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10일 목요일

사인사색 밴쿠버목양일기









씨 뿌리는 교회



2013년 새로운 한 해의 교회 비전을 놓고 기도하다가 공관복음서에 나오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주제로 삼아 교회 목표를 “씨 뿌리는 교회”로 정했습니다.

혼자 전도지를 가지고 길에서 나누어 주다 보면 아무래도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됩니다. 한인교회이다 보니, 백인들에게는 그냥 “God bless you~!” 인사하고 맙니다. 주로 아시아인들을 살피고, 그 중 한국 분이다 싶으면 더 반갑게 웃으며 전도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제 눈썰미가 부족한지 중국사람들을 잘 구분 못하는 편입니다. 반갑게 말을 걸었다가 중국 사람이면 머쓱하니 웃고 역시 “God bless you~!” 인사하고 맙니다. 짧게 예수님을 믿는지 묻고, 교회에 다니시라고 권유하기는 하지만 한국 분을 바라 볼 때처럼 간절함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그러다 한국에서 노방전도 할 때의 생각이 간혹 나곤 합니다. 그 때는 내 눈에 보이는 사람이 다 한국사람이었고, 내 말을 듣는 사람이 다 한국사람이었는데…… 하고 말입니다.

예전에 마태복음 13장, 마가복음 4장, 누가복음 8장에 나오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왜 귀한 씨앗을 함부로 뿌리는 것일까요? 좋은 땅에만 정성껏 심어서 잘 가꾸면 될 텐데 말입니다. 길가나 돌밭이나 가시떨기에는 아예 처음부터 뿌리지 않으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인 것은 모른 채 말입니다. 굳이 여기에서 “과거에는 지금처럼 체계적인 농법으로 농사짓지 못하고 그냥 모든 곳에 씨를 뿌리고 그 사이로 사람들이 다니면 길이 생기기도 했다”라는 식의 해석을 붙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뻔히 보이는 길가에도, 돌밭에도 가시떨기 위에도 뿌려지는 씨앗의 은혜가 바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렵니다.

예전 유명한 S그룹의 회장이 이런 말을 했지요. “한 명의 엘리트가 만 명, 십만 명을 부양할 수 있다”라고 말입니다. 결과적으로 지금 세계적인 대기업이 되어 승승장구하고 있으니, 세상적으로 보면 그의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적어도 그리스도의 신앙 안에서는 그의 말을 결단코 부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무 곳에나 씨를 뿌리는 것이 합리적이지 못하고 비효율적이라고 생각이 드는 이유는, 우리들 스스로가 좋은 땅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좋은 땅이 아니라, 돌밭이고 가시떨기, 아니면 심지어 길가인지도 모릅니다. 귀한 생명의 씨앗을 아낌없이 다 뿌리고, 가꾸어 모두 좋은 밭으로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 바로 우리 주님의 마음이겠지요. 그것이 우리가 받은 사랑이고 은혜인줄 믿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분명하게 선포하셨습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 시키러 왔노라”(누가복음 5:32)

선한 사람을 찾고, 의인을 보고, 좋은 땅을 찾는 것은 우리들 사람의 마음입니다. 내가 사역하는 교회에 올 것 같은 사람에게 눈길이 더 가고 신경이 쓰이는 것도 사람의 마음이겠지요. 그러나 우리 주님은 죄인을 구하고, 잃어버린 양을 찾으실 때, 좋은 땅만 찾으시지 않고 길가와 돌밭과 가시떨기에도 아낌없이 생명을 뿌리십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5-8

2013년 한 해 동안 우리모두 좋은 땅이 되어 백배의 결실을 수확하기를 축복합니다. 더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길가에도 돌밭에도 가시떨기에도 아낌없이 나누는 풍성한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김용균 목사 / 한마음교회 / 778-554-9003]

아브라함 이야기



롯의 엄청난 불행들 / 창 19:23-37 (2)



롯의 불행- 아내를 잃음
천사들은 롯과 그의 가족들에게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창 19:17). 그러나 롯의 아내는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지는 동안 뒤를 돌아보았기 때문에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26절). 눅 17:31-32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롯의 처가 물질에 대한 집착 때문에 망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보았던 것은 물질에 대한 미련과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집착과 불신은 롯의 아내가 소돔 출신일 수도 있다는 추측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 롯의 처에 대한 언급이 없을 뿐 아니라, 가나안에서 기근을 만나 이집트로 갔다가 올라온 후, 소돔성으로 갔을 때에도 롯의 아내에 대한 언급이 없고, 나중에 19장에 가서야 언급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롯의 아내가 소돔 출신이었다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결과 롯의 아내는 소금 기둥이 되었고, 롯은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를 한 순간에 잃어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롯의 불행- 두려움아내를 잃고 슬퍼할 겨를도 없이 겨우 몸만 빠져나온 롯과 그의 두 딸들은 이내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롯이 소알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가 거주하되 그 두 딸과 함께 굴에 거주하였더니” (19:30). 소알성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것입니다. 이러한 두려움은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두려움 없는 삶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시 23:4). 하나님께서는 두려움 대신에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딤후 1:7). 롯의 불행은 하나님의 평안을 잃어 버린 것이었습니다.

롯의 불행- 근친상간동굴에 기거한지 얼마 되지 않아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온 세상의 도리를 따라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이 땅에는 없으니…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19:31). 이 말은 “결혼을 하려면 지참금도 필요한데 가진 것도 없고 아버지가 늙어서 돈을 벌 수도 없으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아버지를 통해서 후손을 이어가자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딸들의 생각은 롯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소돔 사람들이 몰려왔을 때 롯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창 19:8). 이것은 이미 정혼한 딸들이기 때문에 몰려온 무리들이 두 딸들을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롯의 지혜로움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너무도 세속적인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롯이 세상의 방법을 따르는 모습을 두 딸들은 무의식적으로 배웠고, 택해서는 안되는 방법을 택한 것입니다. 즉, 롯과 두 딸들의 관계는 완전히 파괴되었던 것입니다.

롯의 불행- 술취함딸들은 자신들의 계획을 위해 롯에게 술을 마시게 합니다. 이것은 굴 속으로 피신을 하면서도 술을 가지고 올 정도로 롯이 그 동안 술을 즐겨 마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약으로 술을 쓰라고 권했기 때문에 술먹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술을 절제하기가 쉽지 않고 술에 취하면 죄를 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롯은 술에 취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 밤에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큰 딸이 들어가서 그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그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창 19:33). 그러므로 금주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롯은 술로 인해 영적인 감각을 완전히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롯의 두 아들- 모압과 암몬두 딸들과의 근친을 통해 태어난 아들들이 바로 모압과 벤암미 즉 암몬족속의 조상이었던 것입니다. 모압이란 “아버지로부터”라는 뜻이고, 암몬이란 “나의 친척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모압과 암몬은 오늘날의 요르단을 가리키는데 모압과 암몬 족속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조롱하고 괴롭히는 죄를 저질렀다고 합니다: “내가 모압의 비방과 암몬 자손이 조롱하는 말을 들었나니 그들이 내 백성을 비방하고 자기들의 경계에 대하여 교만하였느니라” (스바냐 2:8). 롯은 자신이 세상적 방법을 따른 것의 결과로 인해 평생 후회와 수치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즉, 그는 아버지로서의 권위와 자긍심을 모두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대신 세상의 방법을 따랐던 롯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정말 수치스럽고도 치욕스러운 여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잠 4:23)의 말씀처럼 세속적인 가치관에 물들지 않도록 믿음을 지키며, 그 믿음위에 서서 세상을 변화시키며 하나님만을 존중히 여기는 애독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정기수 목사 / 캐나다중앙교회 / 778-237-8084]

재미있는 사도행전



2013, 꿈에 미쳐라! (1)





2012년 8월, 영국 프리미어리그 스완지 시티에 입단한 기성용은 구단 역사상 가장 비싼 선수로 스완지 시티에 입단했다. 영국의 ‘BBC’ 등 현지 언론이 보도한 기성용의 이적료는 600만 파운드(약 107억)였다. 한국인 선수 이적료 중 최고액이다. 최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퀸즈 파크 레인저스(QPR)로 이적한 박지성의 이적료 500만 파운드(약 89억원)를 훨씬 뛰어 넘는 액수다.
기성용 선수가 ‘셀틱’에서 ‘스완지시티’로 입단 할 때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이제야! 저의 어릴 적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경쟁할 수 있는 프리미어 그리에서 빨리 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습니다”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꿈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다. 꿈이 있는 사람은 눈빛부터가 다르다. 꿈이 있는 사람의 눈은 빛이나고, 앞을 향하며 눈물이 고여있다. 꿈이 있는 사람의 입은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다. 꿈이 있는 사람은 열정과 자신감에 사로잡혀 일한다. 그리고 꿈이 있는 사람은 ‘존재의 이유’가 있어 늘 기쁨에 넘쳐 살아간다.

꿈이 없는 사람은 출렁이는 바다위, 흔들리는 배 위에서 놀고 있는 사람과 같다. 언제 풍랑이 일지, 언제 추락할지 모른다. 잠언 29장18절을 보라!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라고 했다. 이 말씀의 뜻이 무엇인가? 조금 과하게 표현하면 ‘비전이 없는 사람은 망할짓만 골라서 한다’는 말이다. 목표가 없으니 할 일이 없어 늘 빈둥 거린다. 빈둥 거리다 보면 잡념에 사로잡힌다. 인간의 잡념에서 나올 것은 뻔하다. 죄지을 생각만 생산해 내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 세우는 방법은 아주 특이하다. 먼저 꿈을 심는 작업부터 한다. 아담과 하와에게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1:26).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너는 복이 될지라”(창12:3). 요셉에게 “요셉이 꿈을 꾸고”(창37:5, 9). 사도바울에게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9:15).
사람은 꿈을 품고, 꿈을 위해, 꿈을 이루며 살도록 만들어진 존재다.

바울이 기록한 신약성경 13권의 1장 1절을 보라! 바울의 비전으로 장식되어져 있다. 바울은 몽상가로 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꿈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행동하는 자였다. 바울이 토해내는 그의 비전을 들어보라!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롬1:1),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고전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고후1:1, 갈1:1, 엡1:1, 빌1:1, 골1:1 딤전1:1, 딤후1:1).

<다음 주 계속>

황보창완 목사 / 778-708-5540







필객의 붓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작년 연말 저희 집에 도둑이 들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예배를 마치고 집에 들어오니 방안이 엉망입니다. 도둑이 들어와도 가져 갈 것이 없다고, 내 집에 도둑이 드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호언 장담하며, 키를 안가져간 아이들을 위해 문도 열어놓고 나가고, 몇 주간 집을 비우면서도 안심하고 다니며 문단속을 허술하게 하면서도 전혀 걱정이 없었고, 심지어 바로 몇 주전에 근방에 사시는 선교사님 댁에 도둑이 들었던 생생한 현장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으면서도 이 일이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조금도 의심해 보지 않았습니다.
아름다운 예배를 마치고 즐거운 마음으로 들어온 집에서, 이전에 선교사님 댁에서 보았던 것처럼 침대가 뒤집혀 있고 서랍들이 열려있고 옷가지가 방안에 널려있는 광경을 보면서도, 내 생애 절대 그럴일이 없을 것이라 했던 믿음(?)이 너무 크게 작용해서 한동안 이것이 현실이 아니라 꼭 나쁜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딸을 혼인시키던 날 도둑을 맞은 선교사님 가족들에게는 사람이 다치지 않았으니 그만하기 다행이라고 침착하게 위로했었지만 막상 내가 당하고 보니 시간이 갈수록 충격이 느껴지고, 외출해서도 안심이 안되고, 집에 들어올 때마다 마구 어질러진 그 때의 모습이 떠올라 두렵고, 어두운 손길이 뒤지고 다녔을 집에 혐오스런 마음이 들고, 그 날 등이라도 하나 켜놓고 나가지 못한 것이 무척 아쉽고 속상하여 몇 일 동안을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를 계속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내가 잃어버린 것이 생명도 건강도 소중한 가족도 구원의 믿음도 아니라 컴퓨터와 노트북 뿐이고, 마침 내 노트북은 고장난 자판 때문에 수리점에 보내야 해서 모든 문서들을 유에스비에 옮겨놓아 글 한 줄 잃어버리지 않은 점에 감사한 마음이 들면서도 은혜로운 예배를 드리는 동안 집을 지켜주시지 않은 하나님께 야속한 마음이 들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새벽, 이 일을 통해서 주시는 놀라운 축복을 깨달았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도적같이 이를 것이라 했던 말씀이 너무나 실감나게 다가온 것입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어느 날 주님께서 이렇게 오실 것인데, 준비 안된 채로 주님께서 오셨음을 안다면 지금처럼 발을 동동 구르며 후회할 뿐 아니라 성경의 표현처럼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란 사실이 피부로 느껴졌습니다. 늘 사람들에게 깨어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글도 그런 글을 쓰고, 스스로의 기도에도 늘 입에 붙이고 사는 말이면서도 실제로 가슴에 부딪혀오는 실감은 느끼지 못했으며,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고 고대하면서 살고 있다고 하면서도 정작 내 마음에는 언제 오실지 모른다는 졸음같은 막연함 속에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고, 졸다가 찬물 바가지를 뒤집어 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우리의 이생에서의 마지막 날이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것처럼 세계적이고 인류 전체의 역사적인 사건에 의해서가 아닐지라도, 너무나 짦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한 치 앞을 장담할 수 없는 인간으로서 질병과 불의와 사고 등 무수한 종말의 가능성과 악한 조건들 속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종말은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든 예고 없이 닥칠 수 있는 일이며, 죽음은 예외없이 누구에게나 작정된 일입니다.

우리는 순간 순간 시간이라는 귀중한 자산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잠깐 졸았던 봄 꿈처럼 짧다고 하는 인생의 시간이 지금도 쉬지 않고 닳아 없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시간이 주는 가장 큰 착각은 너무도 짦은 생애가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길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 언제 이가 나고, 언제 말을 하며, 언제 커서 학교에 갈까 했었는데, 이사할 때 서랍 속에 흩어져 있던 사진 몇장을 남기고 아이가 벌써 대학생이 된 것을 생각하면, 그때는 멀리만 보이던 시간에 순간적으로 당도한 것만 같습니다. 이제 곧 아이들 모두 결혼을 해 집을 떠나고, 손주를 보고, 둘 중 한쪽을 먼저 보내고, 구부정한 모습으로 공원에 앉아 허공에 회상의 시선을 드리우다가 영원쪽으로 사라질 날이 순식간에 현실이 될 것을 생각하면, 세월의 속도감에 현기증이 일어 반사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움켜잡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거두지 않으셨기에 오늘도 사람들은 영원히 살 것처럼 자만하고, 늘 건강하고 무사할 것처럼 마음을 높일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를 취소하시면 당장 모든 상황은 지옥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맛과 향과 기쁨과 안식은 이미 다른 사람들에겐 끝나버린 기회요 은혜임을 생각하면, 지금 내가 가진 그 어떤 것도 내 것이라 자랑할 수 없으며 살아있는 동안 모든 순간들에 감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주께는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은 시간의 비밀을 깨달은 베드로 사도는 우는 사자처럼 삼킬자를 두루 찾아다니는 사단의 존재에 대해 말하면서 근신하여 깨어있어야 한다고 엄히 경고했습니다. 준비가 안된 채로 세월이 간다는 것은 실로 무서운 일입니다. 준비 없이, 인격의 성숙과 지혜의 무르익음이 없이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노인이 되어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주변에 너무 많습니다.

돈이나 집이나 명예 인기 등 이 생에서 우리가 이루어 놓은 것들은 도둑이 구멍을 뚫고 가져갈 수 있지만, 우리가 받은 생명의 복음은 도둑질 당하지 않도록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시는 그 때가 큰 은혜의 때이며 축제의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이 땅의 모든 교회들이 깨어 준비하여 복음의 등불을 들고 있을 수 있기를 간구합니다.

[서수영 사모 / penofgod@gmail.com]







“지금은 회개와 회복이 필요해”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

미국 3개 주 동성애 합법화ㆍ2개 주 마리화나 합법화에 대한 염려 나타내

▲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는 지난해 11월 미국 3개 주에서 인정된 동성혼과 2개 주에서 통과된 마리화나 합법화 법안에 대해 영적, 도덕적 위기가 올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가 최근 동성혼 증가와 마리화나 합법화, 선정적이고 폭력성 넘치는 TV 프로그램의 증가에 대해 미국이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어두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크리스천포스트지의 지난 1일 보도에 따르면 대표적인 미국 복음주의권 전도가인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는 이같은 염려와 함께 나라가 점점 죄악에 병들어가는 것은 눈앞에 다가온 ‘재정절벽’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주 공개서한을 통해 “지난 몇 주간 많은 언론매체가 국내 재정과 직결된 ‘재정절벽’ 문제를 염려해왔지만, 영적ㆍ도덕적 절벽 문제가 국가에 가져올 영향력은 이와 비교할 수 없다”는 뜻을 전했다.

그 이유로는 지난해 11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워싱턴ㆍ메릴랜드ㆍ메인 3개 주에서 높은 지지하에 동성혼이 합법화된 점과 미네소타 주에서 결혼이 남녀 간에 이루어진다는 법적 정의가 수정된 점을 들었다.

또한 지난해 11월 높은 찬성투표율로 콜로라도 주와 워싱턴 주에서 마리화나가 기분전환용으로 합법화된 점도 한 가지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오늘의 세태가 점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같아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도 “가슴이 아픈 것은 아버지와 마찬가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와 회복의 역사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소망이 남아있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가 비록 어두운 시기를 지나며 처음 국가를 세웠던 기초가 파괴될 위기에 놓여있지만 아직 희망은 남아있다”며 “구약시대 영적으로 어두웠던 므낫세 왕의 남쪽 유다왕국이 다시 손자인 요시아 왕의 회개운동을 통해 회복된 처럼 우리가 회개할 때 하나님의 놀라우신 손길로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igoodnews.net]