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11일 목요일

길진리생명이신 그리스도 예수 < 11 >






0051. 예루살렘이냐? 로마냐?

예루살렘은 4복음서에 70번, 전 성경에 982번(구약 831 / 신약 151) 언급되어있다. 로마는 어떠한가? 구약과 4복음서에는 아예 나오지도 않는다. 사도행전과 서신서에 모두 9번 언급되어 있다(독자는 사단의 수 ‘9’라는 숫자를 마음에 새겨두시길...).

* ‘이스라엘’은 신구약에 2574번(‘히브리’인 /‘유대’인은 포함하지 않은 수) 나오며 이탈리아는 신약에 겨우 5번 언급되어있을 뿐이다.

 

어느 로마카톨릭 사제가 ‘기독교의 근본이요 요람인 로마카톨릭(천주교)...’ 운운했다. 기독교의 요람은 로마카톨릭교가 아니고 유대교이다. 구약의 그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 신약의 초대교인들, 첫 순교자 스데반, 첫 선교사 바울, 주님의 12제자들, 요셉과 마리아 등, 이들은 모두 유대인들이었다. 성경은 거의가 유대인들의 손을 통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천주교가 초대교황이라고 주장하는 베드로도 유대인이었다. 베드로는 천주교를 알지도 못한 자였다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행3:6)라고 했는데 이제는 금은보화가 너무 많은 집단이 되었다). 육신으로는 유대인으로 오신 우리 주님과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요한4:22)는 말씀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초대교회 때에는 이방인들이 예수믿는 것을 보고 유대인들이 놀라는 장면을 보게 된다. 말세에는 유대인들이 예수믿는 것을 보고 이제 이방인들이 놀라워한다. 첫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AD 33년 아시아의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었지, 유럽의 로마가 아니었다. 로마는 AD 54년이 되기까지는 기독교 공동체를 갖고 있지 않았으며 AD 150년이 되어서야 첫 교회감독을 가졌다. 330년 5월, 콘스탄틴이 수도를, 로마를 모방한 일곱언덕의 도시 비잔티움으로 옮기고 그의 이름을 따라 콘스탄티노플, 즉 “새 로마”(Nova Roma)를 건설하고, 그 곳에 첫 에큐메니칼 교회가 그 본부를 설립하였을 때에만 해도 로마종교는 교회건물이라 할 만한 것도 갖고 있지 않았다. 첫 1,000년 동안에 있었던 8번의 에큐메니칼 공회 중 단 한번의 공회도 로마의 감독에 의해 소집되었거나, 또는 로마교황에 의해 관장되어 열린 적이 없었으며, 감히 어느 로마의 감독도 자신을 ‘교회의 머리’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아직도 국가교회의 무대는 유럽이 아닌 아시아였다. AD 1054년 수위권 다툼으로 동방교회, 서방교회로 갈라진 후 AD 1059년에 가서야 서양사는 처음으로 ‘로마카톨릭교회’라는 모순적인 용어를 기록하였다. ‘카톨릭’(catholic)이란 말은 고대 점성술의 “하늘 제신(諸神)들의 집합체”를 의미한다. 보편적, 우주적인(universal) 교회라고 하나 『로마』는 지역적(local, regional)인 한 도시로서, ‘로마카톨릭’이란 말은 두 단어가 서로 모순된다. 그 외에도 사원(寺院, cathedral), 성당(shrine), 혹은 성골함, 교황(papa), 교부(敎父), 신부(神父), 수녀 등의 용어들은 모두 이교에서 유래된 것들이다.

0052. 유대인, 그들은 누구인가?

하나님의 선민, 이 유서깊은 민족을 칭하는데 쓰이는 세 가지 이름 - 히브리인, 유대인, 이스라엘 사람 - 들의 유래는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께 특별히 구별된 백성으로 “거룩한 백성” 또 “택하심을 받은 백성”으로 칭함을 받은 민족이다. AD 70년 예루살렘성이 함락되고 온 세계로 흩어짐을 당하게 된 그 날부터 이 민족은 온 세상으로부터 경멸함을 받아왔다. 천주교에 의해 그들에게 뒤집어 씌어진 죄명은 ‘그리스도를 죽인 자’(Christ-Killer)들로서 인류 역사상 가장 길고도 오랫동안 정죄받아온 죄명이다.


 

0053. 『오리겐』의 유대인 말살 정책

어느 날 프러시아의 왕이 궁정목사에게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를 물었다. 궁정목사의 대답은 간단하였다: “폐하, 유대인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위해서 지으심을 받은 백성들이었다(사43.21). 그러나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를 죽인 자’들이란 죄명을 씌운 로마교회는 알렉산드리아의 흉악한 이리(행20.29) 오리겐의 유대인 말살정책, 개종, 추방, 멸종의 3단계 이론을 로마카톨릭교회의 교의(敎義)로 삼아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사단은 종교개혁과 함께 제외되었던 천주교의 ‘외경’을 성경의 정경으로 만들기 위해 기독교회사의 최초의 이단들 중 하나인 오리겐을 ‘기독교회사에서 가장 위대한 신학자’로 둔갑시켜놓았으며, 이미 배도의 문턱에 들어선 오늘날의 신학계는 천주교 성경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여호와’를 ‘야훼’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오리겐의 비유법 해석은 어거스틴을 거쳐 오는 동안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송두리째 제거시켰고 교회가 이스라엘이라는 논증을 들고 나섰으나, 교회는 교회이며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다. 구약은 이스라엘에 대한 약속으로 가득 차 있다.

0054. “그럴 수 없느니라”

이스라엘은 교회와 별도의 운명을 가지고 있으며, 이스라엘이 넘어졌으나 최종적이 아님을 바울은 로마서 9-11장에서 힘써 강론하고 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롬11:1-5). 주님께서는 육신으로는 유대인으로 이 세상에 오셨고, 또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요4:22)라고 말씀하심으로 이를 확정하셨다.

0055. 도스또예프스키가 기술한 로마카톨릭주의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 중심부는 로마카톨릭신앙이 자리잡은 곳이다. 그럼에도 유대인들이 프랑스에 거주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긴 이야기가 필요하다.

한때 영국의회 하원의원을 지낸 거물급 인사로서 케임브리지 대학의 근대사(近代史) 교수를 역임한 역사가 악톤(Lord Acton, 1832-1902) 교수는 철저한 로마카톨릭교도였다. 그러나 그는 학문의 자율성을 부르짖고 로마교황 비오 9세와 대결하였던 인물이었다. 그는 크레이튼 주교에게 보낸 서신에서, 정권과 결탁, 왕권을 뒤흔들었던 로마교황청이 누려온 세상권력을 두고 ‘모든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며, 절대적인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였으며, 종교재판 등 로마교황청이 저질러온 종교적인 살인행위에 대해서는 ‘로마 교황들은 대규모적인 살인자들일 뿐이니라, 살인을 로마교회의 정당한 체제로, 구원의 조건으로 설정하였다’고 논평하였다.

로마카톨릭교회로부터 워낙 많은 어려움을 당했던 프랑스 역사는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민중의식이 깨어나고 천주교의 본질을 깨닫게 됨으로써 프랑스인들은 천주교 신앙보다는 차라리 무신론을 택함으로써 유대인들에게는 피난처가 되었다. 러시아의 대문호(大文豪) 도스또예프스키(F. Dostoyevsky, 1821-81)는 그의 작품 『악령』(惡靈)에서 “로마카톨릭교는 이미 기독교가 아니라고 당신은 믿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설명에 의하면, 로마는 마귀의 세 번째 유혹에 빠진 그리스도를 선전한 것입니다. 지상왕국 없이는 그리스도도 자신의 지위를 보전할 수 없다는 사상을 선전한 로마카톨릭교회는 이 선전으로 반(反)기독교 사상을 보급시켰고, 나아가서는 유럽 전체를 멸망시킨 셈이 되는 것입니다. ‘프랑스가 오늘 날 고민하고 있는 것은 단지 로마카톨릭교회의 죄(罪)인 것이다. 그것은 프랑스가 더러운 로마의 신(神)을 배척하고도 새로운 신을 찾아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고 당신은 명백히 시사해 주었습니다... 프랑스가 마침내 로마의 신을 심연 속에 던져버리고, 스스로 사회주의라고 부르는 무신론(無神論)속으로 뛰어든 것은 무신론이 로마카톨릭교 보다는 훨씬 건전했기 때문입니다”라고 기술했으며,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家)의 형제들』 등등 그의 여러 작품에서 로마카톨릭교회와 예수회의 비행에 대해 장황하게 다루고 있다.

생명의 말씀인 나의 주여
목말라 주님을 찾나이다
해변서 무리를 먹임같이
갈급한 내 심령 채우소서
(찬송가 284 / 주예수 해변서②)

구영재 선교사 [KOO, P.O. Box 8844 Victoria, BC V8W 3Z1 Canada]


 

이단 전단지를 본보에 임의로 삽입, 미혹되는 이 없기를


 

이단 전단지를 본보에 임의로 삽입, 미혹되는 이 없기를





지난 주 발행 신문 안에서 밴쿠버제칠일안식일교회에서 열리는 집회 “Amazing Discovery 놀라운 발견”이란 제목의 전단지를 발견한 분들은 즉시 폐기하기 바란다.

한 애독자의 제보에 의하면, 지난 10월 5일 랭리 소재 한아름 마트에서 가져온 신문 안에 이 전단지가 끼워져 있었다며 마트에 비치한 신문에 임의로 삽입한 것 같다고 사진과 함께 알려 왔다. 전단지에는 명확한 주최자는 없고 단지 장소가 밴쿠버제칠일안식일교회라고 명시되어 있으나 “성경예언으로 미래의 희망을”이란 제목을 언급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있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SDA)는 미국에서 창립된 기독교 근본주의 성격의 교파로 28가지 기본교리 중 하나님, 창조, 죄, 구원에 관한 교리는 보편적인 기독교 교파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으나, 재림 후 천년기설(전 천년설), 제칠일 안식일, 그리스도의 하늘성소 봉사, 재림 전 심판, 건강기별, 영혼멸절 등의 교리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만의 독특한 교리로 한국 주요교단으로부터 이단으로 결의되어 있다.

수 년 전에는 밴쿠버 내에서 활동하는 이단세력 중의 하나가 모 마켓 앞에서 본보의 이름을 도용하여 전단지를 돌리다 적발된 경우도 있었음을 감안할 때, 정통 복음주의를 지향하는 본보의 이름을 이용하여 선량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침투하고자 하는 이단세력들의 간교함에 늘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

제보해 주신 애독자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미혹되어 곁길로 들어서는 이가 없기를 기도한다.



“한인 디아스포라 네트워크 만들자”


 

“한인 디아스포라 네트워크 만들자”


지난 5월 ‘북미주 전국 한인교회 실태조사’를 통해 미국과 캐나다 한인교회의 1세대 목회자, 2세대 목회자, 성도들의 실질적 요구를 조사했던 이민신학연구소 오상철 박사가 전 세계 한인 디아스포라 네트워크 형성을 제안했다. 전 세계에 퍼져있는 한인 디아스포라들의 힘을 모으면 세계 기독교 부흥운동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오 박사는 “세계에는 178개국에 750만 한인 디아스포라들이 살아가고 있다”며 “‘디아스포라’라는 타이틀을 사용하는 연구소들과 세미나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지만, 이들을 묶어줄 수 있는 틀이 없다”고 말했다. 또한 “디아스포라들이 조금씩 모여서 외치는 소리는 작지만 그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해 함께 소리를 내면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 세계 한인 디아스포라 네트워크를 위한 구체적 계획도 제시됐다. 2014년 대한민국을 필두로 2016년 북미주, 2018 년 싱가포르, 2020년 영국, 2022년 브라질, 2024년 케냐, 2026년 호주 등 2년에 한 번 권역별 집회를 실시해 함께 같은 고민을 하자는 것이다.

2014년 계획된 집회에서는 디아스포라 신학정립, 디아스포라 리더십 제시, 디아스포라로서의 비전 등이 제시되며, 각 지역별 현안에 관련된 내용들도 다뤄질 예정이다.

오 박사는 “1974년 빌리그래함 전도집회, 1976년 엑스폴로, 1985년 민족 복음화 집회를 이은 전 세계 제4차 부흥운동이 일어날 것”이라며 “디아스포라 네트워크를 통해 네트워크에 속한 한 사람 한 사람이 복음으로 통하는 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9일 공개된 미국 이민신학연구소(소장 오상철 박사)와 내셔널서베이위원회(조직위원장 박희민 박사)가 북미 한인교회 4000여곳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 보고서의 주요 내용이다.
 
 
지난해 1월부터 올해 3월 말까지 한인교회 담임목사, 원로목사, 부목사, 전도사, 선교사, 신학생 등 4109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로 보고서에 따르면 한인교회는 소형교회가 대종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민 1세 목회자가 맡고 있는 교회의 주일예배 평균 출석인원은 50명 이하인 곳이 전체의 42.4%에 달한 반면, 3000명 이상은 1.9%에 불과했다. 이민 2세 목회자의 교회도 예배 참석인원이 200명 이하인 곳이 79.3%를 차지했다.

한인교회의 교단은 한국교회와 마찬가지로 장로교가 가장 많았다. 1세 목회자 교회의 58.3%가 장로교 소속이었으며 침례교(9.4%)와 감리교(6.9%)가 뒤를 이었다.

1세 목회자의 절반 이상(57.8%)이 “교인 수가 증가했다”고 밝혔다. 교인이 많이 감소했다는 응답도 11.7%로 적지 않았지만 이민신학연구소는 “2010년 이후 이민자 수가 급격히 줄고 있음에도 여전히 한인교회가 성장하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해석했다.

한인 평신도들은 한인교회를 가장 큰 정신적 지주로 여기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민자의 정신적 지주 항목에서 한인교회는 교포 미디어, 한국학교, 한인회, 한류문화 등을 압도했다.

한인교회가 이민사회에 기여하는 점으로는 ‘한인 커뮤니티 형성’이 1순위로 꼽혔으며 ‘2세 교육’ ‘한인 정체성 유지’ ‘한국문화의 소개’ 등이 뒤를 이었다. 현재의 한인교회에 대한 평신도들의 만족도가 높아 “교회를 옮길 생각이 없다”고 답한 비율이 91%에 달했다.

신학적 노선 측면에서 1세 목회자의 절반 이상(54.9%)은 자신이 보수적이라고 답했다. 동성애자 목사 안수에 대해서도 매우 부정적이라는 답변이 압도적으로(88.2%) 많았다.

1세와 2세 목회자 사이엔 언어와 문화적 간극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2세 목회자들은 1세 목사들에게 본받을 점으로 헌신·인내·지도력 등을 꼽았지만 ‘한국문화에만 초점을 맞추는 자세’ ‘민족 우월주의’ ‘강한 명령조’ 등은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한인 2세 교회의 다민족화 현상에 대해선 평신도의 73.6%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오상철 이민신학연구소장은 “108주년이라는 오랜 이민역사에도 불구하고 한인교회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자료가 너무 미약했다”며 “한인교회의 실태를 파악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이번 조사를 실시했다”고 설명했다. 오 소장은 “선교적 교회가 한인교회의 미래”라고 강조하면서 다민족·다국적 선교학교 설립, 타문화 선교훈련 실시 등을 주문했다.


 

“결혼 전 성관계 가능하다” 학복협 조사 발표



기독대학생 75% 이상, “결혼 전 성관계 가능하다”


학복협, ‘2012 한국대학생의 의식과 생활에 대한 조사연구’ 발표


기독대학생 가운데 75% 이상이 사랑하거나 결혼을 약속한 사이라면 ‘결혼 전 성관계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원복음화협의회는 지난 10일 소망교회에서 ‘제6회 캠퍼스 사역 컨퍼런스’를 개최하고 ‘2012 한국대학생의 의식과 생활에 대한 조사연구’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연구에서는 대학생 1,359명에게 혼전 성관계에 대한 태도를 물었다. 기독대학생 22.8%만이 ‘결혼 전에는 순결을 지켜야 한다'고 답했다. 2009년에 비해 30%이상 감소한 수치로, 비기독대학생과 비교했을 때 혼전 순결에 대한 의식이 높다고 보기는 어렵게 된 것이다.

성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는 성관계 경험 유무 비교에서도 확인됐다. 기독대학생 가운데 15.8%가 ‘성관계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2006년 11.5%, 2009년 13.6%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동성애에 대한 긍정적 견해도 크게 증가했다. 동성애에 대해 기독대학생 44.1%가 ‘긍정’이라고 답해 비기독대학생(47.6%)과 비슷한 수치를 보여줬다. 이번 조사에 참여한 대학생 1,359명 가운데 기독교는 17.2%로 천주교(7.3%)와 불교(8.8%)보다 높게 나타났으며, 무종교는 66.7%에 달했다.

이에 대해 조성돈 교수는 “캠퍼스 사역자들은 일반적으로 대학생 가운데 기독교인 비율이 5% 정도일 것으로 예상했다”며 “그런데 이번 조사에서 기독교인 비율이 17.2%로 나타난 것은 명목상 그리스도인이나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캠퍼스에 그리스도인이 의외로 많다는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또 “무종교인이 66.7%에 달하는 것은 대학생들이 종교에 관심이 없다는 반증”이라며 “그럼에도 기독교 비율이 높게 나온 것은 ‘가족종교에 대한 충성도’와 관련이 깊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학교 이전에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비율이 65.1%에 이른 것을 볼 때 기독교는 다른 종교에 비해 부모의 종교생활을 많이 따라가게 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이번 조사에서 비기독대학생에게 ‘이전에 교회를 다닌 적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 86.3%가 그런 경험이 없다고 답했다”며 “부모가 자녀를 데리고 교회에 가는 경우가 아니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교회를 경험할 기회조차 없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조 교수는 “최근 기독교인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명시하면서 왜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하는가를 물었을 때, 61.6%가 ‘기득권층 옹호, 교회세습, 비리연루 등 이미지 실추 때문’이라고 답했다”며 “기독교의 교리만 옳다고 주장하는 독선적인 포교활동 때문이라는 의견도 38.8%로 높게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는 “압도적으로 이런 문제들로 인해서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 실망하고 교회를 떠나고 있다는 것”이라며 “한국 교회가 이렇게 비취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심각한 반성을 해야 한다. 결국 교회가 바로 서는 것이 부흥의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조사연구는 학복협에서 3년마다 실시하는 것으로 대학원생까지 포함시켜 대학생뿐만 아니라 청년 세대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igoodnews.net]


 

예수님의 마음 치유



제 13 장 사랑과 결혼


돕는 배필 vs. 바라는 배필

이 세상 사람들은 배우자를 구할 때에 내가 바라는 사람, 나에게 도움을 주고 나의 욕구를 채워줄 사람을 구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본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특히 여성들에게 남편을 “돕는 배필”이 되라고 말씀하셨는데 말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18)

오늘날 여성들에게 돕는 배필이 되라고 하면, 믿는 사람들이라도 별로 기뻐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를 주저하는 것이다. 불신의 표현이다. 그렇게 된 배경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온 세상이 너무 이기적으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고, 둘째는 돕는 배필이라는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하나님이 말씀하신 “돕는 배필 (helper/ help meet)” 의 의미를 살펴보자. 현대 사회에서 helper 라는 단어는 별로 기분 좋은 단어가 아니다.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존재이고 싼 값에 고용할 수 있는 하급 노동자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 사용된 “돕는 자” 또는 “도움”이라는 의미는 그렇지가 않다. 이 단어는 아주 많은 경우에 “하나님”에 대해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시편 27:9)
여호와여 들으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여호와여 나의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 (시편 30:10)
하나님은 나의 “돕는 자”시라 주께서 내 생명을 붙드는 자와 함께 하시나이다 (시편 54:4)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히 13:6)

돕는 배필이라는 단어는 내가 결코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을 대신해서’ 도우려고 보내신 자, 즉 하나님의 ‘천사’라는 말이다. 남자 혼자서는 결코 해낼 수 없는 일이 우리 삶에 참 많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아기를 잉태하고 출산하고 양육하는 일이다. 온 세상 남자가 다 달려들어도 할 수 없는 일을 여자는 가볍게 해내는 것이다. 그렇다고 여자가 남자보다 우월하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다르게 설계하시고 만드셨다는 말이다. 나아가서 이 말씀은 약간 확대해서 남편과 아내 서로가 서로를 돕는 배필이 되어야 한다는 말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이제 모든 사람이 결혼한다는 전제 하에 사람들을 두 종류로 나누어 보자.

 돕는 배필의 의미를 깨닫고 돕는 배필이 되기를 결심한 사람

이 사람의 결혼 생활은 행복하고 풍요로워진다. 배우자의 부족함은 바로 내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고 배우자가 실수할 때에는 거기엔 내 몫의 책임이 있는 것을 인정하는 삶이다. 어느 상황에서도 상대방을 비난하지 않으며 ‘무조건’ 격려하고 세워준다. 전도서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가정이 되어간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거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전도서 4장 9-12절)

구자형 목사(밴쿠버내적치유사역원장) sarangheali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