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15일 금요일

필객의 붓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어떤 사람들은 이 길을 죽으러 갔겠지?”
남편의 이 말에, 짦은 여정의 여행길에 서둘러 하나라도 더 보아야만 한다는 관광에 대한 열의에 들떠 카메라를 들고 질주하던 걸음이 느려지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나의 생각없음이 점점 더 부끄러워집니다.

콜로세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로망이자 유럽의 낭만 속에 어김없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거대한 역사적 유물의 윤곽이 드러나는 길로 접어들자 나도 모르게 탄성이 일고, 언제 저곳을 가보나 했던 소원이 이루어진 기쁨으로 게걸스럽게 덤벼들던 마음이 숙연해지고 그 안에 담긴 슬프고 비참한 의미들이 생각나서 사진 한장도 조심스럽습니다. 로마의 잔인한 피와 억압의 역사, 권력의 술에 취해 탐욕과 방탕에 빠진 광기어린 귀족들의 착취, 무고한 백성들을 두려움으로 제압하기 위해 벌어진 살륙의 게임으로 인한 사람들의 원성과 통곡과 울부짖음이 아직도 거리에 배어있는 듯 합니다. 오만한 권력의 압제와 신앙의 탄압으로 사자밥이 되거나 화형으로 죽어간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의 피가 뿌려진 땅..
지금 내가 가는 이 길이 내 남편이나 내 자녀, 사랑하는 동역자들이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보러 가는 길이라면, 복음 때문에 내가 죽기 위해 가는 길이라면 얼마나 두렵고 가슴이 아플까, 실제로 누군가 남편이나 자식을 죽음의 길로 내보내고 두려움과 애가 끊어지는 슬픔으로 울부짖었을 길을 걸으며 할 말을 잃었습니다.

지금은 지하의 터까지 흉측하게 드러나 철저히 돌무더기가 되어버린, 유적지로 바리케이트를 치고 지키지 않았다면 동네 개들과 짐승들의 오물, 쓰레기더미만 가득할 수 밖에 없을 곳을 세계적인 유적지로 홍보하고, 깊이 사죄하고 부끄러워야 할 역사위에 여행의 낭만을 입혀 엄청난 관광 수입을 벌어들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의 흥미와 관심을 끌 수 있는 일은 그것이 인류가 몸담고 있는 지구 공동체를 파멸시킬 수 있는 치명적인 독이든 죄악이든 모든 것이 돈이고 오락이고 흥미가 될 수 있는 세상에서 진리를 사수한다는 것이 참으로 좁고 외롭고 험난한 길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서자 동굴 같은 입구에 걸려있는, 맹수의 송곳니처럼 당장이라도 내려닫힐 것 같은 쇠철장 아래서 생사의 운명 앞에 떨었을 사람들의 공포와 절망감이 느껴지고 그 날카로운 끝이 나의 몸 어딘가를 겨누고 있는 것 같은 위협이 느껴져 괜히 옆구리를 붙잡고 걷게 됩니다.
표를 사러 줄을 기다리는 동안 요란하게 천둥이 울더니만 경기장 안을 돌아보는 내내 겨울 폭우가 억수로 퍼붓습니다. 하늘이 뚫린 것 처럼 처절하게 돌무더기 위로 쏟아져 내리는 빗물을 보며 어머니가 우는 모습을 본 어릴 때처럼 가슴이 울먹울먹해집니다.
“하나님 죄송해요. 우리 인간들의 미련함과 간악함과 죄악을 용서해주세요. 이런 기도를 드리는 저도 탐욕스럽게 할 말 다하고 생각 속에 온갖 악을 용납하고 이방인처럼 염려하고 미워했습니다. 이제 새로워지겠습니다. 내 속의 미련과 악을 다 씻어주세요”


이곳에서 순교한 사람의 신앙은 무엇이며 지금 그들의 자취를 새긴다고 카메라를 들고 온 나의 신앙은 무엇인가? 사도 바울, 베드로, 폴리갑 등 신실한 하나님의 종들의 그 고귀한 죽음뿐 아니라 예수님마저도 로마의 치하 아래 오셔서 그들의 극형에 의해 처형을 당하셨습니다. 당시 인간들에겐 하늘보다 높아보였을 막대한 권력 아래 그분들의 신앙은 한낱 광신도에 불과 했을 것인데, 지금 나는 얼마나 교양과 균형잡힌(?) 신앙으로 세상의 비위를 거스리지 않기 위해 촉각을 세우는가? 내가 지금 지혜라고 여기는 우아하고 피상적인 믿음의 고백이 과연 그 모진 핍박을 죽음으로 이겨낸 순교의 신앙과 동질의 것이라 할 수 있을까?

로마에서 맞는 그 아침 새벽에 로마서를 읽었더랬습니다. 사도바울은 로마를 보고 싶은 간절한 소원을 담아 로마에 있는 형제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에게 로마는 현대의 우리가 여행에 대한 로망으로 가고 싶어하는 사랑과 낭만의 도시가 아니라 죽음의 위협과 탄압이 기다리고 있는 땅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그토록 로마의 신앙 동지들과 함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랐습니다. 복음의 진수를 담은 책, 성경 속의 다이아몬드라 할 수 있는 책이라고, 앵무새처럼 배운대로 가르치기도 했던 말씀이지만, 죄와 은혜에 대한 어마어마한 말씀이 이렇게 생명을 건 복음의 열정위에 임한 계시라 생각하니 기름칠을 한 입술로 한가하게 떠들었던 나의 무지를 할수만 있으면 취소하고 싶습니다.

그 거대한 핍박의 역사를 박람하듯 도시 곳곳에 세워진 오벨리스크와 가증한 형상들이 가득한 땅을 걸으며 많은 사람들의 고귀한 희생과 죽음의 피를 통해 전해진 복음 때문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깨닫는 것이 둔하고 입이 미련하여 복음에 대해 말하는 내용이야 이전과 크게 달라지진 못할지라도 심정으로는 너무나 엄청난 변화가 생긴 것 또한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잃었던 생명을 찾았고 광명을 되찾은 놀라운 은혜를 받았기에, 내가 이 생에서 가장 큰 성공을 이룬 사람 중 하나가 되었음이 너무나 행복하면서도 여전히 복음과 상관 없이 살아가는 이 도시의 죽어있는 영혼들 때문에 마음이 아픕니다.
사도 바울이 너무나 간절히 복음을 전하고 싶어했던 이 땅의 영혼들이 복음을 받고 마지막 날 천국에서 “잃었던 생명찾았고 광명을 얻었다” 는 찬송을 함께 부를 수 있는 은혜를 구하며 돌아가서도 쉬지 않고 기도하겠다고 다짐 또 다짐 했습니다.

[서수영 사모 / penofgo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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