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11일 토요일

건강 칼럼



 

봄에 나는 산야초(山野草) 약인가? 독인가?

 
2-3주 전에 필자의 필자의 클리닉에 하루에 몇번씩 구토와 설사를 하는 환자 몇분이 들른 적이 있다. 그 연유는 물어보니 야생하는 곰보배추와 민들래를 드시고 그 증상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사실상 곰보 배추는 정확하게 구별하기가 애매한 형태로 요즘 몇몇 인터넷 웹 사이트에서 보여주는 여러장의 사진을 보면 서로 달라서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가끔 아시는분들이 몸에 좋은 약초식물 이라고 권하니까 인터넷 사진만 보시고 비슷한 것을 채취해서 드시는것은 위험하지 않을수 없다. 정확하게 구별해서 적당한 양을 드셨다면 아마 몸에 약이 되었을 것이다. 민들레나 곰보배추는 약용으로 쓸때 건초를 환자의 증상에 따라 물론 가감이 있겠지만 하루 적당한 복용량은 대략6-12g을 쓴다.생초를 그냥 드신다고해도 적당히 드시면 탈이 나지 않을 것이다.그런데 제철에 나는 몸에 좋은 약초 식물 이니까 과용하셔서 문제가 되는것 아닌가 싶다.과유불급(過猶不及) 이라는 말이있지 않는가? ‘정도가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말이다. 또한 그것들을 어디서 채취 했냐는 것이다. 자동차 매연에 노출되는 도로변이나 주차공간 옆에서 채취해서 드시면 우리몸이 중금속에 노출될수 있고 너무 습해서 항상 오염이 될수 있는 곳에서 채취해서 샐러드를 해서 드신다면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또한 기생충에 감염될수도 있다.
밴쿠버 인근에 흔히 볼수 있는 민들레, 곰보배추, 질경이,달래,엉겅퀴,등을 볼수 있는데, 약명으로는 민들래는 포공영(蒲公英)이라고 하고 곰보배추는 여지초라고 하고 질경이는 차전초(車前草)라고 엉겅퀴는 큰종자의 것은 대계, 적은것은 소계라고 한다. 또한 달래는 해백이라고 부른다. 우리주위에 지천으로 깔려있는 민들레(포공영)의 효능은 한방에서는 꽃피기전의 민들레를 주로 약재로 쓰며, 해열 작용과 독소배출의 효능이 있고 간염, 황달과 같은 간질환을 예방하고 변비와 열로 인해 소변을 못보는 증상에도 효과가 있으며, 산모에게 젖을 빨리 분비하게 하고 유선염과 유종을 치료하는데 효능이 있어서 약재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민들래는 성질이 차갑기 때문에 속이 냉하신 분들이 분들이 너무 많이 드시거나 지속적으로 드시면 설사를 하게되고 속이 더 냉하게 될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곰보배추(여지초)의 효능은 기관지 천식, 기침가래와 같은 호흡기 질환과,자궁염과 냉증, 생리통과 같은 부인과질환 및 아토피에도 좋다고 알려져있습니다. 그러나 과용할경우 일부사람들에게 두통, 현기증, 구토, 구갈, 상복부 불쾌감 등이 나타날수 있다.
질경이는 차전초라고 하는데 그씨앗은 차전자라고 하는데 주로 씨앗을 약제로 많이 사용 하는데 차전자(車前子)는 소변을 잘 통하게 하고 습을 밖으로 배출시키는 동시에 설사를 치료하고 눈을 맑게 하며 담으로 인한 기침을 치료하는 효능을 지닌 약재다. 주로 소변이 잘 나오지 않는 증상이나 간에 열이 성하여 눈이 침침하고 아픈 것, 폐에도 열이 있어서 가래가 생기고 기침 등의 증상에 주로 응용되며, 간과 폐의 열을 소변과 같이 밖으로 배출하여 각 장부에 열을 내리는 효능이 있는 약재이고, 이밖에도 혈압강하작용 역시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질경이의 뿌리나 씨앗의 약성이 차고 강하므로 몸이 찬사람이나 소화기가 약한 사람은 피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달래(해백)는 비타민, 칼슘, 단백질 풍부한 야생식물 중의 하나이다. 불면증이나 수족 냉증에 효과가 있고 피부노화를 방지함에 있어서 효과가 있고 면역력을 향상 시키는데 좋으며 빈혈 치료, 월경이 불순과 같은 여성질환에 효과가 있고 동맥경화를 예방하고 콜레스트롤의 수치를 내려 주는 작용을 한다. 그러나 영양성분이 풍부하다고 하여 다량 섭취하게 되면 오히려 역효과를 내게 되는 경우가 있다. 달래는성질이 따뜻하고, 매운 맛 성분이 있어 위염이나 장이 약한 사람의 경우에는 많은 양의 섭취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엉겅퀴(대계 혹은 소계)는 약성이 서늘하여 열로 인한 각혈, 코피, 자궁 출혈, 소변출혈 등을 치료 한다. 내^외과의 염증성 질환 충수염, 폐농양, 화상으로 인한 종기 등에 내복하거나 짓 찧어 붙여도 효과가 있고 또한 급성간염으로 인한 황달을 치료 하는데도 쓰이고 고혈압, 신경통에는 뿌리를 사용하기도 한다. 특별한 부작용은 없지만 성질이 차므로 배가 냉하거나 비위가 허해서 자주 설사하는사람, 식욕이 없는 사람은 삼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한방에서 단방 약제만 사용한다면 약성이 너무 강하여 위에서 언급한것 처럼 부작용이 있을수 있다. 하지만 한가지약제, 단방을 사용하지 않고 여러 약을 서로 섞어서 방제하는 이유는 차거나 더운것을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게하여 환자의 채질에 맟게 처방하는 이유인것이다.
우리 주변에 지천에 깔려있는 약초식물을 깨끗한 곳에서 정확하게 구별해서 채취하고 과용 하지않고 적당히 드시면 약이 되지만 오염된곳에서 채취해서 용량을 초과해서 드시면 오히려 탈이 날수도 있으니 부작용에 주의하시고 지금 많이나는 약초식물은 건초나 차 혹은 효소로 만들어 저장하여 두고 필요할때 드시면 좋을듯 싶다.
 
[클로버데일한인교회 담임 / 엘림한방클리닉 원장 R.Ac, TCM.P / 604-441-6934]
 
 
 
 
 

4인4색 밴쿠버목양일기



 

5월은 가정의 달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주신 작은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주일에 어린이 주일을 보내면서 저희 교회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없었습니다. 해당하는 어린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배시간에 7학년이 된 아이가 자신이 어린이라고 주장했지만 함께 웃고 말았습니다. 특별한 이벤트가 없다보니 드는 비용이 없어서 좋았지만, 다른 교회에서 어린이날 행사를 한 사진을 보니 부럽기도 합니다.
제 아이들이 아직 어릴 적에 어린이날이 되면 선물을 사주기 위해 함께 Toys R Us 같은 곳에 가서 쇼핑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다 사줄 수가 없어서 "No, 안돼"라는 말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물건을 집어든 아이가 흔들리는 눈빛으로 "아버지" 부른 후에, "안돼지요?" 하며 스스로 포기하듯 물건을 내렸놓던 모습이 기억이 납니다. 뭐, 가슴 아프거나 그러지는 않았지만 혹시라도 풍족한 다른 친구들과 비교해서 속상해하면 어떻게 해야하나 염려는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 록키쪽으로 3번이나 여행을 다녀 왔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그 때의 일들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이제는 충분히 기억하고도 남을 나이가 되었지만, 아이들은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보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더 좋아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에게서 받는 상실감에 대비하여 아내를 향한 의존감이 많이 생깁니다. 청년 목회한다고 매일 청년들과 밤낮으로 어울려 시간을 보낼 때, 아내가 적잖히 속앓이를 했었는지 어느 날엔 늙어서 보자고 협박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잘 참아 주었고, 지금도 잘해줍니다.
이민 생활을 하면서 부부끼리 혹은 부모와 자녀간에 갈등이 있습니다. 저는 신혼 시절에 가정의 소중함을 잘 몰랐습니다. 일과 친구들이 더 좋았습니다. 대부분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경험한 아버지들은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없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캐나다에 살면서 가장 좋은 점 중에 하나가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다는 점입니다. 여기서도 바쁘게 일하셔서 시간 내기가 힘든 분들도 있지만 그래도 한국의 상황 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는 남편 또는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더불어 흐르는 시간에 따라 주어진 현실에도 순응을 해야 합니다. 이번에 가정의 달을 맞으면서, 저는 아내를 향해 감사와 사랑을 더 표현하며 살려고 합니다. 늦었다고 포기하지 말고 아이들과 더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고 내년에는 우리 교회에도 진짜 어린이들이 많이 생겨서 어린이 날에 축하해주고 축복해 줄 수 있는 시간이 올거라 믿습니다.
창밖으로 시원한 바람에 푸르른 나무가지들이 춤을 춥니다. 우리네 가정도 서로 사랑하면, 기쁨 가운데 행복으로 춤추게 될 것입니다. 가정의 달에 가족의 소중함을 더 많이 생각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세규 목사 / 밴쿠버오늘교회 / 778-887-8648]
 
 
 
 
 

아브라함 이야기



범사에 복을 받은 아브라함/ 창 24:1 (상)

 
오늘 본문은 아주 짧은 구절이지만, 우리에게 인생과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쇠약하게 된 아브라함
본문에 보면 “아브라함은 나이가 많아 늙었다”고 나오는데 히브리 원문의 뜻은 “아브라함은 늙었고, 여러 해 속에서 갔다 (살았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음을 물론 기력이 점점 약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기력이 약해지게 된 원인은 노화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23장에서 사라와 사별을 했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자인 홈즈 (Holmes)와 라헤 (Rahe) 는 43개의 생활 스트레스들을 열거하면서 배우자의 죽음을 1위로 분류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와의 사별을 통해서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고, 이것은 아브라함의 육체를 더욱 더 약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상실감과 우울증을 겪은 아브라함
어떤 의사가 육십대 후반에서 칠십대 초반에 이르는 네 명의 노부인들을 진료하게 되었는데, 그들은 모두 나이가 듦에 따라 생겨나는 우울증 때문에 찾아온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모두 돈을 많이 벌었거나 또는 돈이 많은 사람과 결혼을 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었고, 자식들도 모두 성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인생은 마치 각본대로 움직여 준 듯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몸이 노화됨에 따라 전혀 예상치 못한 백내장이 생기고, 보청기나 틀니를 끼게 되었고, 결국 이런 것들 때문에 그들은 화가 나고 우울한 기분에 빠져 들어 의사를 찾았던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만, 죽음 못지 않게 늙음에 대해서도 거부감도 갖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늙어가면서 우리는 육체적인 기력의 쇠약으로 말미암아 마음조차도 쇠약해지는 인생의 제한과 상실을 맛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브라함이 늙게 되었다는 것은 아브라함이 육체적인 쇠약은 물론 이러한 상실감과 우울증 그리고 고독감을 겪었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노화
이러한 노화에 대한 심적 거부감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이든 분들은 모두가 느끼는 감정일 것입니다. 가끔 TV에서 의학 관련 프로그램들을 보면, 나이든 분들이 이런 말들을 많이 하는 것을 봅니다. "내가 당뇨병에 걸릴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모든 게 남의 이야기로만 들렸지, 내가 그 당사자가 되리라고는 상상 조차도 못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중요한 이유는 아브라함만이 늙어 쇠약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듯이 노화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늙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약해졌듯이 우리도 약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이 나이가 들어 육체가 약해짐에 따라 정신과 마음도 약해져 죽을 때까지 분노하거나 우울해하거나 체념하는 삶을 살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노쇠한 육신 그러나 강건한 영혼
비록 아브라함이 점점 나이가 들어 몸도 마음도 정신도 약해져갔지만, 그의 영혼은, 그의 믿음은 점점 더 강해져갔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점점 약해져가는 인간의 한계 속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더하셨던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본문을 보면 아브라함은 늙어감 속에서 일방적으로 당하는 수동적인 자세이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므로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이기게 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노화를 피할 수 없다면 당당하게 맞서야 하는데 우리가 육체적인 한계와 상실 속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하나님의 축복이요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다음 주에는 아브라함이 어떻게 하나님의 축복을 누렸는지에 대해 자세하게 알아보겠습니다. 
 
[정기수 목사 / 캐나다중앙교회 / 778-237-8084]
 
 
 
 
 

필객의 붓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줌과 같이

 
먼저 집에 돌아가 쉬겠다는 큰 아이에게 차 키를 건네받고 교회로 들어가다가 돌아보니 어느새 저만치 아이가 걸어가고 있습니다. 건물 모퉁이를 돌아 차 길을 건너 멀어져 가는 아이가 타인의 우주 속으로 사라져 오랫동안 못 만날 것이기라도 한 것처럼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일을 하면서 아이의 뒷모습이 부쩍 어른스러워졌습니다. 연약한 날개로 거센 세파의 바람을 헤치느라 애를 쓰고 있는 아이에게 연민의 마음이 들어 아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며 아이의 인생 여정을 하나님께서 동행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아이가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아이의 머리 위로 끝없이 펼쳐진 하늘 위에서 긍휼과 사랑으로 지켜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져 눈가가 젖어옵니다. 아직도 내 눈에는 곱고 어리게만 보이는 아이가 태어나고 이유식을 하고 걸음마를 하고 학교에 들어가고 사춘기를 지나고 건장한 청년이 되기까지의 모습들이 지금 내 눈 앞을 지나는 기억의 속도만큼이나 순식간에 지나간 것만 같습니다. 사춘기를 심하게 겪으면서 나와 갈등의 곬이 깊었던 아이, 그래서 서로 용서하고 덮어줄 것들이 참 많았습니다. 남이었다면 영영 원수가 되었을 상처와 격한 말들을 딛고 우리는 서로를 용서했고 마음 깊이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용서하고 용서 받는 일이 필요합니다. 인류 제국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피가 피를 뒤대인다는 호세아의 표현처럼 잔인한 보복과 피의 역사가 지금까지 반복되고 있음을 보게됩니다. 나라 간의 전쟁, 정치인들의 싸움, 종교 간의 갈등, 교회 안의 당쟁, 부부나 부모 자식 같의 불화, 개인들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욕망과 입장과 상황에 갇혀 서로를 오해하고 원한을 품고 앙갚음을 하고 원수를 맺고 당을 짓는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조금만 부담스럽고 마음에 안 맞으면 바로 서로를 버립니다.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 깊이가 없는 포스트 모던의 문화, 마음을 두고 깊이 뿌리 내리지 앉는 제 멋대로의 삶의 방식에 길들여진 탓인 것 같습니다. 이기심을 충동질하는 많은 지식과 정보에 닳고 닳은 사람들은 순박한 마음을 잃어버렸습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단순하고 맑고 겸손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만과 편견과 아집으로 꼬여있습니다. 서로의 일손을 필요로 하는 일을 기계와 기술과 돈의 구매력에 의지해 살아가기에 오래 지속되는 관계가 없고 기계를 대하고 살면서 사람들은 아량의 폭이 점점 좁아들어 그 때 그 때의 이해 관계와 구미에 따라 징검다리처럼 관계를 합니다. 그러면서 깊이 외로워합니다.
바벨탑에서 언어가 혼잡될 때 알파벳과 문법과 발음에 관한 외적인 것 만이 아니라 언어의 근원이 되는 인간 심리까지 혼잡된 것이 분명합니다.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끼리도 서로 소통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 가장 가깝고, 같은 상황이나 입장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는 가족들끼리도 조금만 자신의 관점에서 말하다 보면 너무나 쉽게 엇갈립니다. 그러나 조금만 냉정을 찾고 객관화해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인지라 말이 격렬해질 때는 대화를 중단하고 각자 시간을 두고 생각하고 기도하면서 풀어갑니다. 
용서가 없다면 진정한 관계는 형성될 수 없습니다. 쾌락과 탐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심하게 절뚝이는 인격이기에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들을 어렵게 하고 상처를 주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따라서 용서로 깊어짐이 없다면 피상적이고 표피적인 만남일 뿐 사랑과 생명을 나누며 영혼의 필요를 채워주는 관계로  자라날 수 없습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은 상대가 아닌 나를 감옥에 가둡니다. 이미 상황은 종료되었고 상대는 이미 다른 사안에 몰두하고 있을텐데 나는 그 사건을 벗어나지 못하고 거듭 생각하고 원한을 곱십으면서 인성이 거칠고 무례해져 결국 내 주변의 사람에게 해를 입히고 식탁이나 잠자리가 지옥이 되는 것입니다. 죽음에 직면했을 때 사람들은 용서하지 못했던 사람, 용서 받아야 할 사람을 떠올리며 풀고 싶어한다고 합니다. 이 생의 모든 것을 내려 놓은 자리에서 마지막까지 영혼을 얽매는 줄이 용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지막 때 일수록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허물을 덮어주는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용서가 공동체를 세우는 힘이며 용서가 사랑을 낳습니다. 사랑은 인간적인 매력이나 끌림이 아니라 용납과 허물을 덮어주며 서로를 향해 오래 참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용서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선행되어야 할 것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용서하는 것입니다. 지하수가 무궁무진할지라도 한 컵의 마중물이 없으면 절대 끌어올릴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먼저 용서하는 작은 결단이 있을 때 풍성한 용서의 수원을 퍼올릴 수 있습니다. 용서의 분량이 커질수록 인격의 저력이 깊어지고 삶의 도전들을 감당하는 능력도 커집니다.
영원한 형벌이 작정된 우리가 용서받았습니다. 예수님을 통한 용서가 있었기에 우리가 살았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영원을 애써도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을 탕감 받은 것을 생각한다면 용서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관계의 땅에 예수님의 용서의 씨를 뿌리고 심고 가꾸며 많은 생명들이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그 놀라운 용서를 전하는 사명을 오늘도 기도로 감당하겠습니다. 이 세상 모두를 품고 동정하는 듯 푸르고 맑고 투명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 빛으로 내 마음을 물들여 달라고 간구합니다.  
 
[서수영 사모 / penofgod@gmail.com]
 
 
 
 
 

정성헌 선교사 선교칼럼



선교지에서 만난 동역자 2 - "볼료자, 너는 무엇을 위해 사니?"

 
교회 개척 초기, 심방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몇 달간 기숙했던 ‘안나 키프로브나’ 할머니 댁에 들렀다. 나를 맞이하는 안나 할머니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했다. 집안에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자 둘째 아들이 고분질을 위해 큰 돈을 지인에게 빌려 우크라이나로 갔다가, 그 해 농사에 실패해 집으로도 돌아올 수 없는 지경이 되었는데, 방금 돈을 빌려준 사람이 집으로 찾아와 아들의 행방을 묻고 빚 독촉을 하고 갔다는 것이다. 아들이 빚을 졌지만 어미 된 도리로 갚고 싶지만 변변찮은 연금을 가지고는 갚을 길이 막막하다는 것이었다. 아들을 찾는 그 사람에게 자신은 빌린 돈은 갚아 줄 수는 없지만 최근에 알게 된 돈 보다 값진 것 하나를 전해 주겠다면서 예수님을 소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돈을 받으러 왔던 젊은 사람은 자신을 향해 제정신이 아니라는 표정을 지으며 돈 받으려 왔지, 할머니의 신앙이야기 들으러 온 것이 아니라며 횅하니 나가 버렸다는 것이다.
구 쏘련 시절뿐 아니라 지금도 중앙아시아 고려인들 사이에는 농사짓는 사람을 ‘고분자’, 농사일을 ‘고분질’, 팀을 이루어 협동으로 이루어지는 농업시스템을 ‘고분지’라고 한다. 이 말들은 비닐이 없던 시절에 추운 지방에서 일찍 싹을 띄우기 위해 기름 종이를 만들어 씌었는데 이것을 고봉이라 한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1970년 초기부터 구 쏘련은 식량부족사태를 겪기 시작했다. 그래서 농산물생산을 극대화하기 위해 일반인들에게 농사를 허락했다. 여러 농사에 밝았던 고려인들은 일반 직장을 휴직하고 멀리 곡창지대인 백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국영농장의 농지를 임차하고, 현지인 노동력을 사서 대규모 농사를 지어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그래서 구쏘련 시절 가장 유족한 생활을 한 것이 고려인이었다. 그러나 고분질은 이른 봄 이월 말부터 추수를 마치고 수확을 팔고 돌아오는 11월까지 긴 시간을 집을 떠나 움막에서 생활하며, 백러시아계 사람들에게 ‘니그로’로 불려지는 수모를 겪어야 하는 고달픈 일이었다.  이 고분질은 거의 도박과도 같았다. 일기에 따라 수확량과 값이 결정되는 위험 부담이 큰 일이었다. 몇 해 막대한 수익을 얼리다가도, 기후가 좋지 않거나 수확물의 값이 떨어지면 그야 말로 알거지가 되는 도박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러나 많은 고려인들은 그 한 방을 쫓아 서쪽으로 철새처럼 이동했다. 안나의 할머니의 둘째 아들도 그 한 방을 위해 돈을 빌려 우크라이나로 갔다가 낭패를 당하고 돌아오지도 못한 채 간간이 전화로 온 가족의 속을 태우고 있었다. 이런 삶의 형태와 소득구조는 거의 매년 가족이 생이별을 해야 하는 일이어서 가정마다 자녀교육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켰고, 숱한 가정 파탄을 낳기도 했다.
그 다음 날 아침식사를 마칠 즈음에 안나 할머니가 사택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자 삼 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사람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와, 어제 자신에게 아들에게 빌려 준 돈을 받으러 왔던 그 사람이라고 소개를 했다. 김 뵬료자. 본명은 김흥문.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그를 거실로 안내를 하는데 볼료자는 두려움과 흥분에 싸여 있음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나는 이 아침에 어쩐 일이냐고 물었다. 안나 할머니는 아침에 볼료자가 자신을 찾아와 어제 자기가 소개할려고 했던 그 “예수”가 어떤 분인지를 알고 싶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소개하는 것 보다는 그 분에 대해 더 잘 소개할 수 있는 분이 한국에서 왔다며 나에게로 데리고 왔다는 것이다.
내가 볼료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느냐라고 물었다. 그는 자신이 점포 두 개를 가지고 소매상을 하는데 아침에 가게에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러 가기 위해 차에 타고 시동을 걸려는 순간 어디선가 “볼료자, 너는 무엇을 위해 사니?”라는 음성이 들려왔다는 것이다. 너무 이상해서 주위를 둘러 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는데 그 음성은 너무 강력해서 자신의 지난 삶과 자신이 바라던 그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게만 보이고, 그러게 살아온 인생이 너무도 허무해 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왜 사는 지 이유도, 목적도 모른 채 그냥 살기 위해 치열하게 쫓아 다니는 자신에게 그런 질문을 하신 분이 누구인지 알고 싶다고 했다.
볼료자의 아버지는 1947년 북한에서 시베리아 벌목공으로 북한에서 나왔다가 돌아가지 않고 탈출하여 하바롭스크에서 정착을 했다. 그 곳에서 결혼하여 사 남매를 낳았으나 신분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갖은 고생을 다했다. 막내인 볼료자가 5살 되던 해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농사일이 유일한 삶의 기술이었던 아버지는 극동에서 열차를 타고 아랄남쪽까지 이동해서 고분질을 해서 돈을 벌어 돌아가는 일을 몆 년 동안 하다가 첫 째 누님을 일찍 시집 보내고 삼형제를 데리고 아예 아랄해 남쪽 누쿠스로 이사를 했다.
그 곳에서 아버지는 이른 봄에 고분질을 나가 늦은 가을에야 돌아왔다고 한다. 그래서 볼료자는 거의 거리의 아이로 자랐다. 농사일을 떠나면서 굶지 말라고 돈을 가득 쥐어 주고 떠났지만 자신은 그 돈을 관리할 만한 나이가 아니어서 아버지가 돌아 올 즈음이면 거의 이 집 저 집을 전전하는 거지 꼴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일찍 세상 떠난 어머니의 정이 그립고, 온전한 가정이 너무 그리웠던 그는 자기 자식들만큼은 고생을 안 시키겠다며 최선을 다해 키우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그러나 돌아보니 자식들을 편한 집, 좋은 음식을 주었지만 정작 자신은 자식들에게 제대로 된 훈육을 하지 못한 체 밥만 먹이는 아버지가 되고 말았다고 했다.
그는 간신히 야간대학을 나와 러시아어 선생님을 했고, 돈을 벌 욕심으로 식당을 차려 요식업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 그러나 놀음에 빠져 카프카즈의 전문도박단에게 걸려 막대한 돈을 날렸다고 한다. 그 돈이면 덤프트럭 10대를 구입할 만한 돈이라고 했다. 그래도 그는 그 때에 시내 중심과 역전에 가게도 운영하고 그 당시 드문 한국산 새 차를 몰 정도로 여유가 있는 중산층이었다.
그는 진지하게 다시 나에게 물었다. 자신에게 “너는 무엇을 위해 사냐?”라고 물었던 그 분이 누구시냐고 물었다. 나는 어제 안나 할머니가 볼료자에게 누구를 소개하려 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 분이 찾아오셔서 볼료자를 지금 부르고 계신다고 대답했다.
복음을 들은 그는 큰 기쁨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그리고 몇 일 지나 주일엔 온 가족을 다 데리고 교회에 출석했다. 그리고 그는 교회 건축을 위해 전적으로 헌신하더니 결국 헌당을 앞두고 신학교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신학생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사업을 정리하고 목회수업에만 전념했다. 그는 그 땅의 교회와 함께 안팎으로 숱한 풍파를 겪었으나 변함없는 나의 동역자요, 보호자가 되어 주었다. 그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카라칼팍스탄 최초의 목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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