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선교사님 살아 돌아오세요!
성탄과 새 해 맞이도 지나 갔다. 대학공부를 하러 떠났던 큰 딸과 둘째 아들이 집으로 돌아와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우리는 모이면 늘 오랜 시간을 보냈던 우즈베키스탄에서의 추억들을 더듬어 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사무실 지붕을 두드리는 세찬 겨울비가 내 기억을 아련한 선교지에서의의 추억으로 이끌어 간다. 선교지에서도 을씨년스런 겨울비의 낙수물소리는 고향생각에 젖게 하고 특히 명절이면 진한 향수병을 도지게 했다. 그럴 때면 우리는 자주 동료선교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보약을 먹으러 오라고 초청을 했다. 다들 이심전심이라 그 보약이 무슨 약인지 다 알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삼양사, 농심에서 조제한 라면이었다. 그렇게 모인 우리가 라면에다 수다라는 고명까지 얹어 먹으면 향수병은 어디론지 사라지고, 다시 힘을 얻어 사명의 자리로 되돌아가곤 했다. 라면은 늘 우리에게 그렇게 명약 중에 명약이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사무실 지붕을 두드리는 세찬 겨울비가 내 기억을 아련한 선교지에서의의 추억으로 이끌어 간다. 선교지에서도 을씨년스런 겨울비의 낙수물소리는 고향생각에 젖게 하고 특히 명절이면 진한 향수병을 도지게 했다. 그럴 때면 우리는 자주 동료선교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보약을 먹으러 오라고 초청을 했다. 다들 이심전심이라 그 보약이 무슨 약인지 다 알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삼양사, 농심에서 조제한 라면이었다. 그렇게 모인 우리가 라면에다 수다라는 고명까지 얹어 먹으면 향수병은 어디론지 사라지고, 다시 힘을 얻어 사명의 자리로 되돌아가곤 했다. 라면은 늘 우리에게 그렇게 명약 중에 명약이었다.
해년마다 조국의 파송교회와 후원교회에서 보내주던 성탄과 새해 맞이 선물을 설렘으로 기다리곤 했다. 우체국에 소화물 도착을 알리는 표가 배달되면 아이들과 함께 중앙우체국으로 가서 소포를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우체국 보관실에서 소포가 나오기 까지 키가 작은 아이들은 까치발로 데스크를 향해 목을 뺀 채로 쳐다보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소포박스를 열기 전에 아이들의 인내심을 시험이라도 하듯 나는 늘 긴 감사의 기도를 드리곤 했다.
그 내용물은 아이들 벙어리 장갑에다 마이구미 젤리, 오리온 쵸코파이, 학용품과 젖갈류 그리고 남은 공간엔 휴지 대신 라면으로 채워져 있었다. 특히 부산에 있던 파송교회와 기장에 있던 협력교회에서 보내오는 선물박스엔 늘 감동이 있었다. 거기엔 중앙아시아에 없는 건어물과 해산물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아내가 가장 행복해 하던 때는 기장미역과 다시마를 꺼낼 때였다. 그리고 한 동안 우리 집은 산모가 있는 집처럼 끼니 때마다 미역국이 상에 올라왔다. 아삭거리는 다시마 튀김은 아이들의 더 좋을 수 없는 간식거리였다. 한 해에는 건조가 덜 된 멸치를 보내왔는데 한 달이 넘는 수송기간에 부패되어 곰팡이가 가득한 봉지를 꺼내 들면서 아까워 탄식이 섞인 소리를 내던 아내의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1999년 신학교 친구가 목회하는 협력교회에서 예기치 않던 성탄선물을 처음으로 보내왔다. 우체국 직원이 부피가
큼직한 선물박스를 탁자 위에 올려 놓자 아이들은 흥분과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와 소포를 뜯을 때에 나도 기대로 설레고 있었다.
뚜껑을 열자 위쪽에 성탄카드가 가득했다. 투명비닐 봉지에 나뉘어 쌓인 카드 뭉치 위에는 유치부, 유년부,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청년부라고
쓰여진 카드가 얹혀 있었다. 교회의 모든 부서가 선교사 가정을 감동시키기 위해 성탄카드 보내기 운동을 전개한 것이 분명했다. 한 쪽엔 그리운
친구목사의 성탄카드와 가족사진, 그리고 장로님들의 성탄카드도 들어 있었다. 족히 300장 가까운 성탄카드가 도착한 것이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박스에 머리를 박고 자기 선물을 찾는다고 법석이었다. 나는 비닐 봉지에서 꺼내든 카드를 한 장 한 장 읽기 시작했다.
유치부 아이들의 고사리 손으로 그린 크레용 그림카드, 손 맵시가 제법인 중등부 여학생들의 카드, 그리고 꽤
의미심장한 글귀들이 실린 청년들의 카드까지 그야말로 형형색색이었다. 어느 짓궂은 중학교 1학년 남학생이 쓴 카드에는 “정선교사님, 사모님!
얼굴도 모르고 선교사님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지만 전도사님이 쓰라고 해서 카드를 씁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살아서 돌아오세요!” 라고
쓰여 있었다. 아련히 우리 부부는 초등학교시절 12월이면 써야 했던 국군장병아저씨께 보내던 위문편지가 생각나서 한참을 웃었다.
나는 거실에 줄을 치고 카드들을 걸어 놓았다. 무슨 한국의 운동회 때 운동장에 걸려 나부끼는 만국기 같기도 했
다. 온 방을 가득 채운 성탄카드 속에서 우리는
멀리 있지만 잊혀지지 않은 의미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곱십고 곱십었다. 그 때 과자와 장난감을 누나와 서로 가지겠다고 아웅다웅 하던 둘째가 자라나
이곳 캐나다에 와서도 성탄절을 맞을 때면 그 때 우리 집 거실과 방을 뒤덮었던 그 일을 자주 이야기하곤 한다. 자신에게 가장 기억에 남은 사건
중에 하나였다고 한다. 자신은 때론 선교지에서 힘들기도 했지만, 그런 위로가 있어 행복했다고 한다. 비록 어린아이였지만 분명한 사실은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감동을 먹고 사는 존재라는 것을 안 것이다.
나는 거실에 줄을 치고 카드들을 걸어 놓았다. 무슨 한국의 운동회 때 운동장에 걸려 나부끼는 만국기 같기도 했
올 해도 선교회의 책임을 맡아 현장 선교사들의 가정에 성탄선물을 준비해서 보냈다. 매년 연례행사이니 말이다.
그러나 정말 그 때의 그 감사와 감격으로 선교사들과 자녀들에게 위로가 되고 있는지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무엇인지 모르게 함량미달인 것 같은
마음이 든다.
[SEED Canada 대표 / 778-316-3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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