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5일 목요일

마음이 이어질 때


니고데모의 안경 - 신국원




세계관은 ‘세상을 보는 눈’입니다. ‘생각의 지도’라고도 합니다. 스스로 인식하든 안 하든 세계관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이기도 하지만 공동체를 통해서 드러납니다. 세계관에는 여러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이 있습니다: 세상은 어디에서 왔으며,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나? 인생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왜 세상은 이다지 고통과 죄악으로 가득한가? 구원이 실제로 있는지, 있다면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며, 세상과 역사의 목적과 의미는 무엇인가? 

기독교 세계관
그리스도인의 비전은 기독교 세계관을 통해 형성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크게 창조- 타락- 구속의 진리로 대표됩니다. 이 삼중렌즈로 우리는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기독교 세계관은 성경적 세계관으로서 우리의 안목을 고쳐 주는 치료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모든 것을 제대로 보게 합니다.

창조
창조는 세상과 만물이 어디로부터 왔으며, 왜,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창조를 통해 성경의 문을 열고,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봅니다. 창조 진리는 특별히 인간 근원과 목적에 대한 물음에 답을 줍니다. 창조는 우주와 역사의 기원과 더불어 인간이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위해 있게 되었는지를 밝혀 줍니다. 틸리케는 인간창조의 특별함을 묘사하면서 이는 ‘하나님의 중대 결단’ 이며 ‘모험이라고도 했습니다. 세상이 인간에게 맡겨지고 그에 의해서 좌우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고 운영하는 하나님의 대리인입니다. 소위 ‘문화명령’이라 불리는 ‘다스림’의 사명이 있습니다. 인간이 창조의 청지기라는 인식은 문화와 역사도 그에게 순종해야 함을 알게 합니다. 

문화는 인간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창조 세계를 조성하고 보호하며 가꾸는 일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문화의 표지는 ‘샬롬’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의지를 통해 인간은 자발적 순종의 특권을 받았습니다. 물질적인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영혼을 가진 존재이며, 영원을 보는 안목과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특권을 가졌습니다. 

타락
지금의 세상은 창조된 그대로가 아닙니다. 현실은 문제와 비정상적인 것들로 가득합니다.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죄와 악으로 물든 비극적인 곳이기도 하고, 여기서 인간은 갖 고통에 시달립니다. 죄와 악, 그리고 죽음은 인간이 직면한 가장 큰 비극입니다. 악이 세상에 온 것은 인간의 결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창3장). 인간의 타락이 악의 원인이라는 관점은 성경에만 있는 특별한 진리입니다. 악은 철저하게 후천적인 것으로, 인간이 하나님과 언약을 깨뜨린 순간 세상에 나타났습니다. 죄악으로 인해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 삶의 자세가 달라졌습니다. 타락은 궁극적이며 절대적인 기준이 하나님에게서 인간 자신에게로 옮겨졌음을 뜻합니다. 인격의 중심인 마음이 부패한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그의 핵심적 기능인 지,정,의가 왜곡되고 비뚤어졌습니다. 전적 타락, 전적 부패, 전적 무능력이 되었습니다. 타락의 결과는 이토록 심각한 것입니다. 타락이 중대한 문제인 까닭은 그로 말미암아 생명의 근원인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만물이 사망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세상 속에 사는 우리는 악을 체험하는 동시에 죄악의 권세아래 살아갑니다.  

인간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반역한 자기 자신을 섬김으로 타락은 곧 우상 숭배라는 등식이 성립됩니다. 타락의 원리는 유전되며, 인류의 대표로서 아담이 지은 죄는 인류 모두에게 전가됩니다.  

구속  
이 세상에는 과연 살 소망이 있을까요? 죄와 악 그리고 타락에 대한 이해가 깊을수록 세상과 삶은 암울하게 보입니다. 구원은 이러한 세상에 대해 소망이 있음을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그대로 내버려두시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타락 이후 인류의 소망은 오로지 구원에 대한 약속에 있었습니다.  특히 구원을 가져올 “여자의 후손”, 즉 메시아에 대한 기다림이 소망의 근거였습니다. 구약 시대의 오랜 기다림이 끝나고 과연 약속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는 여자의 후손으로 오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중요한 ‘일’은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었습니다.  성경은 ‘오실 예수’와 ‘오신 예수’에 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구속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회복입니다(고후 5:17-18). 아담이 깨뜨린 언약을 회복하는 것이고, 세상을 창조하신 본래의 목적대로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재창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타락으로 죄악 가운데 죽은 자에게 새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은 여전히 죄인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에 근거하여 그분의 의를 우리의 것으로 돌리신 하나님의 주권적 선포로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구속은 순간적인 역사인 동시에 하나의 긴 과정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더불어 완성됩니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 나라는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교회보다 훨씬 큰 실재이며, 그 범위는 구속을 통해 회복되는 세계 전체입니다.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진정한 방법은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군사와 일꾼을 기르는 훈련소라 할 수 있습니다. 신자들은 자신의 구별된 삶을 통해 불의한 세상 속에서 의의 빛을 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완성을 기다리는 사람은 구속 역사의 동참자로 살아갑니다.  그들은 세상이 주는 쾌락과 재미에 탐닉하지도, 세상으로부터 도피하지도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문화의 누룩으로 복음을 통한 변혁을 바라봅니다.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올바로 보는 믿음의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778-868-3063 / Ezekiel475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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