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2일 목요일

아브라함 이야기



아브라함의 중보기도/ 창 18:17-21 (상)



오늘 말씀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신앙이 온전히 회복되었을 때,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영적인 회복 후의 축복
17-19절은 아브라함이 아닌 천사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천사들이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알아야 하는 내용입니다. 17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고 나와 있습니다. 히브리 원문에 보면 ‘나’를 의미하는 ‘아니’라는 단어가 두 번이나 나옵니다: ‘내가 아브라함으로부터 내가 하려는 것을 숨기겠느냐?’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시려는 것을 다 알려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아브라함을 동역자로 여기시겠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영적으로 온전히 회복된 사람들을 당신의 동역자로 인정하시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알려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18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택하신 목적을 다시 한 번 밝히고 계십니다: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즉,하나님께서는 천하만민이 복을 받게 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큰 민족으로, 강대한 나라로 만드시기 위해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을 통해서 이루시고자 하는 강대한 나라는 군사적이나 혹은 경제적으로 강대한 나라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나라라고 알려주십니다. 19절에 보면,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즉, 여호와의 도를 지켜서 하나님의 의 (righteousness)와 공도 (justice)를 행하는 민족을 만드시고, 그러한 신앙공동체를 통해서 결국 세상 만민이 복을 받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20-21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왜 아브라함을 찾아오셨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 첫째는 아브라함과 사라의 믿음을 온전히 회복시키기 위해서이고, 둘째는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20절에 나오는 “부르짖음”은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의 부르짖음이 아니라,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이 행한 악행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들의 부르짖음인데, 놀라운 것은 그 부르짖음이 헛수고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부르짖을 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헛수고처럼 보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다 듣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은 그 부르짖음에 응답하셨던 것입니다.

기도하는 신앙인
믿지 않는 사람들은 기도를 헛수고라고 생각하고 기도가 당장 응답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기도하는 것을 어리석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교회에 다니는 분들 가운데에도 기도의 역사에 대해서 회의를 품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시며 가장 적당한 때에 응답하십니다. 기도는 헛수고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기 전에 기도하는 신앙인들이 지혜로운 신앙인들입니다.

하나님 앞에 선 아브라함22절에 보면,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계획을 들은 아브라함은 두 천사들이 떠난 후에 하나님 앞에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아브라함이 서 있었던 이유는 바로 기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23절에 보면 아브라함은 ‘가까이 나아갔다’고 합니다. 여기서 ‘가까이 나아간다’는 것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접근한다’는 뜻이고, ‘경배하다’라는 말이 나온 것으로 볼 때, 이것은 기도하기 위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갔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정기수 목사 / 캐나다중앙교회 / 778-237-8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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