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22일 금요일

아브라함 이야기



하나님의 시험과 아브라함의 반응 / 창 22:1-6 (하)



아브라함의 반응 1 - 지체하지 않음
3절에 보면, 아브라함은 일찌기 일어났다고 합니다. 즉, 아브라함은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후 지체하거나 망설이지 않고 다음날 일찍이 일어나 마치 평상시 제사드리는 것처럼 모든 준비를 한 후에 하나님이 지시하신 곳으로 떠났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반응 2 - 흔들리지 않음
4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여행을 시작한지 이미 삼일이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 삼 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고사성어에 보면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결심한 것을 삼일 넘기기가 어렵다는 뜻으로 결심을 하지만 그 결심대로 지키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비록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즉각적으로 순종하였지만, 여행을 하면서 생각이 많아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서 깊이 생각을 해보았을 것입니다.
어떤 유대인이 여행을 하다가 다리를 건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리가 낡아 곧 무너질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다리를 건너지 않으면 더 이상 갈 길이 없었기에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 다리를 무사히 건널 수 있게 해주신다면, 제 재산의 절반을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기도한 후 다리를 절반 쯤 건넜는데 의외로 다리가 튼튼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절반은 너무 많고 1/3만 드리겠나이다.” 그런데 기도를 마치자 마자 다리가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서둘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농담도 못하나요.”
이 이야기는 결단하기는 그래도 쉽지만 그 결단을 지속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삼일 동안의 여행이 아브라함에게는 더욱 견디기 힘든 커다란 시험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흔들리지 않았고 하나님이 가라고 하신 그 곳만을 여전히 바라보았습니다: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그만큼 이제 그의 믿음은 성장했고,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울 만한 믿음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반응 3 - 방해를 미리 차단함
5절에 보면, 아브라함은 종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산 아래 오기까지 종들의 도움과 나귀가 필요했기에 데리고 왔지만 이제 산을 오르기 전에 그들에게 산 아래에서 기다리라고 아브라함은 말합니다. 만약에 종들과 함께 산 위에 올라가 이삭을 잡아 번제로 바치려고 했다면 그의 종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무조건 아브라함을 말렸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즉각적으로 순종했을 뿐 아니라, 흔들리지도 않았고, 방해를 미리 예상하고 그것을 미리 차단했던 것입니다.

순종의 이유 - 부활의 하나님을 믿음아브라함이 이렇게 하나님의 명령에 철저하게 순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하나님을 영생하시는 하나님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부활의 하나님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6절을 보면, 종들에게 기다리라고 말한 뒤 아브라함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아브라함은 분명히 이삭과 함께 돌아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임시로 종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한 말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히 11:18-19을 보면,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고 나와 있습니다. 즉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즉각적으로 순종하며, 흔들리지 않고, 방해를 미리 차단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을 부활의 하나님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21장에서 아비멜렉의 사건을 통해서 깨달았던 믿음을 하나님의 시험 앞에서 그대로 실행에 옮겼던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아브라함이 당한 시험은 우리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시험이었습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이 당한 것 같은 시험을 당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믿음이 자라고, 은혜를 체험하고 나면 그 뒤에 사단의 유혹이나 하나님의 테스트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시험을 이기고, 시험에 합격하고, 통과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견고하고 흔들리지 마십시오. 방해를 예상하고 미리 차단하십시오. 그래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신앙인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정기수 목사 / 캐나다중앙교회 / 778-237-8084]
 
 
 
 
 

필객의 붓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 아니요



벌써? 하는 느낌으로 주말을 맞으며, 만만한 속도로 돌아가는 회전문에서 방심하다 뒤꿈치를 받친 것 처럼 등줄기가 서늘해집니다. 몇 일의 시간이 어느 포문에 갇혀있다가 한꺼번에 쏟아져 내린 것 같은 갑작스러운 속도감에 허둥거리며, 속이 빈 콩깍지처럼 헐겁게 지나가버린 일주일의 낱알이 몇 개 빠졌던 것은 아닌가 되짚어 셈을 해봅니다. 매 번 이렇게 시간에 놀라면서 인생의 세월을 날아가는 화살이나 눈 깜짝할 사이같은 순간에 비유한 것이 절대 지나친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느낍니다. 급류처럼 사라져버린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면, 이제껏 시간이 나를 중심으로 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시간 위를 표류하며 겨우겨우 여기까지 흘러 온 것처럼 느껴지고, 내일이란 시간도 오늘 내가 선 자리로 흘러와 채워진다기보다 나와 오늘의 상황이 내일의 자리로 흘러 떠내려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지금까지 단 한번의 어김이나 단 일초의 오차도 없이 꼬박꼬박 채워지는 매일의 시간들이 앞으로도 한정없이 주어질 것이라 생각하며 부주의하게 흘러 보낼 일이 아니라 사는 날까지 매 순간을 소중하게 받들며 살아야 할 것이란 다짐을 또 하게 됩니다.

얼마전 소천하신 이민아 목사님의 간증을 들으면서 이 세상의 어느 것도 우리가 바라는 행복을 줄 수 없음을 또 확인했습니다. 학자로서 저명 인사인 아빠, 유복한 집안, 뛰어난 학벌과 변호사로서 화려한 경력, 수려한 외모 등, 이 세상이 바라고 원하는 최고의 형용사를 다 갖춘 그녀도 결국 작은 사랑에 목말라했고, 하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불행하고 우울하고 힘들었노라 고백합니다. 대학을 조기 졸업하고 유학을 하고 변호사가 되기 위해 그녀는 어릴적부터 배우고 성취하고 달성하고 이루기 위해 밤 새워 공부하고 시험을 치르며 치열하게 살았겠지만, 그녀가 고백하는 가장 가치 있었던 삶은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하는 것이었다 합니다. 오늘도 여전히 사람들은 그녀가 얻었던 것들을 얻기 위해 열심히 달리고 있지만, 이 생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그런 치열한 홀로서기의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임을, 그녀의 간증을 통해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직도 여전히 우리가 그토록 원하고 바라며 쫓아가는 좋은 학벌과 성공한 커리어, 아름다운 비전과 사랑하는 사람들, 그 어느 것 하나 지참하지 못하고 그녀는 떠났습니다.

하나님 없이는 인간은 불행하고 불안합니다. 하나님이 필요 없을만큼 풍요롭고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놀라운 편리를 누리며 예전의 왕이 부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음에도, 외롭다고, 불행하다고 하는 소리가 더욱 커지는 것을 보면 풍요가 행복에 대한 답이 아니며, 편리가 우리에게 더 많은 시간과 열정을 주는 것은 확실히 아닙니다. 인간은 빵 이상의 것을 원합니다. 사람은 보이는 것, 느껴지는 것, 감각되는 것으로만 살 수 없습니다.

작년 연말 어느 호텔에서 어린이 고객을 위하여 빵과 과자와 사탕으로 만들어 놓은 집을 보았습니다. 어릴 때 과자와 사탕으로 만든 집에 대한 동화책을 읽을 때 그곳은 분명 이 세상에는 없는 꿈의 세계일 것이라 상상했더랬는데, 그날 나는 그곳을 진동하는 비릿한 계란 냄새와 사탕과 젤리의 단 냄새에 머리가 아프고 배부른 고통때문에 힘들었습니다. 그곳을 드나 드는 아이들도 너무나 당연하고 무심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으며, 행복하게 빵과 과자를 뜯어 먹던 동화속의 아이들과는 달리 전혀 과자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보리고개를 넘기기 위해 산과 들로 나물을 뜯으러 다니고 농사를 돕고 오직 배 곯지 않는 것이 생의 목적이었던 시대를 지나시며, 생의 가장 큰 가치가 먹는 것이었던 어머니가 이 모습을 보셨다면 뭐라 하셨을까, 당신의 세대의 가장 큰 염원이었던 삼시 세끼를 다 챙겨 먹을 수 있는 풍요속에 사는 자식들이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여전히 거대한 불만을 사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 하셨던 어머니를 생각하며 이 생에서 인간이 땀 흘릴 가장 고귀한 삶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대한 전쟁들을 앞두고 있는 여호수아에게 주야로 율법책을 묵상하며 그 입에서 율법이 떠나지 말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입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떠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은 일말의 염려나 걱정의 멘트도 입에 올리지 말라는 것이며 주야로 율법을 묵상하라는 것은 단 한줄기 생각 속에서도 허망한 것을 용납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약 여호수아가 상황을 보거나 자신을 바라보았다면 절대 승리할 수 없었습니다. 광야에서 불평과 불만이 습관이 된 거대한 민족을 이끌고, 하필 추수할 때라 언덕을 넘치던 요단강을 뗏목 하나 없이 건너야 하고, 오만하고 거칠고 악에 받친 가나안 거민들이 살고 있는 난공불락의 거대한 성 여리고를 취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 자신이 발을 딛고 선 처지나 상황을 봤다면 당장 그 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을 것입니다.

경제 공황이 오고 전세계적인 식량난이나 전쟁에 대한 흉한 풍설이 나돌고 있고,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식량을 살 수 없는 때가 곧 이를 것 같은 조짐이 보이고 있고, 교계 안에도 에큐메니칼이나 베리칩에 대한 논란이 뜨겁게 일고 있는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내일에 대한 염려와 근심으로 뼈가 녹아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때에도 사람들에게 필요
한 것은 빵을 보장하는 새로운 정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 말씀이 사람들의 삶을 이끌어 가도록 해야 합니다.

마피아 정국처럼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를 분간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는 이 때,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전하는 순결한 교회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서수영 사모 / penofgod@gmail.com]
 
 
 
 
 

교회음악 Plus





찬양대의 교회생활은


찬양대의 교회 안에서의 생활은 성도들과 관계를 원만히 가지며, 신앙적으로도 덕을 세우며 개개인이 특별하지는 않아도 지도자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또한 찬양대 안에서도 서로 조화를 이루고 협력하여 모든 일을 함께 나누며 감당해야 한다.

찬양대의 교회 안에서의 위치는 분명 교회 안에서의 회중의 일부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찬양대는 특권의식을 가져서는 아니 된다. 특히 전도회 등에서 다른 회원들과 나누어야 할 때 친교나 봉사 할 때는 무엇인가 다르게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찬양대는 교회 안에서 독립단체가 아니다. 누구보다 더 겸손한 자세로 봉사하는 마음으로 교회 내에서 임해야 한다.

찬양대는 세상의 모임과 구별 되어야 한다. 혹 세상에서 다하지 못한 일과 충족되지 못한 일들을 슬며시 교회에서 찬양대를 통하여 채우려고 하는 일들을 보게 되는데 이런 일들은 철저하게 세상사람들로부터 구별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성도들과 하모니를 이루고 교회의 직분자들과 지도자들과 목회자들과의 하모니를 이루어야 한다. 찬양대는 주님을 사랑하며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성도와 이웃과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므로 하나님 앞에서 칭찬받고 교회에 덕을 세워 모든 성도성도부터 사랑 받고 함께하며 협력하여 선을 이루어야 한다.

홍동근 / 목사, Music Minister

예수님의 마음치유



제 17 장 내적 치유과정의 주제들



우리 부부의 내적 치유 학교나 집회에서 전해지는 중요한 주제는 대략 “열 가지”로 요약된다. 물론 강의는 이 주제들에 국한되지 않고 참석자들의 상황과 질문에 따라서 삶의 여러 가지 문제를 폭넓게 다루게 된다.

주제 9 : 예수님께서는 그 간단한 비밀을 몰라서 괴로워하고 안타까워하며 낭비한 지나간 세월을 풍성하게 회복시켜 주신다.

집회나 세미나 때에 이렇게 질문을 해본다 “지난 세월 중에 낭비한 세월이 아주 많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손을 들어 주십시오” 하면서 내가 먼저 손을 들어 올린다. 거의 모든 손이 따라 올라간다. 그런데 그 중에서 손을 들지 않고 있는 선교사 장로님에게 물었다. “장로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가슴 뭉클한 대답이 흘러나온다. “낭비하지 않은 세월이 거의 없지요...” 이런 생각들과 마음들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이 별 가치가 없다고 결론을 짓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 생각과 많이 다르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말이다. (사 55: 8-9) 그와 함께 (시편 119편) 의 말씀이 함께 떠오른다.
71)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법도와,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수많은 고난과 실패와 좌절을 겪게 하신다. 모세를 부르시기 전에 40년 양치기를 시키셨고, 요셉을 사용하시기 전에 십여 년을 감옥에 있게 하셨고,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주시기 전에 25년을 연단하셨고, 홍수를 겪기 전에 노아에게 120년 동안 배를 짓는 “쓸데없는 일”을 시키시며 인생을 “허비하게”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잃어버린 세월을 몇 번이나 덮고도 남을 영광의 삶을 이 땅에서 살았고 더 큰 영광의 삶으로 들어갔다.

주님은 당신의 마음을 낮추시고 치유하시기 위해서 많은 세월을 낭비하게 하셨다. 이제 당신에게 낭비한 세월이 많다고 느껴지는 만큼 하나님의 영광의 부르심의 시간이 가까웠다는 것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그만큼 당신이 겸손해져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마음속 장애물이 제거되어서 주님의 부르심의 음성과 인도를 온전히 받게 될 때에 당신도 모세와 요셉과 아브라함과 노아가 경험한 진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주제 10 : 내적 치유의 원리를 겸손하게 자기 자신에게 적용하는 사람에게 이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우리 부부의 치유 과정 중에서 자주 반복하는 중요한 말씀이다. 목회자와 교회 제직들이 치유 세미나에 참석할 때는 대부분 “배우려고” 온다. 배워서 목회와 사역에 적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두 세주만 지나면 원래의 목적을 내려놓고 자신의 삶에 이 치유의 원리를 적용해 가기 시작한다. 자신의 지나간 삶이 물위로 떠오르는 것을 눌러버리는 작업을 이제 포기하는 것이다. 마치 홍수 때에 뚝이 터지고 나면 모래 제방 쌓기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강의 내용을 자신의 부부 관계, 자녀와의 관계에 적용하면서 자신의 삶을 겸손하게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강의 중에 자주 이렇게 강조한다. “지금 이 자리에서 예수님이 당신을 만나시고 계시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다른 사람은 배경일 뿐입니다. 남편도 아내도 자식도 그렇습니다.” 서서히 이 연습이 되기 시작하면서 예수님과의 깊은 만남이 일어나고 예수님의 눈을 갖게 되고 예수님의 생각과 마음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앞서 말한 모든 치유와 회복이 저절로 그리고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일어나는 것이다. 그 순간부터 주위의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이 흘러가며 그들이 함께 살아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제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이 글을 통해 주님이 당신을 개인적으로 만나고 계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란다.

구자형 목사(밴쿠버내적치유사역원장) saranghealing@hanmail.net
 
 
 
 
 

통일과 한민족의 부르심


 

북한사람들의 통일에 대한 생각은? (2)



지난주에 이어 갑니다. 북한 사람들에게도 ‘통일’이라는 이슈는 참으로 소중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북한 사람들의 ‘통일에 대한 생각’을 어떻게 알 수 있고 또 존중하고 공감하고 갈 수 있을까요? 그 해답은 성경에 있음이 분명합니다.

‘통일을 살기 위한 몸부림’은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남한출신 또는 해외의 교포출신으로 참 귀하게 여러 가지 모습과 다양한 방법으로 사역하시는 하나님의 통일일꾼들을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이렇게 귀한 사역을 하시는 분들 중에는 실제로 북으로 오가시는 분들과 그렇지 않으신 분들이 계시는데 이 분들이 갖고 계시는 통일의 시각에도 차이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신기하게도 북을 다니시는 분들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계속 주고 싶어하는 마음과 또 흡사 북한 사람이 되어져가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북한내부에서 만났던 북한주민들의 생각과 표정, 마음에 감명을 받고 또 그들의 생각을 존중해준다는 것입니다. 혹자는 이렇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하는 말과 표현, 행동은 다 각본이라고. 당연히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단기성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다니신 분들 대부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초기에는 경계를 하기 위한 방법으로 거리를 두기도 하고 진짜 이야기를 하지 않기도 하지만 오랫동안 방문하는 사람의 진심과 마음을 안다면 그들도 마음의 문을 열고 진짜 이야기를 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북에 들어가지 못하시거나 북한사람들을 많이 접촉해보지 못하신 분들은 조금 다르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과의 만남이 없는 것이 이렇게 상이한 결과를 줄 수도 있겠구나 싶어 이해가 됩니다만 이것은 반드시 사람을 만나고 안만나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뜻’을 아느냐 모르느냐에 관건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간과할 수 없는 것 역시 ‘사람을 자주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자주 만나게 되다보면 그 사람과 가까워지고 그 간격이 좁아질수록 친해지고 진심을 주고받는 사이가 될 수 있는데, 진짜 핵심은 정말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의 마음은 전달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접촉점이 많지 않은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철저한 이해타산(돈을 버는 이해타산이 아니라 반드시 이행하고 성취하려는 어떤 목적)을 앞세워 주는 분들의 입장에서만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의심하게 되고 때로는 실망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무조건 주기 위해 들어가는 사람과 계산을 하고 들어가는 사람에게는 똑 같은 상황이 벌어져도 받아들이는 결과는 확연히 다를 수 있습니다. 무조건 주려고 들어가는 사람은 잃을 것이 없습니다. 어차피 주려고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똑 같이 주려는 마음이 있을지라도 마음 안에 ‘어떤 계산’이 있게 되면 그에 대한 결과가 나와야 하기 때문에 잃게 되거나 계획한대로의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불안하고 화가 나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예수님을 내려 보내실 때 계산을 하셨다면,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달리시기전에 우리가 정말 주님의 구원의 십자가를 믿고 따라올 것인지 말 것인지를 의심하시고 계산하셨더라면 아마 십자가를 던져버리고 확 하늘로 가버리셨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듯 같은 성경을 보고 사는 우리들안에서 엇갈리는 생각의 차이들을 보면서 저는 오대원 목사님께서 쓰신 ‘두려움의 집에서 사랑의 집으로’라는 책에 담겨진 내용에서 북한 사람들의 ‘통일에 대한 생각’을 어떻게 알 수 있으며 어떻게 그들과 함께 갈 수 있을지의 해답을 얻을 수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1년전에 쓰여진 이 얇은 책에 오대원 목사님은 성경속에 흐르는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정확히 파악하셔서 우리의 심장을 찌르는 주옥같은 방법론을 제시해주셨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한마디로 겸손의 왕, 종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인간으로 사셨던 예수님처럼 우리가 살아내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계속)

[오 테레사 선교사 / ot202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