이 넘어져서 또 돌아왔다가 또 가고를 되풀이 합니다.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사역만은 포기할 수 없었던 저는 남편과 함께 다시 신학대학원을 공부하고 목사안수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조그만 가정공동체 교회를 개척해서 장애인들을 섬기며, 병원 두 곳과 부산진역 노숙자들에게 빵과 함께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긴 터널 같은 인생의 암흑기를 저만 겪었을까 만은 그때는 정말 몇 번이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때도 없지 않았습니다.
저의 인내가 한계에 다달아 견딜 수 없을 즈음 하나님은 우리 가정에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들을 입양을 통해 선물로 주셨습니다. 지금 여섯 살인데도 다 컸다고 하면서 엄마를 돕겠다고 나서는, 자다가도 엄마 팔 좀 주물러 달라고 하면 일어나서 정성껏 만지며 기도해 주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선물 여호수아. 하나님은 아들을 통해 얼마나 위로하시고 힘을 주시는지 모릅니다. 힘들어도 이제는 힘들다고 말을 하기가 민망합니다. 아들을 통해 주시는 기쁨이 너무 커서, 지나고 보니 내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다만 저는 신음하며 울었을 뿐인데, 저를 사랑하고, 저의 남편을 사랑하는 하나님은 좋으신 우리의 아버지셨습니다.
한 번도 우리를 버리지도, 실망시키지도 않고, 우리의 손을 잡고 앞서 일하신 신실하신 우리의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위해 뭐든 못 할까 싶은데도 여전히 우리는 연약함을 고백합니다. 이렇게 진이 빠지고 힘들어 신음하고 있을 때, 캐나다 밴쿠버를 방문하는 엄청난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한국도 많이 발전하여 많은 사람들이 외국 여행을 가지만, 우리 같은 사역자에게는 하나님의 위로의 선물이라는 말 외에는 다른 설명이 안 되는 좋은 일이 생겼습니다. 아픈 남편을 두고, 또 어린 아들을 언니에게 맡기고 가는 여행길이지만, 주님께 맡기고 가려고 합니다. 20여년을 달려온 사역의 길도 뒤돌아보고, 하나님께서 저에게 맡겨주신 지금의 가족을 더 사랑하면서, 아직 못 다한 나머지 사역의 길을 가는 용기를 얻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되어 너무나 기쁘고 감사합니다. 
전도사 몇 십 년 하다 보니 조금씩 인생살이도 알아갑니다. 아마도 이민 생활도 목회 못지않게 어렵고 힘들 것으로 짐작이 갑니다. 부족한 여종이 간절히 바라고 기도 합니다, 힘내세요. 그리고 하나님의 큰 축복을 간구합니다.
 
 [서미옥 목사]
 
 
 
 
 

4인4색 밴쿠버목양일기



 
 
 
 
 
 
 
 
 

마음을 열어요

요새 아이들과 장난 비슷하게 흉내 내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귀를 열어요”라는 말인데 한 개그 프로그램에서 상대방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할 때 사용하는 유행어입니다. 아이들과는 그냥 웃고 말았지만 혼자 말씀을 보다 문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씀이 어쩌면 ‘귀를 열어라’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물론 성경은 더 고급스러운 표현을 사용합니다.
“들을지어다” “귀를 기울일지어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 지어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등의 표현이지요. 그런데 그 뜻을 “좀 들어라!” 정도라고 보면 조금 무리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 대해 부드럽게 해석하는 방법도 많이 있습니다. 기도의 중요성을 말할 때도, “내가 원하는 것을 부르짖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고 할 수도 있고, 사명을 받아 행함에 있어서도 “내 믿음대로 실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려줍니다. 그런데 오늘은 좀 더 본질적인 의미의 “듣는 것”을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출애굽기 3-4장을 보면 모세가 하나님께 사명을 받으나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거듭 하나님의 명령을 외면하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짧게 요약해보면;
하나님:“이제 애굽으로 가라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내 백성을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모세:내가 누구이기에 그 일을 감당하리이까? (저는 그런 큰 일을 감당할 만한 사람이 못됩니다.)
하나님:“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모세:당신은 누구십니까? 사람들에게 누구라고 말할까요?
하나님:“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모세:“하지만 그렇게 말해도 사람들이 믿지 않을텐데요?”
하나님:"표적 두 가지를 그 자리에서 체험시켜 주시고 다른 표적 하나를 더 약속해 주신다"
모세:“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하나님:“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모세:"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하나님:모세에게 노하시며 “네 형 아론과 함께 가라”고 하십니다.
위의 대화를 보면 모세는 “귀”로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는 것 같습니다. 잘 알아듣고, 또 그래서 하나님과의 대화가 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요, 그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려고 합니다. 모세는 “귀”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으나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아듣고 있습니까? 혹시 현실에 안주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장래에 닥칠 어려움이 너무 염려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가진 믿음이 부족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는 사실은 모세의 이런 부족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꾸짖고 벌하시기 보다는 격려하고 위로하고 또 달래신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마지막에 노하기까지 하셨지만, 결국 모세를 크게 사용하시지요. 우리에게 비록 수많은 부족함과 결점이 있을지라도,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선하신 성품과 넘치는 은혜로 우리를 대하시니 마음을 내어 하나님께 가까이 와야 할 줄 압니다.
우리 중 “귀로도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즐겨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신의 이야기만 하나님께 쏟아 놓는 것을 즐기는 성도가 있다”는 이야기를 간혹 듣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쏟아 놓는 것도 신앙에 있어서 꼭 필요한 부분이기는 합니다만, 그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즐겨 하는 성도들이 많아지기를 기원합니다. 더 나아가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들을 뿐만 아니라 “마음”을 열고 받아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용균 목사 / 밴쿠버한마음교회 / 778-554-9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