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이여 안녕
영국의 유명한 테니스 선수 ‘짐 길버트’가 다섯 살 때 엄마와 함께 치과에 갔다. 길버트는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갑자기 긴급 상황이 발생했다. 의사의 주사 바늘이 엄마의 잇몸에 닫는 순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길버트에게 치과는 죽음의 장소로 각인되었다. 길버트는 이가 아파도 도저히 치과에 갈 수가 없었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할 만큼의 치통이 몰려오자, 치과의사를 자신의 집으로 불렀다. 떨칠 수 없는 불안 속에 의사의 지시를 따라 하늘을 향해 입을 벌렸다. 주사 바늘이 자신의 잇몸에 닿자, 그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두려움은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동시에 침몰 시키는 악질 테러리스트(잠12:25,17;22)다. 요즘 그리스어 ‘멜랑콜리아’(melancholia)란 말이 유행한다. 인간의 슬픔과 두려움으로 인해 식욕부진, 불면, 의기소침, 과민함, 불안함 등으로 생기는 ‘우울증’을 말한다. 그런데 현대인들이 느끼는 두려움의 실체는 이렇다. “사람들이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것 중에 40%는 지나간 과거에 대한 것이며, 50%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것이며, 10%만이 현재를 위한 것이다”. 이것은 노만 빈센트 필 박사의 말이다.
맥아더 장군은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인사이트를 얻어 인천상륙작전을 실행했다고 한다. 가나안 정복전쟁은 적의 허리를 먼저 강타하고, 전선을 둘로 나눈 후 적을 차례로 선멸 시켜 나가는 전술이었다. 이스라엘 군대는 남쪽 연합군을 물리치고, 이제 가나안 북부 연합군과 메롬 물가에서 맞섰다. 이때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다. “두려워 말라”(수11:8).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의 곁에 ‘스토커’처럼 붙어서 반복해서 “두려워 말라”(수1:9, 수8:1, 10:8, 10:25, 11:6)고 말씀하신 것이다.
비행기에는 ‘자동항법장치’가 있다. 조종사들이 고도, 속도, 루트, 무게만 세팅하여 활성화 시키면, 비행기 스스로 모든 난관을 헤쳐가도록 하는 장치다. 내 속에 있는 모든 두려움의 고도, 속도, 루트, 무게를 하나님께 세팅하라! 하나님의 ‘자동항법장치’가 작동하여 두려움의 난기류를 피해, 평온한 순항의 길로 나를 인도할 것이다. 두려워하는 마음은 절대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은 “능력과 사랑과 절제”(딤후1:7)뿐이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마음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할 이유는 확실하다. 하나님께서 내가 가진 모든 두려움과 맞서 싸워 주시기 때문이다(수8:1,10:8,11:6).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으로 말미암아 죽은 청년의 수가 30만 명이었다. 그런데 아들과 남편을 전쟁에 내보내고, 염려와 불안과 근심가운데 빠져 심장병으로 죽은 미국시민들이 10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총탄이 사람을 꿰뚫어 죽인 수 보다 불안과 공포가 죽인 사람의 수 가 훨씬 많았다. 릭 워렌 목사는 두려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라면 선천적으로 두 가지의 두려움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추락에 대한 두려움과 시끄러운 소리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우리는 아기들에게서 이 두 가지 두려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른 모든 종류의 두려움은 경험이나 부모님, 친구나 동료들, 그리고 다른 여러 가지 것들로부터 습득된 것입니다. 두려움을 벗어나는 데에는 몇 가지 단계들이 있지만, 먼저 이렇게 시작하십시오.”
“내가 여호와께 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시34:4)
황보창완 목사 (밴쿠버성산교회 청년부) / 778-708-5540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